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국립신미술관에서 만난 지금의 질문
대나무 숲의 고요를 지나 도시의 유리 건물 안으로 들어왔다.
이번에는 아름다움을 보는 시간이 아니라
지금의 질문을 마주하는 시간이었다.
국립신미술관
The National Art Center Tokyo
은 조금 독특한 미술관이다.
이곳에는
영구 소장품이 없다.
무언가를 오래 보관하기보다
지금 이 시대가 던지는 질문을
전시의 형태로 보여 주는 공간이다.
건물 자체도
그 성격을 닮아 있다.
유리로 이루어진 거대한 곡면이
도시의 빛을 안으로 끌어들인다.
마치 이 미술관이 도시의 생각까지
함께 들여오려는 것처럼.
빛은
위에서 떨어지기보다
옆에서 스며든다.
그래서인지
이 미술관 안에서는
사람의 걸음도 조금 느려진다.
전시실을 걷다 보면 이곳이
어떤 작품을 오래 붙잡아 두기보다
지금 이 순간의 질문을
잠시 머물게 하는 장소라는 것을
조용히 느끼게 된다.
그날
한쪽에서는 일본 예술학교 학생들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아직 이름이 알려지지 않은
젊은 작가들의 작업이
여러 방에 나뉘어 놓여 있었다.
다른 한편에서는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Young British Artists(YBA)’ 세대의 작업을 다룬
《YBA & BEYOND》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전시실은 여러 공간으로 이어져 있었고
방마다 서로 다른 질문이
조용히 놓여 있었다.
어떤 방에서는
약병들이 질서 있게 놓여 있는 작품이 있었다.
데이미언 허스트(Damien Hirst)의 작업이었다.
치료를 위한 약들이
오히려 인간의 유한함을 떠올리게 했다.
또 다른 공간에서는
네온 문장이 벽 위에서
조용히 빛나고 있었다.
트레이시 에민(Tracey Emin)의 작품이었다.
개인의 기억과 고백이
빛나는 문장으로 남아 있었다.
Sarah Ainslie, 〈Shoreditch, London〉, 1998
런던 동부 쇼디치 지역의 재개발과 변화 속에서 빠르게 변해가던 거리 풍경을 기록한 사진.
산업 시대의 흔적과 새로운 도시 풍경이 한 화면 안에서 겹쳐진다.
의자와 스타킹 같은 평범한 물건이
사람의 몸처럼 보이도록 놓여 있는 조각등
일상의 사물들이
갑자기 다른 의미를 갖게 되는 순간이었다.
그 시대의 영국 미술은
일상의 물건과 개인의 이야기를 통해
사회가 품고 있던 질문을 드러내고 있었다.
나는 전시실을 천천히 걷다가
한 영상 작품 앞에서
잠시 발걸음을 멈추었다.
1985년 영국 버밍엄의
핸즈워스(Handsworth)에서 일어난
폭동을 다룬 영상이었다.
도쿄의 미술관에서
영국의 한 도시를 생각하게 될 줄은 몰랐다.
하지만 전시는 가끔 이렇게 도시와 도시 사이를
조용히 이어 놓는다.
나는 그 영상 앞에서
한 도시가 품고 있던 질문을
잠시 바라보고 있었다.
그 질문은 〈시선의 기록〉에 따로 남겨 보려 한다.
오늘 나는 두 공간을 걸었다.
하나는 고요한 정원 속에서
힘의 그림자를 느끼게 했고,
다른 하나는
영상 속 목소리로 질문을 남겼다.
도시는 변했는지 모르겠다.
그러나
내가 보는 방향은 분명히 달라졌다.
대나무 숲을 나서며 나는 안다.
이번 일본은 추억을 확인하는 여행이 아니라
시선이 어디에 머무는지
시험하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날 나는
두 개의 미술관을 본 것이 아니라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두 개의 시선을 만난 셈이었다.
나는 이제,
지금의 질문 앞에 선다.
《YBA & BEYOND》는
1990년대 영국 현대미술을 대표하는 ‘Young British Artists(YBA)’ 세대의 작업을 소개하는 전시다.
이 시기의 작가들은 일상의 사물과 개인의 경험을 작품 안으로 끌어들이며, 기존의 미술의 경계를 흔들었다.
전시는 그 시대 영국 사회가 품고 있던 긴장과 질문을 동시대 미술의 언어로 보여 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