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와 나에 대한 책임감 그 간극에 대하여.
연말에 감기에 제대로 걸렸다.
약국 약을 먹으면서 버텨봤는데
결국 누런 콧물과 가래가 나오고 기침까지 시작되니 몸이 말을 듣지 않았다.
머리도 아프고 온종일 멍하다.
심하게 앓고 회사에 양해를 구하고
출근 대신 8시 30분부터 여는 병원부터 갔다.
독감은 아니래서 안심했지만 열이 많이 올라 링거를 맞으며 누워있었다.
그런데 아픈 것도 아픈 거지만
아픈 와중에도 마음이 회사로 출근하는 게 더 힘들다.
"오늘 일정 어쩌지?"
"나 없으면 어떡하지?"
몸은 침대에 누워 있는데 마음은 계속 모니터 앞에서 일을 하고 있다.
아침부터 팀원들에게 오는 급한 결재 요청 메시지,
다른 팀에서 오는 전화 정신이 없다.
결국 링거를 빨리맞고 회사로 향한다.
아픈 내가 불쌍한 것이 아니라,
이렇게까지 해야 하는 내가 서글프다.
회사생활을 오래 할수록 이런 날이 늘어간다.
아프면 쉬면 되는데, 왜 쉬지를 못할까?
회사에서 너무 오랫동안 이렇게 살아왔기 때문이다.
전신마취가 필요한 수술을 마친 후에도
일주일 만에 출근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신 후에도 마음 추스를 시간 없이 사업계획 예산심의를 해야 했다.
나 하나 빠지면 일이 굴러가지 않는 구조를
"능력"이라 착각했고
그걸 버티는 사람에게만
"책임감 있다"는 라고 생각했다.
가끔은 이런 생각을 한다.
내가 정말 성실한 건지,
아니면 그냥 너무 오래 "회사가 원하는 인간"으로 길들여진 건지.
누군가는 "그래도 책임감이 장점이지"라고 말한다.
그런데 요즘은 그 말이 위로가 되지 않는다.
책임감은 아름답지만,
책임감 때문에 내가 망가지면
그건 더 이상 장점이 아니기에..
감기 하나만 걸려도 이런 생각이 든다.
나는 왜 이렇게까지 버티고 있을까.
회사 밖에선 내가 뭘 할 수 있을까.
글을 쓰는 것도 이런 마음을 정리하려고 시작한 것인데
한 달쯤 해보니 또 불안해진다.
"이게 내 인생을 바꿀 수 있을까?"
사실 아직 모르겠다.
그런데 확실한 것은 하나 있다.
적어도 글을 쓰는 순간만큼은
내가 회사의 부속품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으로 돌아오는 느낌이 든다는 것.
오늘은 감기를 핑계로, 스스로에게 허락해보려고 한다.
몸이 아프면 쉬어야 한다는 너무 당연한 일을.
그것이 게으름이 아니라 생존이라는 사실을.
어른이 된다는 것은
항상 강해지는 것이 아니라
가끔은 나를 지키는 쪽으로 성장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나는 오늘, 그 연습을 한다.
나만큼은, 내가 책임져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