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 긴자에서 마신 것은 맥주가 아니라 시간이었다
긴자 거리에 다시 섰다.
30여 년 전,
젊은 직장인들이 길게 줄을 서 있던 그 풍경이
이상하게도 또렷하다.
그 시절 한국에서는 보기 힘들던 장면.
양복 차림의 사람들이
퇴근 후 맥주 한 잔을 위해 줄을 선다는 것.
궁금했다.
간판을 올려다보니
삿포로 비어 레스토랑 〈라이온〉
우리는 그 시절 맥주를 좋아했다.
여행 중이니 이런 경험 좋다고 그 줄에 섰다.
한참을 기다려 들어간 내부는
거품이 예술인 생맥주와 소시지를 나누며
즐기는 젊은 직장인들로 가득했다.
신문화였다.
맥주를 마신 것이 아니라
시대를 한 모금 마신 셈이었다.
그 후로
맥주 이야기가 나오면
우리는 늘 이 이름을 떠올렸다.
“언젠가 다시 가자.”
그러나 세월은 생각보다 빨리 흘렀고
인생과 여행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
이제 우리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런데도
이곳의 분위기를 다시 만나고 싶었다.
아직 영업을 하는지 정보를 찾는 것은
이제 손가락 몇 번이면 충분했다.
뜻밖의 사실 하나를 알게 되었다.
이 라이온은 1934년 완공되어
제2차 세계대전의 공습 속에서도 살아남은 건물이었다.
2021년 일본 등록유형문화재 지정.
단지 맥주집인 줄 알았던 곳이
백 년의 시간을 품은 장소였다.
괜히 뿌듯했다.
“역시 우리는 보는 눈이 있었어.”
거만을 한 숟갈 얹고
오늘, 다시 그 줄에 섰다.
한참 기다린 끝에 좁은 자리에 앉았다.
정면에는 거대한 유리 모자이크 벽화.
‘풍요와 수확’을 주제로
맥아를 거두는 여인들을 그린 작품.
250가지 이상의 색유리 벽화로
근대 미술관에 와 있는 듯한 공간이었다.
놀랍게도 실내는 30여 년 전과 거의 같다.
달라진 것은
양복 대신 가벼운 차림의 젊은이들, 관광객들,
그리고 맥주 한 컵을 조심스레 들고 앉은
노년의 우리 부부.
이곳은 삿포로 맥주의 직영점.
전신인 대일본맥주 시절부터 이어져 온 장소다.
공장에서 갓 생산된 생맥주가 직접 배달되고,
‘이치도츠기’라 불리는 한 번 붓기 기술로 잔을 채운다.
잔 안에서 맥주를 회전시키며 단 한 번에 부을 때
탄산은 적당히 빠지고 보리의 단맛과 고소함이 살아난다.
거품과 액체의 비율은 3:7
마지막 한 모금까지 부드럽다.
그러나 사실 우리가 마신 것은 기술이 아니다.
배낭을 메고 어린 남매를 시부모님께 맡기고 세상 구경을 나왔던 그 일주일의 공기.
그 시절의 웃음.
젊은 우리의 숨.
기억은 여전히 거품처럼 올라온다.
긴자의 〈라이온〉은 맥주집이 아니다.
시간을 한 번에 따르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는 많이 변했다.
나는 그 시간을 더 마시지 않는 나이가 되었다.
그때의 시간은
그때의 방식으로만
가장 좋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추억은
추억으로 남겨 두기로 했다.
나는 이제,
이미 다 마신 시간을
다시 따르지 않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