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 엄마 없는 아침, 잠깐 궤도를 이탈한 날

딸 없이 보낸 몇 시간, 다시 돌아온 자리

by 북극성

오늘 아침, 처음으로 채아의 아침을 남편에게 온전히 맡기고 늦잠을 잤다.
알람을 끄고 다시 눈을 감았고, 몸은 이불속으로 더 깊이 가라앉았다.


눈을 뜨니, 평소라면 내가 두세 번은 일어나 움직였을 시간이었다.
먼저 남편에게 물었다.


“채아, 나 찾았어?”



남편은 의외로 담담하게 대답했다.

“아니. 자고 일어나서 지금까지 한 번도 안 찾았어.
일어나자마자 장난감 들고 놀자고 해서 같이 놀았지.
거실 청소도 다 했어. 오늘은 진짜 걱정 말고 잘 놀다 와.”



뿌듯한 얼굴로 그렇게 말해 줬다.
거실로 나가 보니, 채아는 아빠 옆에서 장난감을 붙잡고 놀고 있었다.
나를 보자마자 두 팔을 쭉 뻗고 안기러 달려왔다.



반가움 뒤로, 남편의 말이 남았다.
“엄마를 한 번도 안 찾았다”는 말.



서운함이 일곱,
이제 조금은 나도 내 여유를 찾아도 되겠구나 싶은 안도가 셋쯤 됐다.



채아가 나를 필요로 하는 것보다,
어쩌면 내가 채아에게 더 매달려 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



세 사람의 웃음 사이로, 한 사람의 마음이 살짝 기울어지는 시간.



점심에는 친구를 만나러 집을 나섰다.

작은 가정식 일식당에서 밥을 먹고,
조금 시끌벅적한 카페로 자리를 옮겼다.
잔 부딪히는 소리, 사람들 웃음, 음악이 한데 어우러져 있었다.
오늘은 그 소음이 이상하게 편했다.
조용하면 마음속 빈틈들이 더 또렷해질 것 같아서였다.


친구의 결혼식 청첩장을 받으면서
자연스럽게 결혼 이야기가 나왔다.


“너는 어때? 가끔 예전이 그립진 않아?”
친구가 그렇게 물었다.

잠시 생각하다가, 나는 솔직하게 말했다.



“나, 딸 낳고 많은 걸 잃었어.
내 시간, 내 몸, 내 삶… 예전 같던 거 거의 없어.”

말을 한 번 삼키고,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근데 또, 다 얻기도 했어.
엄마로 사는 삶을.”

스스로 해 놓고도 조금 쑥스럽지만, 거짓은 아니었다.



“많은 걸 잃었는데도…
걔가 나보고 ‘엄마’라고 불러주면, 솔직히 그걸로 된 것 같아.

시간을 되돌린다고 해도, 나 또 낳을 것 같아.
알면서도, 또 그 아이를 선택할 것 같아.”



친구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카페 안은 여전히 시끄러웠지만,
잠깐 둘 사이만 조용해진 느낌이었다.

웃으면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이어가면서도
머릿속 한구석에는 계속 채아가 있었다.




집에 돌아와 조용히 현관문을 열었다.
불을 켜지 않고, 발소리를 줄이며 거실로 걸어 들어갔다.

채아는 내가 들어온 줄 모르고 멍하니 앉아 있었다.
나는 방문 사이로 얼굴만 살짝 내밀었다.




하루 종일 참았던 울음을 엄마 얼굴 보자마자 한꺼번에 쏟아낸 아기 우주인.



“까꿍—”



채아의 눈동자가 내 얼굴을 찾았다.
잠깐 멈추더니, 이내 활짝 웃었다.


눈이 반달이 되고, 몸이 통통 튈 만큼 웃는 얼굴을 보니
반가움보다 미안함이 먼저 올라왔다.



‘오늘 하루, 너는 나 없이도 잘 지냈구나.
그 잘 지냄 뒤에 숨은 마음을 나는 제대로 묻지 못했구나.’


외투도 벗지 않은 채 채아를 꼭 안아 들었다.
잠시 후 옷을 갈아입으려고 내려놓고 옷방에 들어가자,
금세 문 밖에서 칭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엄마… 엄마아…”


낮에는 한 번도 나를 찾지 않았다던 아이가,
눈앞에서 내가 사라지자마자 바로 나를 불렀다.

정말로 아무렇지 않았던 게 아니라,
자기 나름의 방식으로 버티고 있었던 거겠지.




엄마의 바람은 생각보다 단순하다.
남들처럼 계절을 느끼고,
가끔 친구를 만나고,
조금은 나로 숨 쉬는 시간도 갖고 싶다.


그래도 마음속 어딘가에서는 안다.
선택의 순간이 오면
결국 내 쪽이 아니라 너 쪽으로 더 기울게 된다는 걸.




오늘 나는 잠깐
북극성 자리에서 한 발 옆으로 비켜 서서
다른 별들의 시간을 구경하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시, 아기 우주인의 숨소리를 세며
침대 옆에 서 있는 자리로 돌아왔다.

엄마는 잠시 집을 비워도,
결국 다시 돌아오는 존재라는 것.
밤하늘에 북극성이 떠오를 때마다,
이내 다시 웃음 짓는 작은 우주인이었다.


오늘도 끝내 이 품에서 잠든, 나의 작은 우주인.


일요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