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만히 서 있는 기분이 들 때
회사에 다닌 지 몇 년쯤 지나면
일이 힘들어서가 아니라
가만히 서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 때가 있다.
나는 언제 승진이 가능할까 앞이 캄캄한데
위로 새로운 상사가 들어오고
어제까지 열심히 다니던 후배는
내가 겪어본 적 없는 기회를 이야기한다.
누군가는 이직을 했고
누군가는 승진을 했고
누군가는 회사를 떠났다.
이 와중에 나는 여전히 같은 자리에서
같은 건물로 출근하고
같은 사람들과 회의를 한다.
어느 순가 문득
나만 멈춰 있는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든다.
이 감정은 묘하다.
불만도 아니고
딱히 후회도 아니다.
그렇다고 만족은 더더욱 아니다.
회사를 나갈 큰 이유가 있는 것도 아니고
지금 하는 일이 의미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아닌데
왜인지 모르게
뒤쳐진 느낌만 남는다.
이럴 때 주변을 보면 더 헷갈린다.
누군가는 "그래도 안정적인 게 최고야"라고 말하고
누군가는 "지금 나가야 기회가 있어"라고 말한다.
어느 쪽 말도 틀린 것 같지 않다.
문제는
그 말들이 나한테는 잘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회사생활이 길어질수록
속도는 사람마다 완전히 달라진다.
누군가는 빠르게 치고 나가고
누군가는 잠시 멈추고
누군가는 돌아가고
누군가는 아예 다른 길로 간다.
그런데 우리는 자꾸
같은 시계로 서로를 재보려고 한다.
"나는 왜 아직 여기 있지?"
이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질 때
대부분은 답을 이미 알고 있다.
떠나지 못해서가 아니라
아직 남아 있는 이유가 있기 때문이다.
그 이유가
책임이든
현실이든
혹은 아직 잘 모르겠음이든.
나에게는 요즘이 그런 날인 것 같다.
모두들 그 정도면 잘하고 있는 것 아니냐고
일은 어찌저찌 굴러가는데
마음은 제자리인 것 같은 날.
굳이 이 감정을 없애려고 애쓰지는 않는다.
그 대신 이렇게 정리했다.
"멈춘 것이 아니라,
지금은 움직임이 눈에 안 보일 뿐이다."
회사 안에서의 성장은
항상 눈에 띄게 나타나지 않는다.
사람을 다루는 감각
결정을 미루는 법
말을 아끼는 타이밍
그리고
지금 나가지 않아도 되는 이유를
스스로 설명할 수 있는 능력.
이런 것들은
이력서에는 잘 안 적히지만
사라지지도 않는다.
나만 뒤처진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
너무 서둘러 결론 내리지 않으려고 한다.
지금은 속도를 내는 시기가 아니라
방향을 다시 확인하는 구간일 수도 있다.
멈춰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날이
반드시 실패의 신호는 아니다.
때로는
다음 선택을 하기 전의 정지 화면일 뿐이다.
나는 지금
멈춰 있는 사람이 아니라
멈춰 보일 만큼 오래 버틴 사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