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비 내리는 길 위에서

무채색 일상을 채우는 낱알 같은 행복

by 책사랑

벚꽃이 만개했다는 소식에 마음이 먼저 집 밖을 나섰고 뒤이어 남편과 나도 가뿐한 옷차림으로 길을 나섰다.

굳이 인파에 치이며 진해까지 먼 걸음을 재촉할 필요는 없었다.

우리 동네 가로수길은 매년 이맘때면 전국 어디에 내놓아도 뒤지지 않을 만큼 근사한 ‘벚꽃 맛집’으로 변모하기 때문이다.


길 위는 이미 봄이 주는 생동감으로 가득했다.

유모차를 조심스레 밀고 가는 젊은 부부의 발길 위로 아이들의 해맑은 웃음소리가 겹쳐지고

그 너머로 세월의 무게를 나누어 짊어진 채 손을 맞잡은 노부부의 뒷모습이 보였다.


저마다의 얼굴에 핀 웃음꽃은 벚꽃보다 화사했다.

경쾌한 셔터 소리가 봄바람을 타고 선율처럼 흐르는 곳

사람들은 저마다 가장 찬란한 순간을 영원히 간직하려 프레임 속에 담고 있었다.

그 생기 넘치는 풍경을 눈에 담는 것만으로도 내 마음엔 몽글몽글한 행복이 차올랐다.


“이런 게 행복이지, 안 그래?”


남편에게 툭 던지듯 가벼운 질문을 건네며

한 손에는 온기가 기분 좋게 느껴지는 커피 한 잔을 들고 천천히 걷기 시작했다.

사람들의 발걸음은 봄의 리듬에 맞춰 자박자박 느려졌다.

벚꽃이 내리는 축복 속에 우리도 숨소리를 낮추고 속도의 여유를 즐겼다.

이제는 햇빛의 밀도가 달라지고 바람의 결이 보드라워졌으며

우리의 보폭 또한 그 계절의 변화에 맞춰 유연해졌다.


겨우내 움츠렸던 어깨를 펴고

무거운 옷가지와 함께 마음의 짐까지 내려놓은 채 오로지 자연과 꽃에만 집중하는 시간

한 손에는 커피를, 다른 한 손은 서로의 온기를 느끼며 다정하게 손을 잡았다.

그 모습은 마치 우리가 함께 걸어온 그리고 앞으로도 걸어갈 인생의 길을 닮아 있었다.


우리는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이의 성장통부터 우리의 노후이야기, 얼마 전 마음을 울렸던 책의 구절들과 고단했던 회사 일,

그리고 내가 사랑하는 글쓰기 이야기까지 대화의 주제는 봄바람처럼 이리저리 옮겨 다녔다.

가끔은 코드가 맞지 않아 살짝 토라지기도 했지만

그마저도 흩날리는 꽃잎 아래서는 금세 웃음으로 번져나갔다.


따스한 봄햇살이 다정한 손길로 어깨 위를 토닥이고

청명한 파란 하늘 아래로 포근한 바람이 스쳐 지나갔다.

나는 오늘의 이 투명한 공기와 연분홍빛 색감을 기억하기 위해

사진을 찍으며 소중한 추억 한 조각을 휴대폰 저장 공간에 꾹꾹 눌러 담았다.


이 꽃잎이 다 떨어져 눈처럼 내릴 때까지 나는 매일 이 길을 걸을 것이다.

떨어지는 꽃잎이 아쉬워 자꾸만 뒤를 돌아보겠지만

사실 크게 서운해하지는 않기로 했다.


봄이 지나가면 곧 싱그러운 신록이 눈부신 여름이 찾아올 테니까.

그 길 위에서 나는 또 다른 이름의 행복을 발견할 것이다.


단조로운 일상의 여백에 오늘의 다정한 대화와 맞잡은 손의 감촉을 갈무해 둔다.

삶이 시릴 때마다 꺼내어 볼 이 기억의 조각들이

다가올 내일을 버티게 하는 가장 견고한 마음의 지지대가 되어줄 것이다.



수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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