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식탁 1: 호주에서 하얀 눈을 쌓는 법, 파블로바
시드니의 1월은 낯설다. 아직도 크리스마스의 아쉬움이 남아있지만, 거리는 반소매와 샌들 차림의 사람들로 북적인다. 땀이 흐르는 이마 위로 쏟아지는 뜨거운 태양. 눈(Snow)은 냉동고 속에나 있다. 펑펑 내리는 빙수같은 하얀 눈을 기대할 수 없는 이 뜨거운 도시에서, 사람들은 눈 대신 식탁 위에 하얀 산을 쌓는다. 호주의 국민 디저트, '파블로바(Pavlova)'다.
습도가 높은 날엔 머랭이 잘 처지지 않는다지만, 땀을 뻘뻘 흘리며 오븐을 돌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다. 이 디저트야말로 여름의 맛이기 때문이다.
계란 흰자에 설탕을 나누어 넣으며 거품을 올린다. 위잉- 돌아가는 믹서 소리가 요란하다. 투명했던 흰자가 점차 불투명한 하얀 크림으로 변하고, 마침내 단단한 뿔이 설 때까지 인내가 필요하다. 여기에 전분과 식초를 조금 넣는다. 이것이 바로 파블로바의 마법이다. 겉은 사탕처럼 바삭하지만, 속은 마시멜로처럼 쫀득하고 촉촉하게 만드는 비결. 오븐에 넣고 낮은 온도에서 아주 천천히 굽는다. 굽는다기보다는 말린다는 표현이 맞겠다.
두 시간의 기다림 끝에 하얀 구름 같은 빵이 완성된다. 표면에는 자연스러운 크랙이 가 있다. 이제 그 위에 차가운 생크림을 두툼하게 덮는다. 마치 폭설이 내린 것처럼. 그리고 대망의 주인공, 패션프루츠를 꺼낸다. 쭈글쭈글한 보라색 껍질을 반으로 가르면, 그 안에는 샛노란 과육과 까만 씨앗들이 보석처럼 박혀 있다. 다른 과일은 필요 없다. 딸기의 단맛으로는 이 거대한 설탕 덩어리를 감당할 수 없다. 오직 패션프루츠의 날카로운 산미만이 머랭의 단맛을 제압할 수 있다.
하얀 크림 위에 노란 소스를 끼얹는다. 툭, 투둑. 검은 씨앗들이 눈 위에 떨어진다. 포크로 케이크를 자른다. "파사삭-" 하고 부서지는 소리가 경쾌하다. 한 입 가득 넣으면, 처음엔 솜사탕처럼 바삭하다가 금세 쫀득한 속살이 혀에 감긴다. 그 순간, 패션프루츠의 씨앗이 '톡' 하고 터진다. 찌릿할 정도로 강렬한 새콤함이 단맛 사이를 파고든다. 침샘이 폭발한다.
입안에서 사르르 녹아 없어지는 이 맛은 덧없어서 더 매혹적이다. 습한 여름 공기 속에 두면 금방 눅눅해져 주저앉아 버리기에, 만들자마자 그 자리에서 다 먹어 치워야 한다. 창밖엔 매미가 울고, 내 입안엔 차갑고 달콤한 눈이 내린다. 눈 내리지 않는 시드니에서, 우리가 크리스마스를 보내는 방법이다.
호주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여름 디저트. 모양 잡느라 애쓰지 마세요. 파블로바는 조금 무너지고 부서져야 제맛입니다.
재료 (지름 15cm 1개 분량)
계란 흰자: 2개 분량 (차가운 것보다 실온이 거품이 잘 납니다.)
설탕: 100g (흰자 무게의 약 1.5배).
옥수수 전분: 1작은술.
식초(또는 레몬즙): 1작은술.
바닐라 익스트랙: 약간.
토핑: 동물성 생크림 200ml, 패션프루츠 3~4개 (냉동 퓌레도 OK, 하지만 생과일이 진리!)
만드는 순서
머랭 치기: 물기 없는 깨끗한 볼에 흰자를 넣고 휘핑하다가, 거품이 올라오면 설탕을 3번에 나누어 넣으며 고속으로 돌립니다. 뒤집어도 떨어지지 않을 만큼 단단하고 윤기 나는 뿔을 만듭니다.
섞기: 전분과 식초, 바닐라를 넣고 저속으로 10초만 가볍게 섞어줍니다. (너무 오래 섞으면 거품 죽어요!)
모양 잡기: 오븐 팬에 유산지를 깔고 머랭을 동그랗게 쌓아 올립니다. 가운데를 살짝 오목하게 파주면 나중에 크림 올리기 좋아요.
굽기(말리기): 100도로 예열한 오븐에서 90분간 굽습니다. 다 구워지면 오븐 문을 살짝 열어둔 채로 그 안에서 완전히 식힙니다. (꺼내면 온도 차 때문에 푹 꺼져요.)
토핑: 완전히 식은 머랭 위에 설탕 없이 휘핑한 생크림을 듬뿍 얹고, 패션프루츠 속을 파서 촤르륵 뿌려줍니다.
Tip. 패션프루츠 청을 쓰면 너무 달아집니다. 머랭 자체가 설탕 덩어리니까, 토핑은 꼭 설탕을 넣지 않은 생크림과 새콤한 생과일을 써야 밸런스가 맞아요. 커피보다는 차가운 스파클링 와인과 함께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