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건너는 희망의 메달
엄마의 삶을 관통하는 단 하나의 단어를 고르라면, 나는 주저 없이 ‘감사’를 택할 것이다. 그것은 형편이 좋아졌을 때 자연스럽게 흘러나오는 여유가 아니었다. 오히려 삶이 벼랑 끝에 섰을 때마다 엄마가 꺼내 들던, 가장 단단한 생존의 도구였다.
오늘도 감사,
내일도 감사.
심지어 아직 오지 않은 미래까지도 미리 감사하라는 말.
엄마는 불평이 삶을 좁게 만든다고 믿었다. 불평은 마음을 침울한 감옥에 가두지만, 감사는 절망적인 상황 위로 숨 쉴 틈을 만들어준다는 것이 엄마의 지론이었다.
당장 이자를 낼 돈이 없을 때도, 자식들 등록금 앞에서 앞길이 막막해질 때도 엄마의 입에서 먼저 나온 말은 뜻밖이었다.
“잘 될 거야. 길이 열릴 거야.”
심지어 대출을 받아야 했던 날에도 엄마는 웃으며 말했다.
“봐라, 우리 형편에 돈을 빌릴 수라도 있으니 얼마나 다행이니. 갚아갈 길이 있다는 게 바로 은혜지.”
남들에겐 무거운 짐이었을 빚조차 엄마는 ‘열린 길’이라 부르며 감사로 받아냈다.
홀로 생계를 책임지며 보낸 시간들은 지독한 고립이 아니었다. 그것은 아무도 걸어보지 않은 길을 스스로 개척해 나가는 개척자의 시간이었다.
엄마는 마음이 답답해질 때마다 사람에게 의논하지 않았다. 대신 더 넓은 교회를 찾아 나아갔다.
집보다 몇십 배는 더 크고 천장이 높은 공간, 숨이 탁 트이는 그 광활한 예배당 한가운데 앉아 엄마는 기도로 하늘과 대화했다.
답답한 삶은 답답한 곳에서 풀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삶 앞에 버티고 선 산들을 하나씩 넘고 난 뒤, 엄마의 가슴에 남은 것은 상처가 아니라 희망의 메달이었다.
내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말을 할 때면, 엄마는 조용히 나를 자신의 시간으로 데려간다.
“그땐 참 힘들었지. 그런데 지금 봐라. 우리가 여기까지 왔잖니.”
그리고 덧붙인다.
“견뎌야 할 때는 견디고, 기다려야 할 때는 기다리는 거야. 하나님은 결국 가장 좋은 걸 주시더라.”
이제 엄마의 과거는 더 이상 무겁지 않다. 그 세월은 아픔이 아니라, 감사만 남은 눈부신 승전보가 되었다. 내가 물었다.
“엄마, 어떻게 그 시간들을 다 견뎠어요? 우린 아무것도 해준 게 없는데.”
엄마는 당당한 미소를 지으며 대답한다.
“그냥, 감사하며 살았지.”
그 짧은 대답 속에 한 사람이 인생을 건너온 모든 방식이 응축되어 있다. 84세의 나이에도 허리 한 번 굽지 않고 매력이 넘치는 엄마의 기세는 바로 그 ‘감사의 근육’에서 나온 것이리라.
험한 길을 끝까지 걸어온 사람에게서만 배어 나오는 당당한 빛. 그 빛은 지금도 오늘을 건너는 우리에게 가장 분명한 방향을 가리키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