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연차가 쌓일수록
결혼식장보다는 장례식장을 다닐 일이 더 많다.
어릴 때부터 그렇게 배웠다.
좋은 일은 몰라도 슬픈 일은 꼭 챙기는 것이라고.
그래서 결혼식은 못 가는 일이 생겨도
장례식은 꼭 가려고 했다.
몇 년 전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수많은 동료들의 위로가 그 이유를 증명했다.
말로 다 할 수 없이 고맙고 감사했다.
부모님을 떠나보내는 일은 슬프지만,
그 일을 조금 일찍 맞이하더라도
그래도 순서대로 가는 것이다.
인생에서 한 번은 겪어야 할 일이고,
그것이 순리다.
특히 성인이 되고 사회생활을 시작한 후라면
상주라는 말처럼 장례식장은
자식들의 손님들로 북적인다.
그런데 가끔 그 순리가 벗어날 때가 있다.
오래 회사를 다니다 보면
같이 일하던 동료의 부고를 듣는 일이 생긴다.
명확한 사고도 아니고, 오랜 투병도 아니고,
심근경색이나 뇌졸중 등으로
하루아침에 삶을 놓아버리는 경우다.
믿기지 않는 소식을 들으면 황망하기 그지없다.
장례식장의 분위기도 그렇다.
아직 어린 자녀가 아직 아빠의 죽음을 인지 못하고
신나게 뛰어다니기도 한다.
이번에도 그랬다.
며칠 전까지 같이 일하던 오래된 선배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소식을 들었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에이 그럴 리가.
장례식장으로 가서 영정사진을 봐도 믿기지가 않았다.
한참을 멍하니 앉아 전후 상황을 들었다.
심정지가 오기 전까지 고인과 카톡을 주고받았다는
다른 동료들 이야기까지.
장례식장은 조용했다.
선배는 싱글이었다.
자녀 없는 자매 한 명과
아흔이 넘은 아버지만 계셨다.
우리 부모님 세대는 형제가 많았다.
조부모 장례식이라면 그 자녀들과 손자들로
빈소가 북적인다.
하지만 선배의 장례식장은 달랐다.
가족이라고 부를 수 있는 사람이 손에 꼽혔다.
친분 있는 동료들은 다들 슬퍼하며 왔고
오랜 시간 빈소를 지켰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을 거기서 만났다.
하지만 올법한 사람들이 보이지 않았다.
정승집 개가 죽으면 문전성시지만,
정작 정승이 가면 문은 한산하다 했던가.
그 묘한 차이가 또 마음을 서글프게 했다.
연락이 닿지 못한 지인들도 있다고 했다.
선배의 핸드폰 패턴을 아무도 몰랐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죽음 앞에서
연락처 하나 꺼내지 못한 채
부고는 뒤늦게, 느리게 퍼져나갔다.
허망한 죽음 앞에 삶의 덧없음을 다시 깨달았다.
내가 회사를 다니며 겪는 많은 어려움과 스트레스가
뭐가 그리 중요한가 싶었다.
정작 중요한 것을 놓치고 살고 있지는 않은지.
내가 나를 너무 힘들게 하지는 않는지.
내일 떠나도 난 후회가 없을지.
지금 난 행복한지.
집에 돌아오는 길, 오만가지 생각이 들었다.
나는 어떻게 살고 있을까.
내가 갑자기 떠난다면
내 빈소는 어떤 모습일까.
내 핸드폰 패턴을 아는 사람은 몇이나 될까.
죽음은 늘 남의 일인 것처럼 느껴지다가
가끔 이렇게 불쑥 가까이 온다.
그리고 조용히 묻는다.
당신은 잘 살고 있냐고.
선배,
신입 때부터 철없던 나를 넓은 아량으로 웃으며 받아주셔서 감사합니다.
평소 많은 이야기를 자주 나누지는 못했지만
그저 선배가 그 자리에 있다는 것만으로도
늘 힘이 되고 든든했어요.
아직도 그 자리에 있을 것 같은 선배.
그래도 여기보다 좋은 곳에서
편히 쉬고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그리움은 남은 사람의 몫일뿐.
늘 감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