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 할 만큼 한 사람

붙잡고 싶은 사람이 퇴직했다

by 오탁구

10월 말 어느 평일 오후였다. 모르는 번호로 전화가 왔는데 휴대폰에서는 스팸 확률이 60%라는 알림이 떴다. 이상한 기분이 들어 전화를 받았다. 국무조정실에서 이번에 우리 기관에서 추천한 몽골 센터장이 국무총리 표창을 받게 되었다는 전화였다.


우리나라는 2009년에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개발원조위원회(DAC)에 가입하였다. 다른 나라에 도움을 주는 나라가 되었고, 정부는 2010년부터 매년 '개발협력의 날'기념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국제개발협력 정부 포상 후보 추천 안내 메일은 6월에 왔다. 우리 기관은 최근에 ODA 사업을 한 적도 없고, 딱히 상을 받을 만한 공적도 없어 보였다.


그때 문득 몽골 센터장이 떠올랐다. 그는 10년 전 몽골 지부에 입사해서 지금까지 울란바토르 게르촌에서 아이들을 위해 일하는 몽골 사람이다. 20대 중반에 입사해서 게르촌에서 청춘을 다 보낸 셈이다. 국제개발 업계에서 현지인이 한 기관에 10년 이상 몸담으며 일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입사한 지 3년 만에 지부를 현지 NGO로 바꾸었고, 그 NGO에서 몽골 정부 보조금을 받는 어린이집을 운영하며 사회복지 활동을 넓혔다. 개인 스토리는 누구보다 탄탄했는데, ODA 사업 실적이 적은 게 흠이었다.


정부 유공자 표창이 외국인들에게는 문턱이 높았지만 생각나는 대로 추천서를 썼다. 쓰고 보니 몽골 센터장은 국제개발 업계에서도 보기 드문 인물이었다. 그가 훌륭하게 살았구나 싶었다. 몇 주 동안 추천서를 다듬었다.


우리가 하는 일이 개발도상국 주민들에게 스스로 삶을 바꿀 수 있는 힘을 키워주는 것이라면, 우리 몽골 센터장 이야기야말로 자랑할 만한 일 아닐까?


9월경에 탄자니아 숙소에서 아침밥을 먹고 있을 때였다. 혹시나 싶어 인터넷에 검색했더니 국무조정실 홈페이지에 포상 후보자 명단이 올라와 있었고, 몽골 센터장 이름이 있었다. 깜짝 놀랐다. 외국인 부문에는 후보자가 대여섯 명 있었는데 세계은행(World Bank), 아시아개발은행(ADB) 임원들, 개발도상국 고위 공무원이었다.


후보 명단이라는 것도 잊은 채, 직장에 몽골 센터장이 국무총리 표창을 받게 되었다고 알렸다. 본인에게도 소식을 전했다. 몽골 센터장은 믿기지가 않는다며 울기까지 했다.


성급했다. 다시 알아보니 홈페이지에 올라온 것은 후보자 명단이었고, 최종 명단 발표는 10월 중순이었다. 다른 사람들에게야 "한 번 더 심사가 있다고 한다. 끝까지 기다려 보자"라고 말하면 되지만, 몽골 센터장에게 뭐라 말을 하면 좋을지 참 난감했다.


솔직하게 말하는 수밖에 없었다. 착각했노라, 한 번 더 심사가 남았지만 나는 당신이 선정될 것이라 믿는다고 전했다. 마음이 너그러운 센터장은 본인을 추천해 준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후보에 오른 사실만으로도 기쁘다고 했다.


김칫국을 먼저 마신 죄로 수상자로 선정되기까지 혼자 마음을 졸였다. 선정된 이후에야 비로소 안도할 수 있었다. 센터장 임기는 지난 9월까지였다. 그는 늘 게르촌 아이들을 위해서 하고 싶은 일은 많은데 자신이 모두 다 할 수 없는 상황을 안타까워했다.


이제는 본인 아이들을 위해 일하고 싶다고 했다. 바짓가랑이라도 붙잡고 싶었지만, 잡는다고 더 할 사람도 아니었고, 이미 일을 할 만큼 한 사람이었다.


그는 시상식에 참여하기 위해 11월에 서울에 왔다. 시상식 전날에는 본부에 와서 직원들 앞에서 몽골 프로그램에 대해서 발표하기도 했다. 수상 소감을 미리 밝혔는데, 게르촌에서 일할 기회를 준 직장과 동료 직원들에게 공을 돌렸다. 센터장 앞날에 행운을 빈다.


* 다음화는 '추천서가 컨설팅 보고서로 돌아오다'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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