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물림

흐르는 것은 멈추지 않는다

by 라온제나

싱크대 앞에 서서 그릇을 헹구다 문득 물었다.
“엄마, 엄마는 할머니 할아버지께 무엇을 물려받았어?”
물소리가 잦아드는 사이, 엄마는 TV에서 눈을 떼고 나를 바라보았다.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거짓 없음, 그리고 진실함이지.”


외조부모님을 기억하는 동네 어른들은 한결같이 말씀하시곤 했다. 법 없이도 사실 분들이라고, 사람을 속이거나 가려 대하는 법이 없던 분들이라고. 엄마는 그 성품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가난을 굳이 숨기지 않았고, 가난하다고 해서 기죽지도 않았다. 없는 형편에서도 나눌 수 있으면 나누었고, 몸이 고단해도 가야 할 자리가 있으면 결코 미루지 않았다.

그것은 누군가에게 착해 보이기 위한 선택이 아니었다. 그렇게 사는 것이 당연하다고 배운 사람만이 가질 수 있는 자연스러운 태도였다.

엄마의 기억 너머, 외가에는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먹을 것이 귀하던 시절에도 외할머니는 집 앞을 지나던 걸인을 그냥 보내지 않으셨다. 형편이 넉넉해서가 아니었다. 사람을 빈손으로 돌려보내는 일을 차마 하지 못하는 마음 때문이었다.

외할머니는 구걸하는 이에게 던져주는 한 끼가 아니라, 정갈하게 상을 차려 마주 앉아 나누는 ‘한 상’을 내어주셨다. 그분들이 끝내 지켜낸 것은 음식이 아니라, 어떤 거친 시대에도 놓지 않았던 사람에 대한 존중이었다.

그 존중은 엄마에게로, 그리고 다시 우리에게로 흘러왔다.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다는 말은 단순히 깨끗함에 대한 수사가 아니었다. 그것은 어떤 가치를 품고 흐르느냐는 존엄의 대물림이었다.


엄마가 눈앞의 형편에 매몰되지 않고, 그 너머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붙들며 오늘을 당당히 살아낼 수 있었던 이유도 결국 이 깊은 뿌리 덕분이었을 것이다.

헹군 그릇을 건조대에 가지런히 엎어놓으며 나는 생각한다. 내 삶도 누군가에게 그렇게 투명하게 흘러가는 통로가 될 수 있을까. 나는 아직 엄마만큼 맑지 못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래도 멈추지 않고 흐르는 이 물줄기 곁에 끝내 서 있을 수는 있을까.

내 아이 또한 이 흐름의 가장자리에서 마음껏 씨를 뿌리고, 언젠가 비바람에도 쉽게 꺾이지 않는 나무로 자라날 수 있을까.

엄마가 물려준 진짜 유산은 손에 쥘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거짓 없이 살아도 충분하다는 믿음, 진실함은 결국 사람을 살린다는 확신, 그리고 존중은 멈추지 않고 다음 세대로 이어진다는 삶의 양식이었다.

지금 나는 그 거대한 흐름 위에 서 있다. 엄마라는 맑은 물줄기를 이어받았으니, 이제는 나도 잘 흘려보내는 사람이 되고 싶다.

흘러온 것처럼,
결코 멈추지 않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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