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박을 가장 우아하게 먹는 법

시드니의 식탁 8 : 단맛과 짠맛이 만나는 그 미묘한 경계에서

by Vibbidi Vobbidi

남반구의 이 곳의 여름은 유난히 드세다. 아침부터 창문을 두드리는 강렬한 햇살에, 도시는 온종일 끓어오르는 냄비 같다. 정수리가 뜨거워지는 오후 2시, 물로도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 찾아올 때면 생각나는 건 단 하나, 붉고 차가운 수박이다.


오늘은 수박을 반달 모양으로 썰어 급하게 베어 무는 대신, 조금 더 천천히 나를 대접하는 방법을 택하기로 한다. 더위에 지친 나를 위한 작고 시원한 사치, 와인 한 잔을 곁들일 수 있는 어른스러운 샐러드로.


잘 익은 수박을 도마 위에 올린다. 칼끝에서 '사각'거리며 잘려 나가는 붉은 과육의 소리가 왠지 모르게 경쾌하다. 그저 자르는 행위만으로도 마음이 조금 시원해지는 기분.


투명한 유리 볼에 깍둑썰기한 수박을 담고, 그 위에 하얀 페타(Feta) 치즈를 손으로 무심하게 부수어 올린다. 그리스의 건조한 바람을 닮은 이 짭짤하고 푸석한 치즈는, 수박의 넘치는 수분과 만나 비로소 완벽해진다. 선명한 빨강 위에 툭툭 내려앉은 하얀 덩어리들. 그 강렬한 대비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지쳐있던 감각이 조금씩 깨어나는 것 같다.


여기에 초록색 민트 잎 몇 장을 뜯어 올리고, 아껴두었던 가장 질 좋은 엑스트라 버진 올리브 오일을 듬뿍 두른다. 황금빛 오일이 재료들을 부드럽게 감싸 안는 모습을 가만히 지켜본다.



포크로 수박과 치즈, 민트를 한꺼번에 찍어 입에 넣는다. 차가운 수박 과즙이 '팡' 하고 터지며 입안을 가득 채우는 순간, 페타 치즈의 투박하고 묵직한 짠맛이 훅 치고 들어온다. 단맛과 짠맛이 입안에서 벌이는 아슬아슬한 줄타기. 마지막으로 민트의 청량한 향이 코끝을 스치며 이 모든 소란을 다정하게 다독여 준다.


이 복합적인 맛의 여운은 자연스레 차갑게 칠링 된 로제 와인을 부른다. 한낮의 열기 속에서 즐기는 달콤하고, 짭짤하고, 향긋한 위로.


복잡한 레시피는 필요 없다. 정확한 계량도 중요하지 않다. 그저 좋아하는 재료를 꺼내고, 나를 위해 정성스럽게 접시를 채우는 그 짧은 시간.


텅 빈 접시를 내려놓을 때쯤, 다시 오후를 즐길 기운이 생겼다. 완벽하지 않아도 괜찮다. 이 한 접시로, 나의 여름은 충분히 근사하게 느껴진다.



오늘의 식탁: 수박 & 페타 치즈 샐러드


불을 쓸 필요도 없습니다. 5분 만에 완성되는 럭셔리한 안주입니다. 손님상에 내놓으면 "이게 어울려?" 하다가, 다들 빈 접시만 긁게 될 거예요.


재료

수박: 1/4통. (씨 없는 수박이면 더 좋아요. 차갑게 보관한 상태로!)

페타 치즈: 100g. (큐브 형태보다는 블록을 사서 손으로 부수는 게 더 멋스럽습니다.)

애플민트: 한 줌. (없으면 바질도 괜찮지만, 민트의 청량감이 최고입니다.)

올리브 오일: 2~3큰술. (향이 좋은 엑스트라 버진 필수)

라임(또는 레몬): 즙 약간.

후추: 통후추를 갈아서.

(선택사항): 발사믹 글레이즈, 적양파 슬라이스, 블랙 올리브.


만드는 순서

썰기: 수박은 껍질을 제거하고 한입 크기(2~3cm 큐브)로 썹니다.


담기: 넓은 접시에 수박을 깔고, 페타 치즈를 손으로 으깨어 골고루 뿌려줍니다.


향 더하기: 민트 잎을 뜯어서 군데군데 올립니다.


드레싱: 먹기 직전에 올리브 오일과 라임 즙을 두르고, 통후추를 갈아 뿌립니다.


Tip: 취향에 따라 발사믹 글레이즈를 지그재그로 뿌리면 풍미가 더 진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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