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쪽은 처음이라서요 (3)

by 필요한

그에게 물어본 적이 있다. 우리가 처음 만난 날. 홍대 입구역에서 어떻게 나를 한눈에 알아봤는지.


" 그게 그렇게 궁금해? "


그의 음성에는 장난이 가득했다. 동그랗고 맑은 그의 눈 속에 비친 나를 보며 다시 물었다.


" 장난치지 말고 그때 진짜 어떻게 나를 알아봤어? "


양 볼의 애교 섞인 보조개가 사라지고 살며시 미소 짓던 그의 입꼬리가 미묘하게 내려갔다. 나도 모르게 살짝 긴장을 하게 만들었다. 그의 눈동자를 보고 있어도 도무지 그의 감정을 알 수 없었고 그렇게 몇 시간 같은 몇 초의 침묵이 흘렀다.


" 저 사람이면 좋겠다 생각했어. 멀리서 지켜보는데 시무룩한 모습이 귀여웠고 가까이 갈수록 땡그래지는 눈이 이 사람이구나 확신하게 했어. "


" 안녕. "


그의 첫마디에 순간 당황해서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내가 그리던 모습의 머릿속 그 사람이 내 앞에 그것도 나를 보며 웃으며 서 있다는 것이 너무 비현실적이었다. 맘을 추스르고 다시 그를 바라보았다. 회색 비니와 검은 롱패딩 때문에 얼굴이 더 도드라져 보였다. 짙게 잘 정리된 눈썹, 그 사이를 따라 내려오는 오뚝한 코, 쌍꺼풀은 없지만 크고 동그란 맑은 눈, 분홍색과 붉은색 중간 채도의 입술. 갑자기 그가 미소를 지었다. 미소에 보조개가 꽃 피어났다. 계란 같이 동그란 얼굴에 담겨 있는 이 모든 것들이 조화를 이뤘다.


" 맘에 안 들어? "


아무 말 없이 가만히 보고 있던 나에게 그가 웃으며 말했다. 당장이라도 두근거리는 내 마음을 입 밖으로 꺼내고 싶었지만 여전히 나에게 남아있는 경계심이라는 녀석이 다행스럽게도 나를 억제시켜 줬다.


" 아니? 그런 거 아닌데? 배고프다! 뭐 먹을까? "


나의 마음을 이미 알아차린 걸까? 내 말이 뭐가 우스운 건지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뒤돌아섰다.


" 맛있는 거 먹으러 가자. "


그의 발걸음, 그의 목소리와 멀어지지 않으려 티 나지 않게 최대한 바짝 붙어 걷다 보니 에스컬레이터에 한 칸의 간격도 없이 바짝 붙어 서게 되었다. 은은하게 그의 향기가 나를 감쌌다. 흔한 섬유유연제 향은 아니었다. 어떤 말로 형용할 수 없는 포근한 향. 그의 향은 그의 체온처럼 따뜻함을 가지고 있었다. 서울의 바쁜 현대 사회에서는 에스컬레이터도 더 빠르게 설정되어 있는 걸까? 그렇게 길게만 보였던 에스컬레이터는 어느새 정상에 도착해 있었다.


경의선 숲길을 따라 초록색 간판이 돋보이는 이름 모를 옷 가게를 지나 10분쯤 걸음을 옮기다 갑자기 멈춰 선 곳은 1층 짜리 허름한 외관의 쌀국숫집이었다. 바 테이블과 창가 테이블 정도의 협소한 좌석이 전부였지만 따스한 습기가 가득한 가게 안의 사람들 표정에서 이곳이 맛집이라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 춥다. 들어가자. 문턱 조심해. "


그의 손에 이끌려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의 말대로 높은 문턱이 있었다. 그의 말 덕분에 평소보다 큰 걸음으로 문턱을 넘었다. 문턱을 지나 자리로 향할 때까지 그의 손은 내 팔죽지에 살포시 자리하고 있었다. 따뜻한 쌀국수의 열기 때문에 볼이 발그레 해졌다. 재빨리 자리에 앉아 냉수 한 잔을 들이켜고 아무렇지 않은 척 그의 메뉴 추천을 들었고 무슨 메뉴인지도 모른 채 그저 좋다고 말한 후 맞이한 쌀국수는 태어나 처음 먹어보는 고수가 가득한 쌀국수였다. 어떤 맛일까 두려움을 가득 안고 먹었던 첫 입은 ' 나쁘지 않은데? '라는 생각이었다. 무엇보다 국물 자체가 처음 먹어보는 이국의 맛이었지만 묘하게 계속 먹게 되는 느낌이었다. 걱정하던 것과 달리 잘 먹는 모습을 보며 약간의 안도감과 이유 모를 눈웃음을 짓던 그와의 첫 식사는 그렇게 나의 첫 고수를 경험하게 했고 그렇게 특별함을 남겨주었다.


온기를 가득 채운 채 연남동 거리로 나와 가볍게 산책을 했다. 방금 전까지 매섭던 겨울바람도 살랑살랑 불어와 코 끝을 간지럽혔다. 그와의 대화는 도무지 끊이질 않았다. 아무 말을 해도 서로가 좋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너무 편안했다. 식상한 말이지만 이 시간이 영원했으면 했다. 카페로 자리를 옮겨 대화를 이어가다 보니 어느덧 해가 오늘에 안녕을 고했다.


집에 가는 길이라며 우리가 처음 마주 했던 홍대 입구역에 나를 바래다주고는 내가 완전히 사라질 때까지 나를 바라봐주던 그와의 첫 만남이 끝나고 돌아가는 전철.


덜컹거리는 전철에서 행복한 오늘의 기억을 되새김질하며 눈을 붙이려는 중 그의 메시지가 나를 깨웠다.


" 나랑 사귈래? "



수, 토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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