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을 따라 걷는 하루 ①

일본 · 네즈 미술관에서 떠오른 질문

by Mansongyee



도쿄에서의 어느 하루, 나는 두 개의 미술관을 찾았다.
하나는 대나무 숲 사이에 조용히 숨은 네즈 미술관. 다른 하나는 빛으로 지어진 건물처럼 보이는 국립신미술관이다.


네즈 미술관의 쿠마 켄고와 국립신미술관의 구로카와 기쇼. 두 건축가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빛이 머무는 공간을 만들었다.


두 공간은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날 나는 같은 질문을 들고 그 사이를 걸었다.

아름다움은 어디에서 시작되는가.




대나무 숲에 들어서면

사람의 자세가 자연히 낮아진다.


빛은 위에서 강하게 쏟아지기보다
옆으로 스며들듯 들어온다.



네즈 미술관 복도에 전시된 불교 석조와 불상들.

정원으로 향하는 길목에서 오래된 시간의 얼굴을 먼저 만난다.



그래서인지
걷는 속도도 저절로 한 톤 느려진다.

연못 위에는 잔물결이 흐르고
돌 위에는 이끼가 조용히 자라고 있다.

정원은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하지만 그 앞에 서 있으면
사람의 마음이 조용히 가라앉는다.

전시실 안에 들어섰을 때
나는 잠시 걸음을 멈췄다.


한국과 중국에서 건너온 유물들이
조용히 전시되어 있었다.

아름답고 오래된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아래에는
“개인의 소장”이라는 설명이 붙어 있었다.

한 사람의 수집이
결국 그 시대의 취향을 보여주는 공간이 되었다.

그 순간
나는 정원을 보던 눈을 거두고
이 물건들이 지나온 길을 떠올렸다.

이 물건들은 어디에서 와서
어떤 힘을 거쳐
이곳에 놓이게 되었을까.

수집은 취향이지만
취향은 때로 국력의 그림자를 동반한다.

아름다움과 함께
조용한 씁쓸함이 따라왔다.

젊은 날의 나는
이 공간을 “고요하다”고만 말했을 것이다.


지금의 나는 고요함 속에서 힘의 흔적을 본다.


정원은 여전히 아름다웠지만
나는 그 아름다움에 완전히 안기지 못했다.


대신 질문을 들고 나왔다.

나는 무엇을 보고 있는가.

눈앞의 아름다운 수집품인가,
그 수집이 지나온 힘의 시간인가.




나는 이제,

아름다움이 지나온 길을 묻는다.





Collector Note | 네즈 미술관


네즈 미술관은 일본의 실업가이자 철도 사업가였던 네즈 가이치로(根津嘉一郎)가 수집한 동아시아 미술품을 바탕으로 세워진 미술관이다.


그는 메이지 시대 일본 산업화를 이끈 기업가였으며, 특히 철도 사업으로 큰 부를 축적한 인물로 알려져 있다.

동시에 그는 다도(茶道)에 깊이 빠져 있었고 차 문화와 관련된 도자기와 고미술을 평생에 걸쳐 수집했다.


오늘날 네즈 미술관의 컬렉션은 이 개인 수집에서 시작된 것이다. 미술관을 걷다 보면 예술품이란 결국 한 시대의 부와 힘이 축적된 결과라는 사실을 자연히 떠올리게 된다.


그리고 그 안에 한국과 일본의 작품들이 함께 놓여 있는 장면을 보며 나는 한 번 더 생각하게 되었다.


이 아름다운 물건들이 단지 취향의 이동만이 아니라 내 나라의 역사와도 연결된 흐름 속에서 이곳에 와 있다는 사실을.


그래서 그날의 감상은 단순한 미적 즐거움만으로 끝나지 않았다.

아름다움과 역사, 그리고 힘의 관계를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시간이었다.




Architecture Note | 네즈 미술관

네즈 미술관(根津美術館)은 일본 건축가 쿠마 켄고(Kengo Kuma)가 설계해 2009년에 새롭게 문을 연 미술관이다.
대나무 숲으로 이어지는 긴 처마의 입구와 자연과 연결된 정원이 특징이다.

건물은 주변의 녹지와 조화를 이루도록 낮고 길게 설계되어 빛과 그림자가 천천히 스며드는 공간을 만든다.

이곳에서 미술 감상은 전시실 안에만 머무르지 않고 정원과 건축, 자연의 흐름 속에서 함께 이어진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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