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로부터 받은 영향도 컸다.
아버지는 나를 늘 통제하려고 했고, 내 생각보다 아버지의 생각대로 끌고 가기를 바랐다.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진로를 정할 때도, 아버지의 명령에 따랐다.
"그 가위는 손잡이 부분이 약해 보여서 못 써. 그러니까 이걸로 사야 한다."
"그 대학은 정치 성향이 강하니까 진학하지 마."
"넌 이 직업을 가져야 돼."
아버지는 그가 생각하는 모습으로 내가 짜맞춰지기를 원했고, 그 틀에 나를 끼워맞췄다.
수학을 잘해도 영어를 공부해야 했고, 원하는 대학에 진학하는 것도, 직업을 구하는 일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았다.
무척 사소한 일이지만, 오이에 쌈장을 찍어 먹고 싶어도 아버지가 고추장을 찍어 먹는 게 가장 맛있다고 하면, 그 생각에 따라야 했다.
그렇게 어린 시절부터 쭉 살아오다 보니, 성인이 돼도 누군가 옳다, 그르다 이야기해 주지 않으면 인생을 스스로 살아갈 수 없는 사람이 되었다.
나는 쉽게 도전하지 못했고, 실패를 두려워했다.
스스로를 믿지 못했기 때문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저 언제 올라가도 늘 제자리에 있는 바윗덩어리처럼 아무것도 하지 못하고 고민만 한 채 흘러보낸 세월이 가득이었다.
새로운 외국어가 배우고 싶어도, 취미를 가질 때도 쉽게 시작하지 못했다.
‘그때 그냥 했어야 됐는데’, ‘그때 그냥 배웠어야 됐는데’, ‘그때 그냥 갔어야 됐는데’
무엇을 하지 않았다는 후회만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물품과 같이 잔뜩 쌓여갔다.
그만큼 기회를 많이 놓쳤다.
어느 순간, 뒤돌아보니 나는 내 생각이며 감정을 잘 파악하거나 표현하지 못하고, 취향이 모호하며 자기주장은 약한 사람이 되어 있었다.
무언가를 정하려고 해도 스스로를 계속 의심하는 습관 때문에 선택을 내리기가 어려웠다.
그래서 자꾸만 주변에 의지하고, 아버지와 같은 누군가가 인생의 방향이나 사소한 것들을 결정해 주기를 바랐다.
하지만, 가족으로부터 벗어나 혼자 살기 시작하면서, 다른 이에게 의존하는 습관이 잘못됐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것을 깨달은 뒤에는 조금 불안하고, 어색해도 스스로의 선택을 밀어붙이는 연습을 시작했다.
메뉴를 정할 때, 회의를 하면서 의견을 낼 때, 앞으로 주거 문제를 결정할 때, 다이소에서 천 원짜리 물건 하나를 살 때도 어떠한 갈등이 일거나 스스로를 믿지 못하겠다는 생각이 문득 밀려와도 일단은 혼자서 결정을 내렸다.
그 결정에는 첫인상이 좋지 않거나 느낌이 쎄한 사람을 걸러 만나는 일도 해당됐다.
그런 사람들은 나중에 나에게 돈을 빌려달라거나 큰 상처를 주는 경우가 많았기 때문이다.
이전에는 직감을 믿지 못했기 때문에 나쁜 사람도 쉽게 걸러내지 못했지만, 이제는 달라졌다.
내 생각대로 해도, 느낌을 따라도 큰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히려 내가 내린 결정이 옳고, 내 느낌을 따르는 게 중요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작은 연습을 반복하면서 여러 경험이 쌓였고, 스스로를 조금씩 믿게 되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한테는 무척 쉽고 당연한 일일지라도 나의 인생에는 정말 큰 한 걸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