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문(門)-10화

제10화. 이별

by 지그프리드

- 서문 -

이 글은 역사적 인물들만 역사에서 차용하고, 나머지 이야기들은 모두 허구입니다.

소설적 상상력이므로, 실제 역사 사실이 아님을 알려드립니다.


○ 등장인물

주요 인물

- 담유화(23세) : 21세기 현대 대한민국에서 살다가... 갑자기 삼국시대 백제라는 나라에 떨어진 소녀

- 부여구(30세) : 백제 13대 어라하. 근초고왕. 냉혈한. 키가 9척에 달하고 무예와 궁술이 뛰어남

- 부여구수(4세) : 부여구와 담유화의 아들. 태자

- 노파 : 유라가 미래에서 왔다는 것을 단번에 알아챈 신비스런 할머니


한유라 가족

- 한철민 : 여고생 한유라의 아버지

- 유지인 : 여고생 한유라의 어머니


한유라 여고 친구

- 지숙 : 단짝 친구


백제조정

- 부여융 : 백제 온조계의 마지막 후손

- 내신좌평 진고도 : 백제의 내신(왕명출납) 좌평이며, 최대 귀족세력의 수장임

- 위사좌평 진정 : 백제의 위사(경호처) 좌평이며, 진고도의 동생

- 조정좌평 해구 : 백제의 조정(형벌. 감옥) 좌평이며, 최대 귀족세력이나 온조계를 주군으로 모심

- 조정좌평 사기 : 해구의 모반으로 공석이 된 조정좌평 직위를 계승함

- 병관좌평 : 백제의 병관(군사) 좌평

- 내두좌평 : 백제의 내두(재정) 좌평

- 내법좌평 : 백제의 내법(의례) 좌평

- 목라근자 : 백제 장수. 가락 7국을 평정한 장수

- 사사노궤 : 백제 장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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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0화. 이별


어느덧 5년의 세월이 흘렀다.

부여구와 담유화 사이에 씩씩한 구수왕자가 태어났다.

부여구는 구수왕자가 태어나자마자 태자로 봉하였다.

구수태자는 부여구를 닮아, 기골이 장대하고 씩씩하게 자라고 있었다.

하지만.... 담유화는... 해가 지나갈수록 안색이 어두워졌다.

가끔씩 먼 하늘을 멍하니 바라보기도 하고, 욱리하를 하염없이 바라보면서 한숨을 내쉬기도 했다.

그러한 하루가 멀다 하고 핼쑥해져 가는 담유화를 보고 있노라니... 부여고는 마음이 아팠다.

그들 앞에서 재롱을 피우는 구수태자를 보고 있다가 부여구가 말했다.


"황후. 무슨 근심이라도 있소???"


그 말에 화들짝 놀라 얼버무리듯 말했다.


"네???? 아... 아니어요... 근심이라니요... 괜찮습니다..."


억지로 미소 지어 보이는 담유화의 표정에서는 근심이 엿보였다.

부여구는 더 이상 묻지는 않았다.


부여구는 담유화의 건강이 염려되어, 어의를 들라해서 담유화의 진맥을 살폈다.

어의가 신중히 담유화의 진맥을 하고 몸의 상태를 살펴봤다.


"황후의 상태는 어떠한가??"

"아뢰옵기 황송하오나... 황후마마께서는... 육체의 병이 아니라...."

"육체의 병이 아니라니???"

"마음의 병을 앓고 계시나이다..."

"마음의 병????"

"네. 어라하... 황후마마께서는 고향 생각에 마음의 병을 얻으셨나이다...."

"고향????"


그러고 보니... 유화가 멍하니 있으면서 한숨을 쉬던 모습이 자주 있었던 것 같았다.

구수태자가 태어난 날이 떠올랐다.


부여융의 반란을 진압하고 1년 후, 구수태자가 태어났다.

이쁘고 귀여운 구수태자를 보면서 담유화는 한참을 울었다.

그러고 난 후, 담유화가 이 세상으로 오게 된 이야기를 해주었다.

처음에는 미래에서 왔다는 얘기를 믿지 않았다.

하지만, 담유화가 이야기해 준 역사적 사실들이 모두 들어맞았다.

그러니 믿지 않으려 해도 믿을 수밖에 없었다.


"저는....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되는... 존재인데... 어떤 인연으로 당신과 만나서...

이렇게 어여쁜 아이도 얻었으니... 지금 제가 있던 세상으로 돌아가더라도...

후회가 없습니다... 하지만..."

"하지만??? 이 세상에 있으면 안 된다니??? 그게 무슨 말이오?"

"... 제가 미래에서 무슨 힘에 이끌려서... 여기로 왔는데... 당신과 나 사이에 구수태자를 얻었으니...

