천일 번째 고원: 1999년 바람의 검심 - 추억편

상징 디코딩 #012: 두 진동이 멈춘 곳, 십자 흉터라는 정동의 기념비

by 나인테일드울프

시대를 가르는 걸작이 불현듯 나타날 때가 있다. 90년대와 2000년대의 일본의 애니메이션 작품 중엔 아직도 회자되는 명작이 정말 많았다. 그중에는 감독의 경력이나 IP의 흐름상 훗날에라도 무언가 전조를 파악할 수 있는 작품이 있는가 하면, 그 존재 자체가 정말 불가사의한 그런 작품이 있다.


지금 다루는 OVA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 추억편(るろうに剣心 -明治剣客浪漫譚- 追憶編, 1999)』이 바로 그렇다. 동일 IP의 이전 극장 개봉작이 완전히 죽을 쑨 상황이었고, 원작 만화나 TV 애니메이션은 상당한 팬덤을 거느리고 있었지만 특유의 과장된 연출로 이루어진 전형적인 소년물이었다.


그런데 아무런 전조 없이 기존 IP의 흐름을 깨뜨리며 이 작품이 등장했다. 메이저 유신을 배경으로 한 시대물로 탈바꿈해서, 만화적 연출을 모두 억제하고 시종일관 진지한 분위기 속에 비극을 완성한 이 애니메이션은, 특유의 비장미 때문에 오늘날에도 과거 일본 애니메이션이 이뤄낸 정점 중 하나로 대우받고 있다.


이 글은 온갖 미사여구를 다 동원해도 그 성취를 감히 평가하기 어려운 이 희대의 걸작을 질 들뢰즈라는 철학자의 눈을 빌어 인류 지성의 새로운 고원으로 올려놓기 위한 것이다. 그 등정을 지금부터 함께 시작한다.


[스포일러 주의 : 아래 글은 영화의 결말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상흔과 진동: 강렬도(Intensity)의 기입

키요사토 아키라의 강한 집념은 켄신의 피부에 강렬한 에너지로 기입된다. 결국 뺨에 난 이 상처 하나가 이 남자의 인생을 송두리째 뒤바꾼다.


극의 초반 이미 무수한 살인을 저질렀을 히무라 켄신은 압도적 실력으로 키요사토 아키라의 목숨을 거둔다. 말 그대로 굶주린 범 앞의 노루 같은 존재, 살기 위해 힘껏 뒷발질을 하듯 휘두른 칼이 켄신의 뺨을 벤다. 스포츠 펜싱이었으면 올림픽 메달리스트의 몸에 칼을 대는 동호인의 영광 같은 상황, 하지만 이곳은 서로 죽고 죽이는 동란의 한 복판이다.


키요사토는 결혼을 한 달 앞둔 남자, 그의 살고자 하는 집념은 누구보다 강하다. 치명상을 입은 후에도 살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그, 히무라 켄신은 이 삶에 대한 집념을 알아보고도 헐떡이는 키요사토의 숨을 냉정하게 끊는다. 나름은 고통을 끝내는 자비의 모양새이지만, 피차의 괴로움이 그걸로 가실리는 없다. 그래서 키요사토 아키라의 이 일격은 하나의 진동이 되어 켄신의 몸에 질적 변화를 일으키고, 서사의 전반에 퍼져 나간다. 한 암살자의 삶을 뒤엎어버릴 비극이 이렇게 시작되고 있다.


켄신의 뺨에 난 상처는 단순히 칼에 베인 상흔이 아니다. 그것은 '살고자 하는 맹렬한 에너지(강렬도)'가 켄신이라는 감각의 판 위에 기입(inscription)된 것이다. 키요사토가 만들어 낸 진동은 켄신이 살인을 저지를 때마다 피를 흘리는 생물학적 작동으로 발현된다.


유키시로 토모에의 도주선(Line of flight)

토모에는 하급 사무라이의 여식이라는 지위를 내던지고 동란의 교토로 들어선다. 소수자라서 지니는 기득권마저 포기하고 다수자의 기준에서 이탈하는 것이 들뢰즈의 여성-되기이다.


