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고 싶은 뒷모습
“엄마, 우리에게 꼭 남겨주고 싶은 한 가지가 있다면 그게 뭐예요?”
잠시 생각을 고르던 엄마는 언제나 같은 곳을 가리키셨다.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 그리고 예배하는 사람이 되는 것.
엄마에게 예배는 딱딱한 형식이 아니었다. 그것은 기쁨이었고, 버팀이었으며, 무너질 듯한 시간을 다시 일으켜 세우는 유일한 힘이었다. 그래서 나는 “교회 다녀라”라는 훈계보다 “함께 예배하자”라는 다정한 초대를 더 많이 들으며 자랐다.
엄마를 통해 세상을 사는 법을 배웠다면, 그 중심에는 늘 예배가 있었다. 엄마에게 예배는 일상이었고, 그 치열했던 생애 자체가 하나의 온전한 예배였다.
여든넷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을 만큼 엄마는 지금도 단정하다. 고운 화장을 얹고, 흰 머리는 빈틈없이 염색해 늘 정갈한 모습으로 사람을 맞이한다. 옷매무새 하나, 말투 하나에 흐트러짐이 없다.
세월의 풍파 속에서도 엄마는 자신을 함부로 다루지 않는 사람의 기품을 잃지 않았다. 삶이 아무리 거칠어도 끝내 자기를 놓지 않았던 사람.
내가 감히 감당하지 못했을 모진 시간들을 엄마는 그렇게 자신을 가꾸듯, 예배하며 지나왔다.
그래서일까. 지금의 엄마는 평안하고 단단하다.
나는 엄마에게서 세상을 읽는 법을 배웠고, 흔들리지 않는 선택을 배웠으며, 끝내 이겨내는 믿음을 배웠다.
이제 그 사랑이 나를 지나 다시 누군가에게로 흘러가기를 소망한다. 나는 여전히 작고 연약한 통로이지만, 그래도 멈추지 않고 이 온기를 전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
사랑하는 엄마,
내가 기억하고 적어 내려간 이야기들은 엄마의 긴 세월에 비하면 아주 작은 조각일지도 몰라요. 그 깊고 넓은 시간들을 이 좁은 글에 다 담아내지 못해 아쉬운 마음이 남습니다.
그래도 그 사랑의 품 안에서 자랐기에, 이제는 나도 그 사랑을 세상에 나누어 보려 합니다. 엄마의 삶이 온전한 예배였듯, 나 또한 그렇게 살아가고 싶어 오늘도 조용히 무릎을 꿇습니다.
이 글들은 내가 엄마에게 건넬 수 있는 가장 작은 감사입니다.
엄마,이 글에 담긴 활자보다 훨씬 더 많이 엄마를 사랑해요.
그리고 더 많이 축복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