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한 밥상
엄마의 주방에서 "간단히 먹자"는 말은 좀처럼 통하지 않는다.
"찌개 하나면 충분해요"라는 나의 만류에 엄마는 늘 환한 미소로 고개를 지으며 대답하신다.
"아니야, 근사하게 먹자. 그게 즐겁잖니." 엄마에게 상차림은 번거로운 가사 노동이 아니라, 삶을 대하는 정중한 예우에 가깝다.
즐겁게 차리되 늘 '다음'을 생각하는 엄마만의 정갈한 방식이다.
엄마는 기쁘게 상을 차리면서도 시선의 끝을 언제나 그다음 시간에 두신다.
"이 음식이 마지막이 될지도 모르잖아. 너희한테 아쉽고 미안한 기억으로 남고 싶지 않다."
혹여나 나중에 자식들이 엄마를 떠올릴 때, 한 상 가득 차려진 밥상이 생각난다면 조금이라도 위안이 되지 않겠느냐는 속 깊은 고백.
자식의 슬픔까지 미리 밥상 위에 환하게 닦아 두려는 그 마음을 알기에, 나는 일부러 담백한 목소리로 말을 보탠다.
"엄마, 별소리를 다 해요. 하나님이 선한 길로 인도하실 텐데."
내 말이 엄마의 잔잔한 염려를 조금 덜어내면, 엄마의 손은 다시 분주해진다.
김치를 꺼내고 나물을 무치고 조용히 불 앞에 서는 뒷모습을 보고 있으면, 식탁은 어느새 풍성한 잔칫상이 된다.
그 부지런함은 손님을 맞이할 때도 시들지 않는다. 불고기를 재우고 겉절이를 무치고 감자전을 정성껏 부쳐내야 비로소 엄마의 마음은 놓인다.
"남기면 뭐 하니, 다 싸 줬어. 난 또 만들면 돼." 자신의 하루를 기꺼이 비워 누군가의 허기를 채우는 일.
엄마에게 나눔은 고단한 희생이 아니라 삶을 축제로 만드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었다.
"맛있게 만들어 줄게, 오렴." 수화기 너머 들떠 있는 엄마의 목소리는 언제나 따스한 봄날 같다.
마지막일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 상을 차리되, 오늘을 결코 무겁게 살지 않는 사람.
이제야 나는 안다. 엄마의 상차림은 단순히 배를 채우는 한 끼가 아니라, 남겨질 우리에게 미리 건네는 가장 따뜻한 기억이라는 것을.
주말이면 다시 마주할 그 상 위에는 오늘도 엄마의 환한 미소와 고소한 밥 냄새가 조용한 축제처럼 피어오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