막부 말기의 사무라이, 유신지사라는 '명분과 살육의 기계(국가 장치)' 속에서, 여성은 수동적으로 기다리거나 희생당하는 '기관(조직된 역할)'으로 규정된다. 하지만 정혼자의 죽음에 유키시로 토모에는 이 작동 방식을 거부하고 동란의 한복판으로 걸어 들어간다. 기존의 체제가 부여한 역할을 부수고 자신만의 '도주선(Line of flight)'을 그리는 행위다.


이는 들뢰즈가 말하는 '여성-되기'이다. 여성-되기란, 생물학적으로 여성이 되는 것을 말하지 않는다. 지배적 이데올로기, 남성 중심적이고 폭력적인 국가 장치 같은 다수자의 기준에서 이탈하여 소수자성을 향해 나아가는 모든 '생성'의 첫 단계이다. 이것은 소수자로서 지닌 기득권마저 포기하는 것을 포함한다. 토모에가 알량할지언정 분명한 하급 사무라이의 여식이라는 지위를 내던지고, 교토의 밤거리에 이름 없는 여자로 들어서는 순간 진정한 여성-되기의 첫발을 내딛는 것이다.


그리고 그녀의 이런 행보는 『그을린 사랑』의 나왈 마르완과 비슷하다. 나왈이 사랑하는 아들은 증오의 대상과 합치되었지만, 토모에의 경우엔 복수의 대상이었던 남자가 애정의 상대로 변모한다는 점에서 방향만 다르다. 신체에 남긴 특별한 표식이 그 남자들을 구별하다는 점은 완전히 판박이다.


히무라 켄신의 유년과 여성성의 박탈

세 여인의 죽음과 스승에 의한 개명은 그의 여성성과 유년의 박탈로 이어진다. 이 상실은 그가 삶의 정동을 느끼지 못하고 칼을 휘두르게 만든다.


최강의 검객, 희대의 암살자 히무라 켄신의 시작은 어땠는가. 그는 어린 시절 인신매매단에게 끌려가는 중에도 다시 도적떼의 습격을 받는 최악의 상황을 맞이했었다. 서로 의지할 틈이 보였던 연상의 여인 세 명은 눈앞에서 참혹한 죽음을 맞는다. 본인의 목숨마저 위태로울 때 나타나서 구해 준 사람이 바로 그의 스승, 히코 세이쥬로이다.


들뢰즈가 말하는 여성-되기는 강제된 관념을 거부하는 행위이고, 이는 주로 어린 시절부터 축차적으로 쌓아 올린 억압으로부터의 해방이다. 어린 시절부터 강요받은 남성성을 내던지는 것이 여성-되기라면, 그 기원으로 돌아간다는 점에서 '아이-되기'는 억압적인 체제 이전의 자유로운 유희와 감각으로 돌아가는 해방의 생성이다. 그것은 현재의 청춘을 과거로부터 구성하는 행위이고 관념의 지배 이전으로 돌아가는 일이다.


이 사고체계에서 '여성성'은 다수자의 폭력적인 이데올로기에 맞서는 소수자적 생성의 출발점이다. 그러나 도적떼에 의해 누이 같은 여성들이 살해당하는 순간, 신타(켄신)의 내면에 자리 잡을 수 있었던 '돌봄'과 '연대'라는 여성적 정동은 물리적으로 난도질당하며 그 싹이 잘려 나갔다.


그리고 히코 세이쥬로의 구원은 생물학적 생명의 연장이었을지 모르나, 소년을 가장 단단한 감옥에 가두는 일이었다. '신타(心太, 부드러운 마음)'라는 이름은 세상을 향해 열려 있는 미규정된 아이의 상태를 상징한다. 그러나 히코는 "너무 부드러워 검객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며 그에게 '켄신(剣心, 검의 마음)'이라는 이름을 부여한다. 이는 아이의 무한한 잠재력을 '검술(비천어검류)'이라는 살육의 관념 속에 욱여넣어, '살인 기계'로 재영토화(Reterritorialization)하는 폭력적 명명이다. 안전한 영토에 머물도록 배려한 것일지 모르나, 결국 비천어검류라는 관념은 '신타'를 '켄신'으로 재정립한다.


