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회

미움 대신 도리를 가르친 엄마

by 라온제나

엄마에게 전화를 걸면 늘 같은 말로 통화가 시작된다.

“그래, 좋아.”


아이들 걱정으로 이런저런 푸념을 늘어놓아도 엄마의 대답은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잘 될 거야. 하나님의 자녀는 하나님이 기르시는 거다. 너희 자라온 걸 봐라.”


엄마의 긍정은 가벼운 낙관이 아니었다. 말속에 뼈가 있고, 말 한마디가 삶의 방향을 바꾼다고 믿는 사람이었다.

“부정적인 말을 키우면 부정이 쌓이고, 긍정적인 말을 키우면 긍정이 쌓여. 너는 네 인생에 어떤 말을 키우고 싶니?”


돌이켜보면 엄마가 내게 물려준 가장 위대한 유산은 재산이 아니라, 이 ‘말의 태도’였다.

청소년기부터 십여 년 동안 아빠는 가장의 자리를 비운 채 집에 계셨다.

그 시간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 무게가 엄마에게 어떤 삶이었는지를 나는 한참 뒤에야 알게 되었다.


어릴 땐 그저 그런가 보다 했다. 하지만 내가 어른이 되고 결혼을 하며 ‘삶의 책임’을 직접 짊어지고 나서야, 과거의 풍요에 머문 채 멈춰 서 있던 아빠의 뒷모습이 점점 이해되지 않기 시작했다.


안쓰러움과 답답함이 동시에 고개를 들 때가 있었다.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가정의 기회들을 외면한 채 서 있는 아빠를 받아들이는 일은 쉽지 않았다. 그럴 때마다 엄마는 단호하게 말씀하셨다.


“불효해서 네 마음에 후회 남기지 마라. 그래야 나중에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서 네 마음이 편해.”


힘들었던 건 정작 엄마 자신이었으면서도, 엄마는 자신의 상처를 자식에게 대물림하지 않으려 애쓰셨다. 그것은 아빠를 향한 면죄부가 아니었다. 평생 ‘미련’이나 ‘원망’이라는 짐을 지고 살지 않도록, 자식들을 미리 자유롭게 해주려는 엄마만의 처방전이었다.


아빠가 돌아가시기 전, 술로 인한 간경화로 병원 신세를 지실 때때도 삼남매는 아빠 곁을 지켰다. 수년 동안 아빠를 병원에 모시고 다녔던 언니를 보며 의사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셨다.

“아버님, 좋은 자녀들을 두셨어요. 이렇게까지 자녀들이 끝까지 챙기는 분은 처음 봅니다.”


이제 아빠를 향한 나의 감정은 복잡하지 않다. 가장의 무게는 놓쳤을지언정, 비굴하지 않게 끝까지 당당하게 살아주신 아빠에게 오히려 감사한 마음이 크다.

만약 아빠가 평생 죄인처럼 풀죽어 살았다면, 나는 도리를 다하는 내내 그 초라함에 대한 위로까지 건네야 했을 것이다.


하지만 엄마는 아빠의 기를 꺾지 않음으로써, 아빠의 자존심이라는 마지막 보루를 지켜주셨다. 그 덕분에 아빠는 끝까지 당당할 수 있었고, 나는 아빠를 연민이 아닌 한 사람의 존재로 기억할 수 있게 되었다.


엄마가 지켜준 아빠의 당당함은, 결국 자식인 나에게 아빠를 존중으로 배웅할 수 있는 힘이 되었다.


부모를 미워하며 평생을 허비하지 않도록, 후회라는 늪에 빠지지 않도록 미리 우리를 단단하게 붙들어준 엄마. 엄마 덕분에 우리는 미움 대신 추억을, 후회 대신 감사를 얻었다.


사랑은 때로 상대의 허물을 덮어주는 것을 넘어, 자식의 마음속에 미움의 싹이 자라지 못하도록 미리 땅을 고르는 일임을, 나는 엄마의 삶을 통해 배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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