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도 나도 자립을 말하지만, 해외 현장에서 자립처럼 어려운 일이 없다. 우여곡절 끝에 몽골에 만두 공방을 짓기로 했다.
다시 제안서를 썼고 후원금을 낸 기업에서도 우리 뜻에 흔쾌히 동의했다. 몽골 센터에서는 하루가 다르게 바뀌는 공방 건축 사진을 보내왔다. 어느새 바닥을 다지더니 벽돌이 올라가고 창문이 달리고 지붕이 덮였다. 넉 달만에 그럴듯한 건물이 되었다.
한 여름에 우리 팀 후배 직원 S가 몽골로 날아가 약 두 달 동안 부족한 일손을 도왔다. 공사는 계획대로 마무리했지만, 공사가 끝이 아니었다. 기자재를 채워 넣는 일, 참여자를 선정하는 일, 기업 고위 임원, 현지 공무원을 비롯한 두 나라 귀빈이 참석하는 기념식까지 준비 시간이 빠듯했다.
기념식 참석차 우리 기관 임원을 모시고 몽골행 비행기에 올랐다. 울란바토르 공항에 도착하니 부슬비가 내렸다. 몽골 센터장은 ‘몽골에 오신 걸 환영합니다. 몽골에서는 비가 오는 날에 오는 손님은 운이 좋다는 속담이 있습니다’라는 문자를 보내주었다.
다음 날 몽골 센터에서 행사는 순조롭게 끝났고, 현지 지방 정부에서는 사회복지 발전에 기여한 공로로 우리 기관에는 유공 훈장을, 공방 건축을 후원한 후원사와 몽골 센터에는 감사패를 수여했다. TV 방송사에서도 취재를 왔는데, 내외빈보다 앞으로 공방 프로그램에 참여할 지역 청소년들에게 더 관심을 갖고 인터뷰하는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몽골 센터장에게 ‘비 오는 날 찾아오는 손님은 운이 좋다는 게 무슨 뜻인가요?’ 물었다. 유목민 가정에서는 비가 오면 바깥일을 쉬고 식구들이 게르에 모여 고기 요리를 해 먹는데, 이때 찾아오는 손님은 같이 고기를 먹을 수 있으니 얼마나 운이 좋냐고 했다. 센터장 말이 맞았다. 우리는 행사도 잘 마치고, 훈장까지 받을 수 있었다.
이번 주에 이메일을 한 통 받았다. 공방에서 시제품을 만들어서 몇 곳에 납품했는데 반응이 괜찮다는 소식이었다. 본격 생산에 앞서 정부 인허가 몇 개를 준비 중이고 지방 정부 제안으로 공방에서 일할 직원을 7명이나 뽑겠다고 알려왔다. 공방을 짓자마자 시제품을 생산하고 직원까지 뽑을 줄은 몰랐다. 몽골에서는 우리 예상보다 빠르게 일이 흘러가고 있었다.
어쩌나! 직원 7명 채용은 계획에 없던 일이었다. 인건비는 어떻게 마련한단 말인가? 우리만 믿고 몽골 센터장이 일을 더 크게 벌리는 건 아닐까? 인건비만 대는 프로그램으로 전락하지 않을까 걱정이 됐다. 한 동안 몽골에 바로 답변을 보낼 수가 없었다. 인건비는 어떻게 마련하느냐고 물으니, 공방 판매 수익으로 충당하겠다는 답변이 왔다. 지방 정부에서 공방 운영과 판로 개척을 적극 도와주는 모양이었다.
나조차 남이 준 후원금을 쓰는 일에 익숙하지, 여태까지 장사해서 돈을 벌어 본 적이 없다. 한국도 아니고 해외에서 국제개발 프로그램으로 수익을 낸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다. 대부분 현지 주민 자립을 목표로 하지만, 실제로 자립까지 이어지는 경우는 드물다. 얼마나 자립이 어려운지, 차라리 프로젝트에 쏟는 돈을 주민들에게 직접 나눠주면 자립에 더 효과적이지 않을까 싶을 정도다.
공방 수익으로 직원 월급을 대겠다는 계획만으로도 지난 10년간 몽골 프로그램에 쏟아부은 우리 기관 노력이 보상받는 기분이다. 몽골 프로그램에 전에 없던 변화가 시작됐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국제개발에서 ‘현지화’가 얼마나 중요한지 배웠다. 몽골인 센터장 의견에 귀를 기울인 결과, 처음보다 더 나은 프로그램을 기업에 제안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 하고 싶은 일을 고집했더라면 시작도 못 해보고 끝났을 수도 있다. 설령 시작했더라도 마무리는 좋지 않았을 것이다.
어떤 일을 하더라도 일 크기와 무관하게 현지인 의견에 귀를 기울이고, 기왕이면 처음부터 현지 공무원들을 참여시키면 좋다. 그래야 그 프로젝트는 외국인들이 잠시 와서 하고 가는 일이 아니라, 현지인들이 끝까지 책임지고 이어 가는 일이 된다. 해외 사업에서 말하는 ‘현지화’는 이런 모습이 아닐까.
* 다음화는 '일 할 만큼 한 사람'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