이로써 교토 동란의 한복판에 선 소년 검객 히무라 켄신은 소수자로 되돌아갈 길도 막혔고, 현재의 청춘에는 어린 시절부터 휘두른 검의 사념 밖에 남아있는 것이 없다.


백매향의 특이자

"정말로... 내리게 하시는군요. 피의 비를..."


하지만 살육에 찌들어 탈출구가 보이지 않던 켄신의 삶에 백매향을 풍기는 여인이 등장한다. 향을 맡을 수 있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바로 비말 전파에 의한 감염이 가능한 거리이다. 백매향은 단순한 장식적 냄새가 아니다. 그것은 켄신의 닫힌 신체에 침투하는 토모에의 미세한 입자 폭격이다. 비말이 닿을 수 있는 거리, 즉 두 사람의 신체가 서로의 분자를 교환할 수 있는 치명적인 '감응의 장(Field of Affect)' 안으로 서로가 진입했음을 의미한다.


들뢰즈는 무언가가 새롭게 생성되는 과정은 가족이나 국가 장치가 좋아하는 '혈통(유전, 재생산, 모방)'이 아니라, 바이러스가 퍼지듯 경계를 넘나드는 '감염(Contagion)'을 통해 이루어진다고 보았다. 바이러스에 의한 생물학적 변이와 진화를 철학적 층위로 끌어올린 개념이다.


교토의 비 오는 밤거리, 살육의 현장에 등장한 여자, 어울리지 않는 장소에서 그 고상함이 백매향의 공기를 타고 흐른다. 무리의 가장자리에 선 늑대, 이 특이자가 켄신을 감염시키며 그의 여성-되기의 생성이 시작된다. 그리고 이 전염은 상호 간에 이루어진다. 살인을 업으로 삼으면서도 피의 무게에 짓눌려 고뇌하는 켄신, 그 또한 가장자리에 서있는 특이자이다.


켄신을 둘러싸고 있던 '새로운 시대'라는 거시적인 관념은, 코끝을 스치는 이 미시적인 백매향의 전염 앞에서 무력화되며 그의 내면에 억눌려 있던 '여성-되기'의 지층을 흔들어 깨운다. 그리고 찾아왔더니 남자가 아닌 소년과 마주한 토모에, 그가 뿜어 내는 짙은 피비린내에 그녀 또한 전이된다. 하지만 그녀는 그 냄새에서 괴물을 보는 것이 아니라, 피비린내 이면에 숨겨져 떨고 있는 상처받은 '아이 신타'의 비명(진동)을 감각한다.


도주와 새로운 영토

이들은 피신처에서 위장이 아닌 진짜 부부가 된다. 이 찰나의 행복이 비극의 전제이다.


들뢰즈의 이론에서 오해하기 쉬운 개념이 바로 탈주로 종종 오인되는 도주이다. 개체가 견디기 어려운 압력과 위험 속에서 안전한 곳을 찾아 도망가는 행위에 더 충실한 개념이기 때문에 정확하게는 도주가 맞다. 이는 초기 바다 생물들이 포식자를 피해 점점 얕은 물로 이동하다가 다리가 생기고, 폐로 호흡하기 시작하는 진화적 흐름을 모티브로 해서 들뢰즈가 철학적으로 창안한 개념이다. 도주에 따르는 생성영토는 진화로 얻은 형질과 새로운 서식지와 연결된다.


