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의 이름으로 배달되는 사랑
엄마는 십여 년을 쉬고 계신 아빠에게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결국 당신이 내 노후를 책임져 줄 거야.”
그 말은 늘 현실과는 거리가 먼 이야기처럼 들렸다.
삼남매인 우리는 당연하게 생각했다. 우리가 먼저 자라 돈을 벌어 엄마의 노후를 챙기는 것이 자연스러운 순서라고.
“엄마, 아빠보다 우리가 더 빠르지 않을까요?”
조심스레 묻는 말에도 엄마의 대답은 늘 같았다.
“아니야. 아빠가 해줄 거야.”
그 믿음은 쉽게 이해되지 않았다. 현실보다 앞서간 말처럼 보였고, 어쩌면 엄마 스스로를 다독이기 위한 가느다란 희망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아빠가 다시 일을 시작한 건 언니가 결혼할 무렵이었다. 십여 년의 공백을 뒤로하고 아빠는 새벽마다 집을 나섰다. 빌딩 경비 일. 크고 화려한 자리는 아니었지만, 아빠는 그 자리를 누구보다 성실하게 지켰다. 간경화로 병원을 오가며 몸이 무거워지던 순간에도 끝내 일을 놓지 않으셨다.
그 성실함이 뒷날에 의미를 남겼다.
엄마는 지금 유족연금을 받으며 살아가신다. 자식들이 드리는 용돈이 아니라, 아빠가 남긴 책임의 몫으로 이어지는 생활이다.
매달 통장에 찍히는 숫자는 이제 곁에 없는 아빠가 엄마에게 보내는 가장 다정한 안부이자, 성실한 약속의 증거다.
엄마의 말은 결국 틀리지 않았다. 아빠는 끝내 엄마의 노후를 책임지고 계신다.
이제야 알겠다. 엄마의 기다림은 막연한 낙관이 아니었다. 아빠라는 사람을 포기하지 않겠다는 선택이었다.
긍정의 말로 관계의 끈을 놓지 않고, 기다림으로 아빠가 다시 자기 자리로 돌아올 시간을 벌어준 것이었다.
누군가는 그것을 미련이라 부를지도 모른다. 그러나 엄마의 기다림은 삶으로 증명되었다.
나는 이제 삶을 이렇게 이해한다. 삶은 긍정의 기다림 속에서 결국 자기 몫의 답을 받아드는 과정이라고. 기다림은 더딜 수 있다. 하지만 믿음으로 건너온 시간은 조용히, 그러나 분명하게 도착한다.
오늘도 엄마의 통장에는 아빠의 사랑이 도착한다.
엄마의 오늘은 그 오래된 기다림이 맺은 가장 눈부신 결실이다.
그 결실은 이토록 고요해서, 이제야 사랑처럼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