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동안 홀린 듯 에세이 원고를 썼다. 올해 잊지 못할 에피소드가 많이 떠올랐다. 여러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었다. 누구도 원고를 쓰라 한 사람은 없지만 혼자 좋아서 썼다.
지난주에 출판기획서까지 준비해서 12개 출판사에 원고를 보냈다. 일주일 만에 2개 출판사에서 거절 메일을 받았고 한 개 출판사에서는 기획회의에 올려서 이번 주까지 출간여부를 확정해서 알려주기로 했다.
거절 메일조차 기분을 들뜨게 했다. 출판사 검토까지 받고 친절한 답변까지 받을지는 몰랐다. 이번 주까지 답변을 주겠다는 출판사 메일은 선물이었다. 조만간 직장에서 중요한 결과 발표를 앞두고 있었지만 눈에 안 들어왔다. 책 한 권짜리 원고를 한편 써보니 주변에 생각보다 이야깃거리가 많았다.
마침 오늘 Y네 세 식구가 우리 집에 놀러 왔다.
벌써 오래전 일이다. 결혼을 앞두고 아내가 다니는 교회에 인사 갔다가 H를 만났다. 그날 처음 본 아내 선배 H는 반갑게 인사를 하더니, 나랑 아내를 데리고 할 이야기가 있다며 한 카페로 데려갔다. 초면에 무슨 할 이야기가 있을까? 그는 다짜고짜 남자를 소개해 달라고 졸랐다.
대학에서 음악을 공부했다는 H는 키도 훤칠하고 우아했지만 당돌한 여자였다. 제일 친한 후배가 결혼하면 자기만 혼자 남게 되니, 데려갈 거면 본인 소개팅을 책임지라고. 말도 안 되는 이유를 댔다. 뜬금없는 제안이었지만 H는 진지했다. 이유 없는 농담은 없었다.
주변에 미혼 남성 찾기가 쉽지 않았다. 웬만한 친구들은 애인이 있거나 유부남이 되어 있었고, 직장에서는 여직원들이 많았다.
며칠 후 대학 동문 모임에서 후배 Y를 만났다. 마침 그는 미혼이었고 혼자였다. 누가 보더라도 소개팅 상대로 괜찮은 남자였다. 인물도 준수했다. 학교 다닐 때 공부도 잘하고 성격도 좋아서 당연히 사귀는 사람이 있을 줄 알았다.
Y에게 H 사진을 한 번 보여줬더니 만나보겠다고 했다. 나중에 H에게서 Y를 만났다는 소식을 들었는데 첫 만남이 시시하게 끝났다기에 둘이 잘 안 되는 줄 알았다.
만나다 보니 둘이 점점 좋아졌는지 어쨌는지, 일 년 뒤에 두 사람은 결혼식을 올렸다. 한동안 우리 두 부부는 성탄절마다 만났다. 최근 몇 년간 모임이 뜸했다가 이번 성탄절에 Y네 부부가 6살 난 아들을 데리고 우리 집에 왔다.
어쩌다 우리 부부가 다른 사람 인생에 다리를 놓았다. 게다가 후배 부부는 잘 살고 있다. Y를 볼 때마다 세상 뿌듯하다. 아주 큰 일 했다.
* 다음화는 '딴소리와 잔소리'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본문의 이미지는 AI를 통해 생성되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