켄신과 토모에는 유신지사들이 묵는 숙소에서 한동안 같이 지내며 서로를 조금씩 감염시켜 나간다. 하지만 이 격동의 시기에 안전이 보장될 리 없다. 이른바 금문의 변(禁門の変) 사건 이후 조슈 번의 지도자 카츠라 코고로는 피신을 결정하고, 위장을 위해 토모에와 '부부'로 행세하며 오츠 지역의 농촌으로 내려가 농사를 짓고 살라고 한다.


말 그대로 이 둘의 피신은 사전적으로도, 들뢰즈의 개념으로도 도주에 해당한다. 그리고 이곳에서 이 둘은 여성-되기와 아이-되기의 생성을 이뤄낸다. 함께 거닐며 시간을 보내고, 서로의 음식을 챙기고 돌보는 일, 이 부드러운 정동에 의해 켄신 속 관념 세계의 소수자였던 여성성이 깨어난다. 유년 시절 일을 거들던 기억을 되살려 농사를 지으며 바로 자신의 과거로 현재의 청춘을 구성한다. 교토를 피로 물들이던 칼잡이의 아이-되기가 이렇게 이루어진다.


그가 소박한 삶의 진동을 피부로 느끼면서, 칼잡이로 끊어내었던 것이 무엇인지 깨닫는다. 새 시대를 이루면 사람을 해치는 일은 그만하겠다는 다짐, 불살의 나그네가 될 씨앗은 둘의 도주로 얻은 새로운 영토에서의 가장 값진 생성이다. 백매향의 감염, 켄신의 여성-되기, 아이-되기는 이 새로운 종의 탄생을 위한 진화의 흐름이다. 이는 일종의 유전적 변이와 같다.


이 새로운 서식지에서 켄신은 더 이상 '암살자'라는 포식자로 살아갈 수 없다. 굳어버린 살육의 감각을 버리고, 부드러움과 돌봄이라는 새로운 호흡법(폐)과 일상의 보폭(다리)을 발명해 내야만 했다. 켄신의 다짐은 단순한 도덕적 회개가 아니다. 그것은 이 도주선을 통해 완전히 다른 화학적 조성을 갖게 된 신체가 내리는 존재론적 선언이다. 훗날 그가 쥐게 될 '역날검'은 이 새로운 종이 진화를 통해 얻어낸 독특한 형태의 발톱이다.


전쟁 기계의 면모

토모에 그녀에게 켄신은 사랑하는 남자이자, 자신의 아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성을 보호해야 한다.


하지만 만만찮은 시대다. 얕은 곳으로 피신한 먹이를 쫓아오는 포식자는 언제든 있어왔고 그들도 그런 흐름 속에서 진화를 맞는다. 이게 바로 들뢰즈가 말하는 탈영토화 후의 재영토화는 이 생물학적 진화의 흐름을 철학의 언어로 재정립한 것이다.


토모에를 켄신에게 보낸 막부의 자객 집단은 이 작은 영토를 곧 침탈할 계획을 세웠다. 토모에 그녀에게 켄신은 사랑하는 남자이자, 자신의 아이다. 그녀는 자신의 생성을 보호해야 한다.


『그을린 사랑』에서 나왈 마르완은 자신이 딸이라 부른 아이가 살해당하자, 기독교 민병대의 우두머리를 암살한다. 토모에도 비슷하다. 자신의 아이라고도 할 수 있는 남자를 지키기 위해 자객의 수장을 암살할 각오로 본거지를 향해 길을 나선다. 이건 모두 전쟁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전쟁이란 초기의 수렵인들이 갑자기 등장하여 자신들을 억압하는 왕을 없애기 위한 수단이었다. 수장을 제거하려는 두 여성은 이 원시 수단을 미시적으로 재현하는 전쟁 기계이다. 그리고 토모에의 서사에선, 뭍으로 따라 올라오는 포식자들과의 생존을 위한 투쟁이라는 전쟁의 근원을 엿볼 수 있다.


십자 흉터라는 영토

그녀가 켄신의 뺨에 선을 그어 십자 상처를 완성하는 순간, 두 개의 서로 다른 강렬도, 키요사토의 원한적 집념과 토모에의 비극적 용서/사랑이 만나 서로의 진동을 상쇄한다.


