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드니의 식탁 5 : 껍질을 까먹으며 나누는 금요일 밤의 수다
일주일 중 가장 기다려온 순간. 시드니의 금요일 저녁 공기는 다른 날보다 조금 더 들떠있다. 퇴근길, 피쉬 마켓(Fish Market)에 들러 홍합을 산다. 검고 윤기 나는 껍데기들이 그물망 안에서 달그락거리는 소리마저 경쾌하다. 오늘 밤은 '나를 위한 식탁'이 아니라 '우리를 위한 식탁'이다. 이 도시에서 가족보다 더 가까운, 내가 선택한 가족들이 오기로 했다.
초인종이 울리고, 양손 가득 와인과 꽃을 든 친구들이 들이닥친다. 격식 차린 '초대'라기보단, 그냥 편한 '모임'이다. 우리는 좁은 부엌에 옹기종기 모여 서서 재료를 다듬는다. "이번 주는 진짜 힘들었어." 투덜대며 마늘을 빻는 친구, "이 와인 맛있대!" 하며 코르크를 따는 친구. 요리는 노동이 아니라 놀이가 된다. 벌써부터 부엌은 웃음소리와 마늘 볶는 냄새로 가득 찬다.
가장 큰 냄비를 꺼낸다. 올리브오일에 마늘과 페페론치노 향이 알싸하게 올라오면, 씻어둔 홍합을 한꺼번에 쏟아붓는다. "촤르륵!" 요란한 소리와 함께, 친구가 가져온 차가운 쇼비뇽 블랑(Sauvignon Blanc)을 아낌없이 부어준다. 순간, 알코올이 확 날아가며 향긋한 포도 향과 비릿하면서도 시원한 바다 내음이 뒤섞인 하얀 증기가 부엌을 메운다. 홍합들이 '톡, 톡' 소리를 내며 딱딱했던 입을 벌리기 시작한다.
요리는 금방 끝난다. 우리는 뜨거운 냄비째 식탁 가운데 놓고 둘러앉는다. 앞접시와 포크가 있지만, 결국 다들 손을 쓰게 된다. 빈 홍합 껍데기 하나를 집게처럼 사용해 다른 홍합 살을 쏙쏙 빼먹는 게 제맛이다. "뜨거워, 뜨거워!" 하면서도 멈출 수가 없다. 바게트 빵을 찢어 홍합과 와인의 정수가 우러난 뽀얀 국물에 푹 적셔 먹는다. 식탁 한쪽에는 우리가 비워낸 검은 껍데기들이 산처럼 쌓여간다.
껍데기가 쌓여갈수록, 우리의 이야기도 깊어진다. 한 주 동안 딱딱하게 닫아두었던 마음의 껍질을 하나씩 까서 보여주는 시간. 직장 상사 욕부터 남모를 미래에 대한 고민까지. 우리가 마시는 화이트 와인처럼 투명하고 솔직한 대화가 오간다. 서로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잔을 부딪히는 이 소란스럽고 편안한 식탁이 있어, 나는 또 다음 주를 살아갈 힘을 얻는다.
좋은 사람들과 함께하고 싶은 날, 이보다 더 좋은 메뉴는 없습니다. 만들기는 쉽지만, 분위기는 근사해지거든요.
재료 (2~3인분 기준)
홍합: 1kg. (가장 중요한 건 '해감'과 '손질'입니다. 수염을 잡아당겨 제거하고 깨끗이 씻어주세요.)
화이트 와인: 1컵 (200ml). 달지 않은 드라이한 것으로. (마시다 남은 것도 좋아요!)
마늘: 5~6쪽, 편 썰거나 다져서.
페페론치노: 2~3개. (매콤한 킥이 필요하다면 부숴서 넣으세요.)
올리브 오일: 넉넉히.
버터: 1큰술. (풍미를 더해줍니다.)
파슬리: 한 줌, 다져서. (없으면 생략 가능하지만, 있으면 훨씬 예뻐요.)
필수 곁들임: 겉이 바삭한 바게트나 사워도우 빵.
만드는 순서
향 내기: 깊은 냄비에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마늘과 페페론치노를 약불에서 볶아 향을 냅니다. 타지 않게 조심하세요.
센 불에 볶기: 불을 센 불로 올리고 손질한 홍합을 넣습니다. 오일이 코팅되도록 재빠르게 뒤적여줍니다.
와인 샤워: 화이트 와인을 붓고 바로 뚜껑을 덮습니다. 와인의 증기로 홍합을 찌는 과정입니다.
뜸 드리기: 3~5분 정도 지나면 홍합들이 입을 다 벌립니다. (입을 열지 않은 홍합은 과감히 버리세요. 상한 겁니다.)
마무리: 뚜껑을 열고 버터 한 조각과 다진 파슬리를 넣어 휘리릭 섞어주면 완성!
Tip. 이 요리의 진짜 주인공은 남은 국물입니다. 빵을 국물에 푹 적셔 드시거나, 삶은 파스타 면을 넣어 비벼 드셔보세요. 그 맛에 반해 다음 주에 또 홍합을 사러 가게 될지도 모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