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야기만 들어도 겁나는 해외출장

by 오탁구

* 지난 편에 이어 직장 출장보고서에는 담을 수 없는 개인적인 경험과 감정을 이곳에 남깁니다.


어쩌다 보니 직장에서 해외 출장이 잦은 일을 맡게 되었다. 지금껏 홀가분한 출장은 없었다. 출장지는 우리 기관 사업장이 있는 나라들이다. 한 번에 스무 명이 넘는 봉사단을 데려가기도 하고, 현장 점검차 동료 직원 한 두 명과 단출하게 방문하기도 한다.


공항에 도착하면 입국 심사가 첫 번째 고비다. 기다리는 줄이 길고 줄이 줄어드는 속도는 하세월이다. 급행료를 달라는 공무원들도 있었고, 어떤 나라에서는 수하물 검사에서 이런저런 트집을 잡아서 애를 먹이는 경우도 있었다. 지난해 방문했던 한 나라에서 오랜만에 급행료를 요구하는 공무원을 보기도 했는데 그냥 못 들은 척했다.


공항 밖으로 나가면 새로운 세계가 펼쳐진다. 이번에는 또 어떤 일이 벌어지려나. 가난한 나라는 위생 사정이 안 좋은 특징이 있다. 이질, 말라리아, 살모넬라균이 떠 오른다. 이름만 들어도 몸이 기억하는 병이다. 이질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같이 간 일행은 모두 멀쩡했는데 나만 몸살 기운이 있었다. 열이 나고 온몸에서 물이 다 빠져나가는 것 같았다. 밤새 화장실을 들락거렸다. 몸속에 무언가 아주 센 놈이 들어온 걸 알 수 있었다. 현지 의사는 검사결과를 보더니 세균성 이질이랬다. 병원 약을 먹고 금방 회복했다. 센터가 있는 동네 카페에서 마을 주민이 사준 아이스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 얼음이 깨끗하지 않았던 탓이었다.


호텔 대신 K국 어린이 센터 2층 교실에서 묵었을 때 이야기다. 새벽에 도둑은 2층까지 울타리를 타고 넘어와서 출장팀이 가져온 아이패드와 카메라, 노트북을 가져갔다. 동료 한 명이 자다 깨서 짐이 없어진 걸 알게 되었고, 우리는 동네 이장에게 바로 알렸다. 갑자기 센터 밖에서 오토바이 소리가 요란하게 나더니 순식간에 무전기를 하나씩 든 마을 청년 열댓 명이 이장 집 앞으로 모였다. 그들은 오토바이를 타고 다니면서 동네를 뒤졌고 동이 틀 무렵 범인을 잡았다.


알고 보니 마을에서 제일 부잣집 청소년이 동네 친구들과 저지른 일이었다. 잃어버린 물건은 모두 찾았고, 그날 이른 아침에 아이 아버지가 센터로 우리를 찾아왔다. 단정하게 빗어 넘긴 가르마는 윤기가 흘렀고 손을 움직일 때마다 금빛 손목시계와 굵은 반지가 번쩍거렸다. 그는 우리에게 공손하게 사과했고, 경찰에 신고하지 말아 줄 것을 부탁하였다. 결국 마을 이장이 경찰에 신고하고 사건을 마무리했다.


또 오토바이를 개조해 만든 삼륜자동차 툭툭이를 타고 가는데 옆에서 오토바이가 다가와 현지 직원 품에 있던 노트북을 빼앗아 달아난 적도 있다. 이럴 때는 현지 경찰은 신고해도 별 도움이 안 됐다. 사건이 다 끝난 다음에 나타나서 사건 보고서나 써주면 그나마 다행이었다. 문제 해결은 기대도 안 했지만, 보고서 작성을 빌미로 선물을 요구하는 경우가 많았다.


공항에 내렸는데 수하물로 부친 짐이 엉뚱한 나라로 가서 빈손으로 집에 간 일도 있고, 비행기 표를 잘못 끊어서 귀국일이 예정보다 늦어진 적도 있었다. 아프리카 르완다에서는 반바지를 입고 오토바이 뒤에 타고 이동하다가 머플러에 종아리가 닿아서 어른 손바닥만 한 화상을 입기도 했다. 현지 병원에서는 흉터가 남지 않는다고 걱정 말라고 장담했으나 5년이 지난 아직도 종아리에 흉터는 선명하게 남아있다.


지난해 3개국 출장을 다녀왔다. 탄자니아는 대선과 총선을 앞두고 정국이 뒤숭숭한 시점에 무사히 다녀왔다. 다녀오자마자 부정선거 이슈로 휴교령과 저녁 시간 통행금지령이 발령되기도 하였다. 이제는 출장 이야기만 들어도 겁이 난다. 할 수만 있다면 해외 출장은 후배들에게 양보하고 싶다.


* 다음화는 '온 마을이 키우지만 마을에 돈이 없어요'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본문의 이미지는 AI를 통해 생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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