토모에를 되찾기 위해 따라나선 켄신, 자객들의 목숨을 건 저항은 거대한 폭음과 빛의 진동으로 최강 검객의 오감을 마비시킨다. 그리고 제대로 듣지도 못하고 볼 수도 없는 절대 열세 속에서 휘두른 검이 그를 보호하기 위해 몸으로 막아서는 토모에의 등을 가른다.


가냘픈 숨을 헐떡이는 죽음 직전의 그녀가 켄신의 뺨에 선을 그어 십자 상처를 완성하는 순간, 두 개의 서로 다른 강렬도, 키요사토의 원한적 집념과 토모에의 비극적 용서/사랑이 만나 서로의 진동을 상쇄하고 새로운 영토(안식)를 구축한다. 피가 멈춘다는 것은 폭주하던 진동이 비로소 잔잔해지며 하나의 매듭을 지었음을 의미하는 것이다.


켄신이라는 존재가 뿜어내는 슬픔, 고독, 그리고 그가 짊어진 시대의 무게라는 '진동'을 토모에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다. 그녀의 신체는 증오라는 하나의 목적에 얽매인 유기체가 아니라, 원수와의 교감 속에서 끊임없이 변형되고 마침내 사랑과 합치되는 '기관 없는 신체'로 거듭났다.


유키시로 토모에, 아니 히무라 토모에가 도주 끝에 구축한 영토는 한 사내의 뺨보다 훨씬 광대하다. 훗날 불살의 나그네가 구하는 수많은 목숨을 생각하면 그렇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결말: 무덤을 파던 손

히코 세이쥬로는 어째서 이 가냘픈 소년을 비천어검류라는 살인 검을 전수할 제자로 삼은 것일까. 그는 누이 같았던 일행뿐만 아니라 도적떼의 무덤까지 맨손으로 파낸 어린 신타에게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


질문에 답이라도 하듯 이 작품은 마지막에도 세 여인의 무덤을 비춘다. 제대로 된 비석 하나 없이 십자 형태의 비목만 서있는 그곳에 토모에가 켄신에게 남겨준 푸른 목도리가 걸려 있다.


들뢰즈에게 예술 작품의 진정한 목적은 감정이나 기억의 재현이 아니라, 감각과 정동 그 자체를 영원히 보존하는 '기념비(Monument)'를 세우는 것이다. 켄신의 뺨에 새겨진 십자 흉터가 내면화된 영토의 지도라면, 무덤에 세워진 '십자 비목'은 그 치열했던 생성과 진동의 과정이 물리적 대지 위에 우뚝 선 결과물이다.


비목에 걸린 '푸른 목도리'는 백매향의 냄새(바이러스)가 휘발되지 않고 켄신의 존재 깊숙이 영원히 감염되었음을 증명하는 시각적 흔적이다. 이 무덤 앞은 두 명의 특이자가 만나 서로를 부수고 재건했던 그 시간이 영원히 멈추어 보존된 공간, 새로운 천일 번째 고원이다.


추신: 역사의 문제
토모에는 "사람을 베는 것으로 얻어지는 행복이 있겠냐"며 케신에게 물었다. 이 물음 그녀가 켄신에게 하는 것이지만, 원작자인 와츠키 노부히로가 이 시대에 하는 질문이기도 하다.

카츠라 코고로를 비롯한 조슈 번 유신지사들은 새 시대란 대의로 자신들의 피의 업을 정당화한다. 하지만 그들을 이어 일본을 이끈 위정자들은 이른바 세계 역사상 가장 미친 세 집단 중 하나라는 것을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와츠키는 원작에서 이런 역사 인식을 분명히 하고 날 선 비판을 드러낸 바 있다. 따라서 이런 문제로 이 작품을 거부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바람의 검심 -메이지 검객 낭만기- 추억편(るろうに剣心 -明治剣客浪漫譚- 追憶編, 1999)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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