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원을 다니기 시작한 지 거의 10년 만의 일이었다.
엄마는 내 병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고 있었다.
그동안 병원을 갔다 오면 그저 안경을 바꿔 끼라는 말만 했다.
환자분의 한쪽 눈 시야각은 극미하게 남아있습니다.
염증은 반복되고 있고요.
의사 선생님이 말했다.
하루하루 터널처럼 좁아지는 시야가 겁이 났다.
다행히 다른 쪽 눈은 보이지만, 자꾸만 한쪽 눈을 감고 오늘은 얼마만큼 시야각이 줄어들었을까 확인하는 습관이 들었다.
언젠가부터 아침에 일어나면 한쪽 눈을 감은 채 행여나 어제보다 눈이 잘 보이지는 않을까 희망을 갖고, 방안 여기저기를 살펴보았다.
책상 위에 볼펜이 보이는지, 형광등은 보이는지, 커튼에 쓰여 있는 알파벳이 한쪽 눈으로도 다 읽히는지 확인했는데, 부질없는 짓이었다.
이 병이 이토록 오랫동안 나를 갉아먹을 줄 몰랐다.
당시에는 건강뿐만 아니라, 부모님의 싸움과 그 불화로 인한 정신적인 고통을 이겨내기 위해서 너무나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그래서 치료에 집중하기가 힘들었고, 그 누구의 도움도 없이 혼자서 사람들이 북적거리고 절차가 까다로운 종합병원에 드나들면서 각종 검사를 받고, 주사를 맞고, 설명을 듣는 일이 너무 버거웠다.
엄마 아빠가 싸우는 동안 나는 점점 병들고, 몸속 깊이 썩어가고 있었다.
그때는 항상 세상을 떠나고 싶다는 생각과 맞서 싸워야 했는데, 그것은 내 몸속에 염증 반응으로 일어났다.
스스로 알지 못하는 사이에 나는 나를 파괴하고 있었던 것이다.
눈은 점점 약해져서 모니터를 몇 시간 보더라도 안구건조증으로 뻑뻑해졌고, 때로는 눈 뒤쪽에 욱신욱신 통증이 느껴지기도 했다.
무엇을 하려고 해도 눈상태가 걸림돌이 되었는데, 확실한 것은 다른 사람보다 내 눈이 아주 약하다는 사실이었다.
더이상 눈이 안 아프게 해 주세요...
이제는 이 고난에서 벗어나고 싶어요, 제발요...
혼자 기도를 하면서 눈물을 흘린 날도 많았다.
병원에 갔다 오는 길에도, 방에서도, 이런저런 고충으로 심리 상담사에게 상담을 받으면서도 눈물을 쏟았다.
그렇게 몇 년.
눈물이 담긴 우물의 밑바닥이 드러났는지 언젠가부터 나의 건강과 삶의 상처를 쏟아내도 더 이상 눈물이 차오르지 않았다.
마음속 두레박은 그저 상처만 남은 자리를 벅벅 긁어댈 뿐이었다.
오랜 기간, 염증에 더해 그것을 멈추기 위해서 계속 주사를 맞았기 때문에 망막은 약해져 있었고, 젊은 나이지만 백내장도 생긴 상태였다.
그렇게 몸은 조만간 수술을 받아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