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루노우치, 비 오는 날의 미술관

일본 · 사진과 판화를 지나 북극의 빛을 떠올리다

by Mansongyee



그날

부슬부슬 봄비가 내리고 있었다.


호텔에서 빌린 우산을 쓰고
마루노우치 거리를 천천히 걸었다.


비는 크게 소리를 내지 않았다.
도시 위에 얇은 막을 하나 더 얹어 놓듯
조용히 내리고 있었다.


젖은 보도 위로
붉은 벽돌 건물이 나타났다.


미쓰비시 일호관 미술관
(Mitsubishi Ichigokan Museum).


1894년 영국 건축가
조시아 콘더(Josiah Conder)가 설계했던
미쓰비시의 첫 사옥을
옛 도면 그대로 복원해 만든 미술관이다.


유리와 철로 가득한

마루노우치의 고층 건물 사이에서
이 건물은 잠시 시간을 뒤로 돌려놓은 듯 서 있다.


하지만 그날 나를 잠시 멈추게 한 것은
건물이 아니라

입구 앞의 조용히 길게 늘어선 줄이었다.


사실 이 풍경은 이미 낯설지 않았다.

그러나 비가 내리는 평일 오후인데도,

조금 의외였다


도쿄에 와서 들른 미술관마다
비슷한 장면을 여러 번 보았기 때문이다.

전시장 안으로 들어가자
그 이유를 조금 알 것 같았다.


벽에는 메이지 시대 도쿄의 거리와 밤,
눈 내린 마을과 강 위의 다리가
정교한 판화로 걸려 있었다.


지금 이곳에서는

《키요치카에서 하스이까지》

우키요에에서 근대 판화로 이어지는
일본 판화의 흐름을 보여 주는 전시가 열리고 있었다.


사람들은 한 작품 앞에 오래 머물렀다.
판화 한 장을 가까이 다가가

천천히 들여다보았다.


그래서 다음 작품으로
쉽게 발걸음을 옮길 수 없었다.


그림 앞에 오래 머물러 있는

이들의 모습이 인상 깊었다.


아마도 그 그림들 속에
자신들의 시간이 담겨 있기 때문일 것이다.

메이지 시대의 거리,
밤의 가스등,
눈 내린 마을.


그것은 단순한 풍경이 아니라
이 도시가 지나온 시간의 장면들이었다.


전시장에는
19세기 일본의 거리 풍경을 기록한
사진들도 함께 전시되어 있었다.


당시에는 컬러 사진 기술이 없었기 때문에
흑백 사진 위에 장인이 직접 붓으로 색을 입혀 이미지를 완성했다.


그래서 이 사진들은
사진이면서도 어딘가 판화처럼 보인다.



Felice Beato (펠리체 베아토) ,

Street Scene – Fish Shop and Grain Shop, 1880년대경 이탈리아 출신 펠리체 베아토는 사진이 막 등장하던 시기에 아시아를 여행하며 그곳의 삶을 기록한 초기 사진가였다. 당시 사진은 흑백이었기 때문에 이 이미지는 촬영 후 손으로 하나하나 색을 입힌 것이다.

말린 생선을 걸어 놓은 가게와 시장의 사람들 모습에서 메이지 시대 초 일본의 일상을 엿볼 수 있었다.






Adolfo Farsari(아돌포 파르사리),

Women on Jinrikisha, 1880–1890년경 이탈리아 출신 아돌포 파르사리는 요코하마에서 활동하며 일본의 풍경을 서구인의 시선으로 재구성한 사진가다. 손으로 채색한 초기 사진으로, 인력거에 탄 여성들의 모습 속에 당시 일본의 일상과 함께

외부인의 시선이 겹쳐 기록되어 있다. 인력거를 타고 이동하는 여성들의 모습 역시 그 시대의 여행 풍경을 보여 준다.




사진 위에 색을 입히는 방식은
서양의 사진 기술과 일본의 채색 기술이 만난 독특한 이미지였다.


사진이 판화를 닮아가던
짧은 시간의 흔적처럼 보였다.
나는 전시장 벽에 걸린 판화 몇 점 앞에서
발걸음을 늦추었다.



요코하마 호시다 (Yokohama Hoshida),

Sailing Boats (Nominal, Industrial Sea Scenes), 1880년대 요코하마 호시다는 메이지 시대 요코하마에서 활동한 사진 스튜디오로, 일본의 풍경을 상업적 이미지로 제작한 기록 주체이다. 손으로 채색된 초기 사진으로, 바다 위를 오가는 배들의 풍경 속에 당시 일본의 산업화와 이동의 흐름이 조용히 담겨 있다.



문득,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판화 속의 빛이 어딘가 낯설지 않았다.


그 빛은

왜 낯설지 않았을까.


밴쿠버에서 보았던 북극의 백야,
그리고 내가 집으로 데려온

〈Midnight Sun〉의 공기와
어딘가 닮아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그 앞에서 잠시 웃었다.
빛의 길이 생각보다 멀리 돌아온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나는 이제,
빛이 들어오는 길을 조금은 알고 있다.





시선의 노트


<키요치카에서 하스이까지>에도 시대의 우키요에에서 출발해 근대의 ‘신판화’로 이어지는 흐름을 가리킨다. 키요치카는 서구식 빛과 원근을 받아들여 도시의 밤과 근대의 공기를 그려낸 작가이고,

하스이는 전통 목판 기법 위에 빛과 계절의 정서를 더해 풍경 속 시간을 섬세하게 담아냈다.

이 흐름은 단순한 양식의 변화가 아니라 ‘무엇을, 어떻게 바라볼 것인가’라는 시선의 이동을 보여준다.



우키요에(浮世絵)에도 시대 일본에서 발전한 목판화로, 당시 사람들의 일상과 유흥, 풍경을 담아낸 그림이다. ‘떠다니는 세상의 그림’이라는 뜻처럼 지금 이 순간의 삶과 감각을 포착하는 데 집중한다.

대량 인쇄가 가능해 예술이 일부가 아닌 일상의 이미지로 퍼져나갔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목요일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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