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울은 수용성이라서, 레몬을 짭니다

시드니의 식탁 3 : 무기력한 날, 나를 깨우는 가장 노란 방법

by Vibbidi Vobbidi


시드니에 비가 내리면 도시는 거대한 수족관이 된다. 회색빛 구름이 오페라 하우스의 지붕을 낮게 누르고, 습기를 머금은 공기는 물먹은 솜처럼 어깨를 짓누른다.


아무런 이유 없이 마음이 바닥으로 가라앉는 날이 있다.

글은 한 줄도 써지지 않고, 그렇다고 어제 미뤄둔 일도 하기 싫고 어제 마신 커피 잔을 치우는 것조차 버거운 그런 날. 나는 침대 밖으로 나오는 대신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쓴다.


하지만 배꼽시계는 야속하게도 정직하다. 허기는 우울보다 힘이 세다. 나는 항복하듯 부엌으로 터벅터벅 걸어 나온다. 냉장고를 열어 가장 환한 것을 찾는다.


레몬이다.


잿빛 세상에서 유일하게 빛나는 노란색. 둥글고 단단한 과실을 손에 쥐면, 차갑고 오돌토돌한 감촉이 전해진다. 나는 이 작은 태양을 믿어보기로 한다.


냄비에 물을 올리고 소금을 넉넉히 친다. 바닷물처럼 짭짤하게. 물이 끓는 동안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인다.

'치이익' 하는 소리와 함께 고소한 냄새가 퍼지기 시작하면, 레몬 껍질을 갈아 넣을 차례다.



강판에 레몬을 문지른다. 노란 눈꽃이 팬 위로 흩날린다. 순간, 톡 쏘는 상큼한 향기가 부엌을 가득 채운다. 우울은 수용성(水溶性)이라더니, 이 강렬한 향기 앞에서는 맥을 못 추고 녹아버리는 것 같다.


삶아진 면을 건져 팬에 넣고, 면수 두어 스푼과 함께 재빠르게 볶는다. 버터와 레몬 오일이 만나 만들어낸 윤기 나는 소스가 면발에 착 감긴다. 마지막으로 레몬 반 개의 즙을 힘껏 짜 넣는다.


"치익-"


상큼한 산미가 더해지는 순간, 요리는 완성된다. 접시에 담고, 파르메산 치즈를 눈처럼 소복이 뿌린다. 초록색 딜(Dill)도 몇 줄기 뜯어 올린다. 노랑, 하양, 초록. 그릇 위에 봄이 왔다.

창밖은 여전히 회색빛이지만, 내 식탁 위는 환하다. 포크로 면을 돌돌 말아 입에 넣는다. 짭조름한 버터의 풍미 뒤로 레몬의 신맛이 경쾌하게 터진다.


미간이 살짝 찌푸려지는 그 찰나의 자극. 그것이 나를 깨운다. 멍하던 머릿속에 전등 스위치가 켜진 기분이다.

가끔은 복잡한 위로의 말보다, 혀끝을 때리는 단순하고 강렬한 맛이 더 큰 힘이 된다. 다 먹고 난 빈 접시에서는 여전히 향긋한 레몬 냄새가 났다. 나는 창문을 활짝 열었다. 비 냄새와 레몬 향이 섞여 들어왔다.


이제, 다시 시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오늘의 식탁: 레몬 딜 버터 파스타


기분 전환이 필요한 당신을 위해, 오늘의 요리법을 작게 남겨둡니다. 재료는 단순하지만, 맛은 결코 단순하지 않아요.


준비할 것들 (1인분 기준)

파스타 면: 스파게티나 링귀니가 잘 어울려요. 80~100g.

레몬: 껍질이 깨끗한 것으로 1개. (제스트와 즙 모두 사용)

버터: 무염 버터 2큰술. (가염 버터라면 소금양 조절)

생 딜(Dill): 한 줌. 없다면 파슬리나 바질도 괜찮지만, 딜의 향이 가장 잘 어울려요.

파르메산 치즈: 듬뿍 갈아서.

소금, 후추: 약간.


만드는 순서

면 삶기: 냄비에 물을 넉넉히 붓고, 소금을 넣어 바닷물처럼 짭짤하게 간을 합니다. 면을 넣고 포장지에 적힌 시간보다 1분 덜 삶아주세요. 중요: 면수 한 컵(약 200ml)은 버리지 말고 꼭 남겨두세요.


소스 만들기: 면이 삶아지는 동안, 약불로 달군 팬에 버터를 녹입니다. 버터가 녹으면 레몬 1개 분량의 껍질(제스트)을 강판에 갈아 넣고, 다진 딜을 넣어 향을 냅니다. 타지 않게 주의하세요.


볶기: 삶아진 면을 팬에 옮겨 담고, 남겨둔 면수를 반 컵 정도 붓습니다. 중불로 올려 면수와 버터 소스가 잘 섞이도록 빠르게 볶아줍니다. (이 과정을 '만테까레'라고 해요. 소스가 크림처럼 변하며 면에 착 달라붙습니다.)


마무리: 불을 끄고, 레몬 반 개의 즙을 짜 넣습니다. 마지막으로 후추를 갈아 넣고 한 번 더 섞어주면 완성!


Tip. 접시에 담은 후, 남은 레몬 제스트와 딜, 파르메산 치즈를 추가로 뿌려주면 보기도 좋고 풍미도 훨씬 살아납니다. 차가운 화이트 와인 한 잔을 곁들이면 금상첨화!






keyword
이전 02화마음이 허기질 땐, 무화과를 굽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