해서는 안 되는... 역사에 개입한 것 같아서... 그에 대한 벌이 있을까 봐 걱정스럽습니다..."

"걱정하지 마시오... 그러한 일은 없을 것이오... 유화."

"... 그리고... 제가 말도 없이 없어져서... 걱정하실... 부모님도... 잘 계신지....

저는 이렇게 여기서 정말 잘 지내고 있는데... 날 걱정하고 계실 엄마, 아빠가 보고 싶어요...."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는 유화를 그저 안아줄 수밖에 없었다.


며칠 후, 유화는 머리 좀 식힐 겸 바람 좀 쐬러 욱리하 나루터로 동이와 함께 나왔다.

일반인처럼 변복을 하고 오랜만에 욱리하 나루터 주변을 거닐고 있었다.


"마마... 밖에 나오시니깐... 좋죠???"

"엥... 뭐가 좋아요????"

"욱리하 바람은 항상 좋은 것 같아요... 바람에 실려오는... 내음도 좋아요. 하하"


그런데, 그들에게 오는 어떤 노파가 있었다.

유심히 유호와 동이를 바라보고 있었다.

이윽고 그들에게 다가와 노파가... 한참을 유화를 쳐다보다가 말했다.


"흠.... 여기에 있을 분이 아니신데... 왜 아직도... 여기에 있는 거지????"


다급히 동이가 노파 앞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할머니... 왜 이러세요???... 이 분이... 누구신지 알고.... 네?"


옆에 있던 유화가 동이를 제지했다.

노파의 말에 화들짝 놀랐다. 내가 미래에서 온 것을 알고 있는 것인가??


"괜찮아요. 저 할머니께서 저한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은가 봐요???

할머니... 그게 무슨 말이시죠???? 여기에 있으면 안 된다는 말씀이 무슨 말인가요????"

"그건... 아가씨가 제일 잘 알 것 같은데... 한 가지만 말해주겠소...

더 이상 이곳의 일에 개입한다면... 크나큰 대가를 치를게요... 아가씨..."

"... 크나큰... 대가라니요??? 그게 무엇인가요???"


그렇게 말을 하고는 노파는 순식간에 인파에 묻혀 사라져 버렸다.


'이런... 나에 대해 알고 있는 것 같았는데...'


욱리하 산책을 끝내고 궁궐로 환궁했다.

그러나 유화는 그 노파의 말이 계속 머릿속에서 떠나질 않았다.

'도대체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라니??? 내가 여기 오고 싶어 온 것도 아닌데????

나도... 운명에 휩쓸려서... 온 것뿐인데....'


그날 이후로, 유화는 알 수 없는 병으로 시름시름 앓아누웠다.

어의도 유화의 병을 알아낼 수 없었다.

마음의 병은 치료할 수 없다 한다.

유화 자신도 왜 이런지 알 수가 없었다.


어느 날 밤이었다.


'아가씨... 유라 아가씨...?'

"누구 시죠???"

'저는... 담유화라고 해요...'

"아... 소멸되신 게 아니었나요???"

'네... 저는... 유라 님이 이 세계에 오셨을 때부터... 같이 있었어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죠???... 어떻게 이런 일이..."

'그건 저도... 모르겠어요... 유라 님과 저는 알지 못하는 거대한 인연으로 묶인 게 틀림없는가 봐요.'


그녀와 꿈속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보니 새벽이었다.


'꿈이었나?... 꿈이라기엔 너무나 생생한데.... 그래.... 유화 아가씨는 내 안에 계속 같이 있었던 거야...

소멸된 게 아니었어... 그렇구나... 다행이야... 다행이야...'


다행이라 생각하니... 눈물이 하염없이 흘러내렸다.

아무래도 기운이 조금이라도 나는 지금이 혹시라도... 유화에게 무슨 일이 생긴다면... 글이라도 써두어야겠다 마음먹었다.

힘겨운 손길임에도 지필묵을 가져와 글을 써 내려갔다.

힘겹게 힘겹게 글을 썼다.

이윽고, 편지를 다 써 내려간 유화는 힘겹게 붓을 내려놓았다.


며칠 후, 가까스로 몸을 지탱하던 유화가 가뿐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아무래도 노파가 말한 그 대가라는 것이...

유라는 직감했다. 그 노파가 말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이제는 이 세계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인사를 나누어야 한다는 것을....


부여구가 조당에서 신하들과 국사를 논의하고 있었다.

그때 내관이 다급히 들어왔다.


"어라하... 급히 조화 전에 가셔야 하옵니다... 황후마마께서.... 위독하십니다..."

"뭐라???"


부여구는 황급히 조정회의를 파하고 조화전에 들었다.

