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장에서 떠 올린 15년 전

by 오탁구

출장 보고서에 담지 못한 사적인 생각을 이곳에 남깁니다.


지금까지 이런 해외 출장은 없었다. 올해 마지막 K국 출장을 변수 없이 마쳤다. 현지 직원들이 준비를 잘해 준 덕분이었다. 미팅 하나가 해당 기관 사정으로 취소되었지만 별 일 아니었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K국 센터 졸업식날에는 대학생이 된 선배 졸업생 3명이 자원봉사자로 참여하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은 초등학생 때 한국에도 왔었는데, 나를 기억 못 했다. 그때 나랑 일주일 동안 서울 시내를 같이 돌아다녔는데 말이다. 괜찮았다. 기억은 잊어도, 우리 프로그램은 이곳에 남았다.


15년 전 K국 프로그램을 시작할 때만 해도 주민들은 시내에서 쫓겨난 사람들이었고, 하루에 두 끼 이상 밥을 먹는 집이 드물었다.


사람들이 이사 오고 나중에 전기, 수도 같은 기반 시설이 천천히 들어왔다. 마을 진입로도 닦이지 않아 비만 오면 길이 엉망이 되었다. 비닐과 플라스틱 쓰레기가 마을 구석구석 널려있었다.


이곳이 사람들이 사는 마을인지 쓰레기장인지 분간하기 어려웠다. 길은 빗물에 자주 잠겼는데 첫 출장 때는 오물이 둥둥 떠다니는 길을 바지를 걷어 올린 채 돌아다니기도 했다. 아이들은 물 빛이 짙은 녹색으로 변한 웅덩이에서 고기를 잡고 놀았다.


우리 아동센터는 우리나라가 원조(ODA)를 집중하는 최빈국 슬럼가에 있다. 아동센터에서는 낮 시간에 부모를 대신해 아이들을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다. 우리로 치면 지역아동센터나 어린이집을 운영하는 셈이다. 아이들이 보호받는 동안 부모는 마음 놓고 일터로 향한다. 센터에서 내세우는 슬로건은 '엄마는 일터로, 아이는 학교로'이다.


여러 나라 슬럼가를 방문했지만 빈곤은 대개 비슷했다. 그동안 만나 본 슬럼가 주민 얼굴 표정은 어두웠다. 아이들은 어디를 가도 밝게 웃었지만, 슬럼에서 가장 고통받는 이들은 아이들이었다. 병에 걸려서 아픈 경우가 많았고, 위험한 환경에 둘러싸여 있었다. 학교에서 공부해야 할 아이들이 집안일을 하거나 돈을 벌었고, 가난이 대물림되는 악순환이 반복되었다.


필리핀에서는 슬럼에 사는 한 가정을 방문해 함께 밥을 지어먹었다. 장 보는 일부터, 물을 길어오고, 불을 피우고, 설거지하고 화장실 가는 일까지 손쉬운 일이 없었다. 부자 나라에서 곱게 자란 나는 적응이 안 됐다. 그들과 함께하는 2시간이 얼른 지나가기만을 바랐다.


15년이 지났다. 마을 진입로가 포장되어 있었고 흔했던 나무집 대신 벽돌집이 보였다. 물 웅덩이도 없었다. 주민들 말로는 진입로 포장이 마을 모습을 바꾸었다고 했다.


센터장은 현지 재원을 늘리기 위해, 센터 이용 대상을 중산층까지 늘리자고 했다. 현지에서는 예체능 교육이 부족한데, 우리 센터에는 중산층 주민들이 돈을 내고서라도 아이를 보내고 싶어 할 정도로 여러 예체능 수업이 있었다.


아무리 뜻이 좋은 프로그램이라도 외부 원조만으로는 지속할 수가 없는데, 고민하는 센터장이 있어서 든든했다. 언젠가 외부 지원이 끝나더라도 그들은 이곳에 산다.



* 다음화는 '이야기만 들어도 겁나는 해외출장'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본문의 이미지는 AI를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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