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가치가 아니라, 삶의 가격이 조정되고 있다.
우리는 늘 변하고 있다고 믿는다. 전쟁과 재난, 기후 위기와 기아문제 속에서 올바른 선택을 위해 끊임없이 고민했다. 하지만 어떠한 선택 속에서도 우리의 삶은 하루 전, 일주일 전, 일 년 전과 비교해 달라지지 않았다. 같은 시간에 일하며, 무엇을 먹을지 고민하고, 같은 피로를 느낀다.
변하고 있는 것은 우리가 믿는 세계적 가치가 아닌, 우리 삶을 이루는 미세한 경제적 가치 일지도 모른다.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사건들은 각자의 필요에 따라 경제적 가치로 환산되고, 그렇게 치환된 가치들은 우리의 노동과 여가, 선택의 범위를 조용히 재조정한다. 우리는 그 가중치에 따라 삶이 넉넉한지, 부족한지를 판단하며 살아간다. 이처럼 모든 요소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사회 구조 속에서, 경제는 점차 인간 삶의 목표이자 신념처럼 기능하기 시작했다.
끊임없이 조정되는 경제 가치는 인간이 소비하는 시간에 큰 영향을 미친다. 모두가 같은 24시간을 살고 있지만, 각자의 근무 시간·여가 시간·수면 시간은 서로 다르다. 이러한 차이는 경제적 가치가 조정되는 과정에서 인간이 받는 영향의 결과다. 인간은 직감적으로 시간이 삶의 질을 결정하는 핵심 요소라는 사실을 알고 있다. 같은 근무 시간을 보내더라도, 근무가 끝난 뒤 무엇을 할 수 있는가는 개인마다 다르다. 이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가 바로 경제적 가치다. 더 나아가, 그 경제적 가치를 소유하기 위한 근무 과정 자체가 삶의 만족도를 평가하는 기준이 되었다.
삶의 가치를 경제적 가치로 환원하는 방식은 결국 개인이 의식하는 동안의 시간을 어떻게 사용할지를 결정한다. 인간은 자신의 시간을 얼마나 주도적이고 의식적으로 활용할 수 있는가에 따라 삶의 만족도를 판단하고, 그 상태를 ‘행복한 삶’이라 부른다. 쉽게 말해, 인간은 좋은 직장과 높은 연봉을 위해 노력하고, 그렇게 얻은 직업을 통해 더 많은 돈을 벌며, 그 대가로 더 많은 여가 시간과 더 넓은 선택지를 확보한다. 결국 우리는 돈으로 시간을 사고, 활동의 가능 범위를 구매하며 살아가고 있는 셈이다.
그러나 경제적 가치를 통해 행복을 구매하는 삶의 방식은 분명한 부작용을 동반한다. 사람들은 서로의 경제적 위치에 따라 가시적으로 드러나는 행복의 정도를 비교하고, 그 정보를 공유하며 우위를 가른다. 이러한 비교는 특정 조건과 맞물릴 경우 사회의 유지와 발전에 불리하게 작용한다. 개인의 자유로운 노동 활동으로 생산된 물품과 그로부터 발생한 자본은 교환을 통해 스스로 증식한다. 이 과정에서 자본은 필연적으로 더 많은 자본을 향해 집중되며, 개인 간 축적 격차는 커질 수밖에 없다. 그 결과 누군가는 시기와 질투를 품고, 누군가는 그 격차를 논리적으로 정당화한다. 이는 사회 구성원 간 비교 우위를 고착화시키고, 분열과 갈등의 씨앗이 되기에 위험하다.
인간은 원초적 결핍에서 비롯된 욕망을 안정적으로 충족하기 위해 사회를 만들고, 그 안에서 스스로의 자유를 제한하는 사회적 약속을 집행해 왔다. 그러나 자본 축적의 불균형으로 사회가 붕괴된다면, 인간은 다시 생존 환경으로 내몰릴 것이며, 자의적이고 의식적인 시간 향유를 통해 도달하던 충만한 행복을 포기해야 할지도 모른다. 반대로 자본과 기술이 초월적으로 발전하여 자본 축적이 더 이상 이전과 같은 의미를 갖지 못하게 된다면, 그때에도 우리는 과거와 같은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까.
결국 인간은 자본이라는 거대한 개념 아래에서, 행복을 추구하기 위한 수단으로 무한히 축적하고 소비하며 삶을 이어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사회의 분열로 인해 생존 환경으로 회귀하는 미래, 혹은 기술과 자본의 발전으로 자본 축적의 의미가 약화되는 미래라는 실현 가능한 전망 앞에서, 우리는 과연 어떤 방식으로 행복을 추구할 수 있을 것인가.
또한 경제적 가치로 치환된 자본이란, 본래 우리가 앞으로 감수해야 할 고통의 경험을 물질의 형태로 전환한 결과이기도 하다. 우리는 물건을 구매함으로써 그것을 생산하는 데 반드시 수반되는 고통의 경험을 대신 지불한다. 언젠가 어떤 형태로든 자본이 그 의미를 상실하는 순간이 온다면 우리는 그동안 외면해 왔던 수많은 고통을 다시 감내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우리는 본래 철학적 사유를 통해 삶의 태도와 목표를 설정해 왔다. 인간 행복이라는 거대한 질문 앞에 수많은 요소들을 나열하며,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지, 어떻게 인간이 행복에 도달할 수 있는지, 왜 인간이 행복해야 하는지를 끊임없이 묻는 존재였다.
그러나 우리는 점차 이러한 의식적 활동들을 자본의 축적이라는 단순화된 기준으로 대체하며 살아가고 있다. 앞으로 인간 사회는 퇴보할 수도, 진보할 수도, 혹은 정체될 수도 있다. 그러나 인간이 철학적 사유를 포기한다면, 그 어떤 경우에도 물질적 형태에 의존한 행복에서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