들어서니...유화가 다급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유화... 힘을 내시오... 어찌..."

"... 어라하... 어서 오셔요... 어라하를 뵙지 못하고 떠나갈까 봐.... 걱정됐었어요..."

계속 가뿐 숨을 쉬고 있었다.

"말하지 마시오... 기운을 아껴야 한단 말이오... 유화."

부여구의 눈에서 눈물방울이 떨어졌다.

이내 유화가 힘없는 손을 들어 부여구의 눈물방울을 닦아주었다.

"... 울지 마셔요... 제가 힘을 내서... 어라하와 나의 아이 구수가 커가는 것을.... 꼭 보고 싶었는데....

저는... 줄곧... 이 행복이... 깨질까 봐서... 조마조마했었어요....

이제는 가야 할 시간이 된 것 같아요.... 제가 이 세계에 와야 하는 이유가 당신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당신을 만나서... 행복했었어요.... 잘 있어요.... 내 사랑....."

부여구의 뺨을 어루만지던 유화의 손이 힘없이 털썩 내려왔다.

"안 되오... 유화... 가지 마시오.... 유화...."


그때, 유화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가 환한 밝은 빛을 내면서 온 방안을 눈부시게 만들었다.

방안에 있던 부여구와 신하들이 모두 기이한 현상을 보고 놀라고 있었다.

환한 밝은 빛이 유화의 몸을 감쌌다가 사라졌다.

유화의 목에 걸려있던 펜던트도 사라졌다.


죽은 줄 알았던 유화가 움직였다.

감았던 눈을 스르륵 떴다.


그 자리에 있던 신하들은 기적이 일어났다고 모두들 기뻐했다.

유화 황후가 그 밝은 빛에 의해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유화 황후는 언제 아팠냐는 듯... 건강을 빠르게 회복했다.

그러나, 부여구는 알았다.

지금 깨어난 유화 황후는.... 그가 사랑했던 유화가 아니었다는 것을....


그날밤 부여구가 유화에게 찾아왔다.

부여구가 의심의 눈초리로 유화를 쳐다봤다.


"그대는.... 유화가 아니군???"


알겠다는 듯이 유화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는 유화 아가씨가 아닙니다... 어라하께서 은애 하셨던 유화 아가씨가 아닙니다...

하지만.... 저는 유화입니다.."

"그대가... 어찌 유화란 말인가???? 그대는 누구인가???"

"저는... 원래 이 몸의 주인인 유화입니다... 한동안 제 몸은 미래에서 오신 유라 아가씨였습니다.

저는... 유라 아가씨와 어라하의 사랑을 옆에서.... 지켜봐 왔습니다...

제가 유라 아가씨이고, 제가 유화이기도합니다.

이 서찰을... 유라 아가씨가 어라하께 전해 주라 하셨습니다..."

떨리는 손으로.... 유화 황후가 서찰을 부여구에게 전해주었다.

서찰을 집어든 부여구는 유라의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어라하... 이 서찰을 읽으실 때는... 아마도 제가 이 세상에는 없겠지요...

이 서찰은... 나에 대한 기억을 안고 살아갈 어라하께 드리는 글입니다.

제가 이 세계에 시간을 거슬러 왔을 때.... 저는 무슨 인연인지 몰랐습니다.

이제야 깨달은 것은... 바로 당신과 구수를 만나기 위함이었다는 것이에요.

당신을 만나 행복했고, 구수를 낳아 뿌듯했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분에 넘치는 행복을 느꼈습니다.

하지만... 달도 차면 기우는 법... 이 행복은... 그 만한 대가를 치러야 한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치러야 하는 대가는.... 기억... 내가 없음을 알고 살아야 하는 당신의 기억...

그 기억의 한 조각을 앉고 살아야 한다는 것을요...

하지만, 저의 영혼이 소멸될지라도... 어라하의 곁에는 유화 아가씨가 있을 거예요...

유화 아가씨가 당신 곁에 있음을 하느님께 얼마나 감사를 드렸는지 몰라요.


이제... 저도 잘 모르겠어요. 앞으로 어떻게 될는지는... 제가 이대로 소멸될지... 아니면...

제가 살았던 시대로 돌아갈지는....

하지만... 제가 한 가지 바라는 것은.... 당신이... 나 없다고 슬퍼하지 않도록.... 나와의 기억을... 잊어주길 바라요...

사랑해요... 어라하... 부디... 성군이 되셔요...'


"어찌... 이럴 수 있단 말인가? 유라... 그대는..."


부여구의 눈에서 하염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어찌나 슬퍼하는지..... 하늘도 울고.....땅도 울고....지나가던 구름도 바람도 울어버렸다.

슬픈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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