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글에는 사주와 신점에 대한 개인적인 견해가 들어가 있습니다.)
엄마는 자신의 운명을 사주나 점에 의존하는 습관이 있었다.
그 버릇은 어린 시절 무엇이 옳고 그른지도 모르는 사춘기 남자 아이에게도 대물림되었는데, 내가 스스로가 어떤 사람인지 원하는 것은 무엇인지 깨닫지 못하며, 누군가에게 의존하면서 오랜 시간 인생을 꼬아버린 큰 이유이기도 하다.
사주팔자와 운세풀이 그리고 신점.
엄마는 사주풀이를 직접 철학원에서 배워와서 가족들에게 앞날을 봐주거나 때로는 그것을 누나와 나에게 가르쳐 주었다.
불, 물, 나무와 금의 기운 등.
엄마는 생년월일 시를 분석해 가며 그럴듯하게 사주풀이를 해 주었다.
친한 친구가 나에게 기쁜 소식을 전해주는 종달새 같은 존재라거나 내가 앞날에 무엇을 해야 하는지 사소한 것들을 우주의 원리라면서 분석해 말해 주었다.
그것은 제법 잘 맞을 때도 있었고, 어딘지 모르게 어긋나는 경우도 있었다.
그래도 그저 그 이야기를 듣는 것이 재미있고, 과학적인 학문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무엇을 듣든 분별할 생각 없이 엄마의 말에 무조건 따랐다.
철학원에서 이야기를 들었다며 나의 성격과 미래 직업을 받아오는 날도 있었다.
너는 술을 좋아하고, 체육을 아주 잘한다고 하네.
여자도 아주 좋아하고 말이야.
운동선수를 시켜도 좋다고 철학원에서 이야기했어. 맞지?
엄마는 씨익 웃으며 말했다.
한 집에서 살고 있는 같은 가족임에도 불구하고 철학원 원장을 통해 내 모든 심리와 성향을 간파해 냈다는 듯이 뿌듯해 하는 표정이었다.
약골인 나는 그 사주풀이가 전혀 맞지 않다고 느꼈지만, 완전히 부인하지 못하고 혹시나 내 속에 나도 모르던 부분이 등에 난 작은 점처럼 숨어 있는 것은 아닐지 오랫동안 고심했다.
사주뿐만이 아니라 엄마는 가끔 신점을 보고 올 때도 있는 듯했다.
그 사실을 알게 된 사건은 두 번의 부적을 발견했기 때문이다.
첫 번째 부적은 몇 년 전, 내 옷장 서랍에서 발견했다.
계절이 바뀌면서 옷을 정리하던 중에 서랍 깊숙이 대여섯번을 종이 딱지 접듯 고이 접은 부적과 내가 언젠가 엄마에게 주었던 증명 사진을 함께 발견한 것이다.
단순한 사주풀이를 넘어 부적을 발견했다는 사실에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엄마는 내가 하는 일이 모두 잘 되고 건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에서 놓아둔 부적이겠지만, 나는 그것이 영 찝찝했다.
두 번째 부적은 이후 내가 자취를 시작했을 때 아버지가 발견했다.
새로 이사 간 집에 엄마 아빠가 같이 와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아버지가 갑작스레 심장의 통증을 호소하며 가슴을 움켜잡고 거의 반나절을 드러누워 일어나지 못했다.
그날 저녁 아버지가 이상한 낌새를 느끼고 베개 커버를 벗겨 보니, 그 안에는 내 서랍에 있던 것과 비슷한 부적이 들어 있었다.
아버지는 순수하지 않은 엄마의 내막을 읽었는지 불쾌한 속을 드러내며 그 베개를 밖으로 집어 던지려 했고, 엄마는 부적이 아깝다면서 빼앗으려 들었다.
그렇게 힘을 못 쓰는 거 보면 부적이 효과가 있네!!
용하네!!!
엄마는 바람난 남편의 수저 들 힘마저 빼놓고 싶었던 것인지, 원하는 바가 이루어졌다는 듯이 기뻐했다.
정말 엄마의 바람대로 아버지가 힘을 못썼던 것인지는 알 수 없지만, 무술 유단자이며 평소 지병도 없던 아버지가 몸을 일으키지 못할 정도로 쓰러진 모습은 의아하게도 난생 처음 보는 광경이었다.
이내 자취방에서는 본가에서와 같이 부부 싸움이 벌어졌고, 나는 앞으로의 삶을 응원받아야 할 공간에서조차 두 사람을 뜯어 말려야 했다.
사주나 신점.
그것에 자신의 운명을 맡기며 만족스러운 삶을 사는 이들도 있겠지만, 엄마로부터 물려받은 그 습성이 결코 나의 앞날에 쏟아질 폭우와 우박을 막아주지는 못했다.
그것은 오히려 해가 환히 떠 있을 때도 비가 올까봐 불안해 쓰고 있는 무거운 장우산과 같은 것이었으며, 어린 내가 앞으로의 길을 올곧게 걸어가는 데 있어서 바른 나침반이 되어주지 못했다.
그동안 나에게 필요한 것이 있다면, 앞날을 예지하는 능력이 아니라, 단지 믿을 수 있는 어른과 인생을 배울 수 있으며, 건강히 보호하고 성장시켜줄 부모라는 존재, 오로지 그것뿐이기 때문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