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식탁 4 : 불안이 문을 두드릴 때, 나를 지키는 하얀 온기
시드니 밤은 낮보다 고요하다. 하지만 세상이 모두 잠든 시간, 유독 나만 덩그러니 깨어있는 것 같은 밤이 있다. 내일 해야 할 일, 막연한 불안, 잊힌 기억들이 뒤엉켜 머릿속을 소란스럽게 만든다. 양을 백 마리까지 세어봐도, 눈은 점점 더 말똥말똥해질 뿐이다.
결국 항복하고 침대에서 빠져나온다. 캄캄한 거실, 낮게 깔리는 냉장고 모터 소리만이 유일한 친구다. 이럴 때 나에게 필요한 건 수면 유도제가 아니다. 아주 오래된, 그래서 가장 확실한 처방전이 필요하다.
나는 가장 아끼는 작은 편수 냄비를 꺼낸다. 하얀 우유를 콸콸 붓고 약한 불에 올린다. 우유가 데워지며 가장자리에 작은 기포가 보글거릴 때, 시나몬 스틱 하나를 툭 부러뜨려 넣는다.
곧이어 부엌 공기가 바뀐다. 차갑고 날 서 있던 새벽 공기 사이로, 따뜻하고 달콤하며 쿰쿰한 시나몬 향이 스며든다. 마치 누군가 뒤에서 포근한 담요를 덮어주는 것 같은 냄새. 나는 가스레인지 앞에 서서 그 하얀 김을 깊이 들이마신다.
우유가 충분히 뜨거워지면 불을 끄고 꿀을 한 스푼 크게 떠서 녹인다. 황금빛 꿀이 하얀 우유 속으로 소용돌이치며 사라진다.
이 단순한 행위가 이상하게도 큰 위로가 된다. 어릴 적, 열이 펄펄 끓던 밤에 엄마가 타 주시던 그 달콤한 맛이 떠올라서일까. 달그락거리는 숟가락 소리마저 자장가처럼 들린다. 불안으로 바짝 말랐던 목구멍을 이 뜨겁고 달콤한 액체가 부드럽게 코팅해 줄 것이다.
우유만으로는 조금 아쉬울 때, 미리 구워둔 마들렌 통을 연다. 조개 모양의 작은 케이크. 버터와 밀가루가 만나 구워진 냄새는 세상에서 가장 안전한 냄새다.
"괜찮아, 별일 아니야." 하고 등을 토닥이는 듯한 냄새. 갓 구워 겉은 살짝 바삭하고 속은 카스텔라처럼 촉촉한 마들렌 하나를 집어 든다. 아직 온기가 남아있다. 이 작은 빵 조각이 뭐라고, 손에 쥐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놓인다.
어둠 속 소파에 깊숙이 파묻힌다. 따뜻한 머그잔을 두 손으로 감싸 쥐면 손끝에서부터 온기가 퍼진다. 시나몬 향 우유를 한 모금 마시고, 마들렌을 베어 문다. 달콤함이 온몸으로 퍼져나간다.
팽팽하게 당겨져 있던 신경줄이 그제야 느슨해진다. 뱃속이 따뜻해지니 복잡했던 머릿속도 조금은 단순해지는 것 같다. 이제야 비로소, 단잠을 잘 준비가 되었다.
잠 못 드는 당신을 위해.
복잡한 생각은 잠시 멈추고, 오직 따뜻함에만 집중해 보세요.
재료 (1인분 기준)
우유: 200ml. 저지방보다는 고소한 일반 우유가 좋아요.
시나몬 스틱: 1개. (없다면 시나몬 파우더 톡톡)
꿀: 1~2큰술. 당신의 고단함만큼 달콤하게 넣으세요.
마들렌: (시판 제품도 훌륭하지만, 직접 굽고 싶다면) 버터 100g, 박력분 100g, 설탕 80g, 계란 2개, 베이킹파우더 3g, 레몬 제스트 약간.
만드는 순서
(따뜻한 우유)
데우기: 작은 냄비에 우유와 시나몬 스틱을 넣고 중 약불에서 천천히 데웁니다.
기다리기: 가장자리에 기포가 올라오고 하얀 김이 날 때까지 기다립니다. 팔팔 끓이면 막이 생기니 주의하세요.
녹이기: 불을 끄고 시나몬 스틱을 건져낸 뒤, 꿀을 넣어 잘 저어줍니다.
(마들렌 간단 레시피)
녹인 버터, 푼 계란, 설탕, 가루류를 모두 섞어 냉장고에서 1시간 휴지 시킨 뒤, 틀에 패닝 하여 180도 오븐에서 12~15분 굽습니다. 배꼽이 볼록 튀어나오면 성공!
Tip.
마들렌을 따뜻한 우유에 '푹' 찍어 드셔보세요.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내리는 그 식감이 불안한 마음까지 녹여줄 거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