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를 따라 하며 세상을 밀고 다니는 나이
저녁밥을 치우고
잠깐 숨을 돌리던 시간이었다.
거실 쪽에서
보행기 굴러가는 소리가 났다.
늘 듣던 소리였는데,
오늘은 유난히 조금 더 묵직하게 들렸다.
고개를 돌려 보니,
채아가 보행기를 타고
한 손에 롤 클리너를 들고 있었다.
길게 뻗은 막대를 바닥에 끌면서
천천히 냉장고 쪽으로 이동하는 중이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속으로 이런 생각이 먼저 떠올랐다.
‘얘가 엄마 하는 행동을
벌써 따라 하려는 건가.’
생각해 보니,
나는 하루에도 몇 번씩
저 롤 클리너를 끌고 다닌다.
식탁 밑, 거실 매트, 소파 옆.
밥풀, 머리카락, 과자 부스러기.
그냥 해야 하니까 하는 일이라
깊이 생각해 본 적도 없는데,
이 작은 우주인은 그 장면을
옆에서 조용히 보고 있었던 거다.
아직 말도 못 하는 아이가
롤대를 잡고 서 있는 모습이
우스우면서도 이상하게 가슴이 한 번 쿡 했다.
“너 지금
엄마 흉내 내는 거야?”
나도 모르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채아는 대답 대신
롤을 양손으로 더 꽉 쥐었다.
보행기를 앞뒤로 밀면서
바닥을 크게 한 번 쓸고,
이번에는 방향을 틀어
TV 앞으로 이동했다.
롤이 바닥에 제대로 닿는 것도 아니고,
먼지는 하나도 안 붙었지만,
채아 얼굴은
분명히 자기 할 일을 하는 사람처럼
진지해 보였다.
우주기지 기준으로 보면
지금은 기지 바닥을 순찰하는 중일 것이다.
엄마 기준으로 보면
그냥 ‘엄마 따라 하기 놀이’ 일뿐이겠지만,
둘 중 어느 쪽도 틀린 말은 아니라
굳이 고르지 않고 그대로 두었다.
그 모습을 보다가
문득 내 어린 시절이 떠올랐다.
나도 어릴 때
밀고 다니는 장난감을 참 좋아했다.
삑삑 소리 나는 바퀴에
알록달록한 공이 달려 있던 그 장난감.
집안을 뺑뺑 돌면서
별 의미 없는 바닥을 끝없이 밀고 다녔는데,
그게 왜 그렇게 재미있었는지 모르겠다.
‘그래, 채아한테도
저런 거 하나 사 줘야겠다.’
그 생각이 스치자, 가슴 한쪽이 살짝 저릿했다.
예전에 내가 돌던 그 길 위를,
이제는 채아가
자기 롤을 끌고 지나가고 있는 것 같아서였다.
채아는 한참 동안
보행기를 이리저리 몰며
집 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녔다.
작은 소리를 내며
뭔가를 설명하는 듯한 표정으로,
“여기도 가봤어요, 저기도 밀어봤어요.”
오늘 본 세상을, 혼자 다녀와 혼자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나는 그 모습을
사진으로 몇 장 찍어 두었다.
나중에 다시 보다가
이 문장이 자연스럽게 떠올랐다.
“오늘도 세상 탐구하느라 즐거운
우리 집 야간 청소반 아기우주인.”
솔직히 말하면,
진짜 청소는 아직 안 했으면 좋겠다.
엄마는 어릴 때부터
눈치를 보며 움직이는 법과
‘도와주는 애’ 역할을 너무 일찍 배웠다.
그래서 이 장면이
집안일을 대신해 주는 아이의 모습이 아니라,
그냥 세상을 가볍게 밀어 보던 하루로
기억되기를 바랐다.
언젠가는
채아의 두 손에도
일과 책임, 관계 같은
무거운 것들이 쥐어지는 날이 올 것이다.
그 생각을 하니,
오늘 이 아이가 밀고 다니는 것이
이 가벼운 롤 하나뿐이라는 사실이
이상하리만큼 고마웠다.
지금 이 시간만큼은
무거운 건 모두 엄마 몫으로 남겨 두고,
채아가 이 집 바닥이 어디까지 이어져 있는지
몸으로 익혀 보는 시기였으면 했다.
엄마가 바라는 것은
먼지 하나 없는 바닥이 아니라,
언젠가 이 사진을 다시 보게 되었을 때
“그때 나는 세상을 이렇게 밀고 다녔구나” 하고
웃으면서 떠올릴 수 있는
채아의 기억 한 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