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란다에서 건너온 봄
보글보글 찌개 끓는 소리와 도마 위의 칼질 소리가 평화롭게 어우러지던 친정집 부엌
점심 준비에 한창이던 정적을 깨고 베란다에서 엄마의 격앙된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머, 얘! 이것 좀 봐라. 꽃이 폈어. 세상에! 천리향이 피었어!”
평소 차분하시던 엄마의 목소리는 마치 어린아이처럼 높은음을 그리며 환희로 가득 차 있었다.
나는 손에 묻은 물기를 급히 닦아내고 베란다로 달려갔다.
그곳엔 엄마가 애지중지하며 그러나 한편으론 꽃을 피우지 않아 애를 태우던 천리향이 수줍게
하지만 당당하게 분홍빛 꽃잎을 열고 있었다.
“정말이네, 엄마! 그렇게 안 피더니 드디어 피었네? 향기 좀 봐, 진짜 천 리까지 가겠어.”
내가 코를 킁킁거리며 다가가자
엄마는 꽃잎 하나라도 다칠까 조심스러운 손길로 화분을 매만지며 말씀하셨다.
“그러게 말이다. 물도 주고 사랑도 줘 가면서 얼마나 공을 들였는데...
결국 이렇게 때가 되니까 얼굴을 보여주네. 아휴, 신기해라. 기특하기도 하지.”
나는 그 신비로운 생명력에 이끌려 바로 스마트폰을 꺼내 천리향을 검색했다.
화면 가득 피어오른 꽃말을 확인하고는 엄마를 향해 환하게 웃어 보였다.
“엄마, 천리향 꽃말이 ‘갑작스러운 행운’이래. 우리 집에 정말 좋은 일이 생기려나 봐.
엄마의 정성이 드디어 행운으로 돌아왔나 보네. 덕분에 나도 기분이 너무 좋다.”
“행운이 별거 있니? 이렇게 네가 와서 같이 밥 먹고 안 피던 꽃이 눈앞에서 피어주는 게 행운이지.
향기가 참 달다. 그렇지?”
엄마의 그 말 한마디에 베란다 가득 퍼진 향기는 단순한 꽃향기를 넘어 마음의 허기까지 채워주는 듯했다.
천리향의 개화를 지켜보며 문득 우리의 삶을 되돌아본다.
우리는 종종 눈에 보이는 성과 즉 '꽃'이 피지 않는다는 이유로 조급해하거나 스스로를 자책하곤 한다.
천리향이 꽃을 피우지 않던 그 긴 시간 동안 사실 그 식물은 놀고 있었던 것이 아니었다.
단단하게 뿌리를 내리고 매일 아침 엄마가 주는 물을 머금으며 제 몸 안에서 가장 향기로운 순간을 위해 에너지를 응축하고 있었을 뿐이다.
꽃이 피지 않는 시기는 죽어있는 시간이 아니라
꽃을 피우기 위해 반드시 거쳐야 하는 '내실의 시간'이었던 것이다.
나의 삶 또한 그러하지 않았을까.
남들은 벌써 화려하게 만개한 것 같은데 나만 제자리에 머물러 있는 것 같아 불안했던 날들.
하지만 오늘 엄마의 천리향이 가르쳐주었다.
식물마다 제 계절이 있듯
사람에게도 각자의 개화기가 있다는 것을.
행운은 쫓는 자의 것이 아니라,
피어날 준비를 마친 자에게 깃드는 천리향의 향기와 같다.
조급함이라는 파동에 꺾이지 않고 오롯이 나를 돌보며 기다리는 시간은 결코 멈춰있는 것이 아니다.
저 진한 향기가 긴 인내 끝에 터져 나온 함성이듯
나 역시 나만의 향기를 발산할 그날을 위해 지금 이 순간의 고독을 단단하게 채워 넣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