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 쓰기 싫어서 몸을 쓰기 시작했다

by 오탁구

육아 휴직 기간 오전은 자유 시간이었다. 탁구 레슨을 다녀와서 집안일을 하고, 오후에는 학교에서 돌아오는 아이들을 맞았다. 정작 아이들은 아빠가 집에 있으니 잔소리가 많다면서 복직날만 기다렸다.


꼬박 일 년을 쉬었다. 반으로 줄어든 생활비로 사는 게 쉽지 않았지만, 그동안 월급을 챙겨준 직장에 대한 고마움을 일깨워준 기간이었다.

아내는 내가 휴직하기 1년 전부터 달리기를 시작했다. 맘카페 활동을 하는데 운동 기록을 찍어서 올리는 숙제가 있다고 틈틈이 뛰었다. 하고많은 운동 중에 하필 달리기를 하나 싶었다.


달리기를 생각하면 힘들었던 기억뿐이다. 학교 운동회 날 달리기 시합에서 늘 꼴찌를 했다. 아무리 용을 써도 부모님이 물려주신 운동신경까지 바꿀 수는 없었다. 군대에서도 구보는 하기 싫었다.


한 번은 밤에 아내와 함께 뛰었다. 아무리 달리기를 못해도 아내만큼은 따라가겠지 싶었다. 아내는 러닝 앱 지시에 맞춰서 천천히 뛰었다. 느렸지만 오래 뛰었다. 이런 식이면 얼마든지 뛰겠다 싶었다. 왜 그동안 달리기는 빨라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체력에 맞게 천천히 뛰면 얼마든지 뛸 수 있을 텐데. 이날 달리기에 대한 생각이 바뀌었다.


이후로 아내를 따라서 소화도 시킬 겸 뛰러 나갔다. 10분만 달려도 탁구 칠 때랑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운동량이 많았고 기분도 상쾌했다. 아내를 따라 뛰면서 달리는 횟수며 거리를 늘려나갔다.


처음에는 아파트 단지를 크게 맴돌다가 다음에는 목적지를 정해놓고 다녀오는 방식으로 달렸다. 하루에 4km를 뛰기도 힘들다가, 한 달 누적 거리가 50km가 넘더니 100km가 되었고, 이제는 한 번에 10km를 뛰고 나서도 거뜬한 몸이 되었다.


한 달에 100km나 뛰는 건 자신에게도 큰 보람이고 자랑이기에 지인들이 귀찮아할 정도로 달리기 소식을 알렸다. 걱정하는 분들이 많았다. “노화가 빨리 온다”, “무릎이 망가진다”며 아예 달리기를 하지 말라고 말리는 사람도 있었다.


내가 아는 상식과 달랐다. 적당한 달리기는 무릎 건강에 도움이 된다는 연구가 많았고, 실제로 무릎 때문에 병원을 찾는 사람은 달리는 사람보다 달리지 않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한다. 적당한 달리기라면 노화나 무릎 걱정은 크게 안 해도 된다.


체력이 좋아지니까 복직해서 전과 같은 일을 해도 덜 피곤했다. 예전보다 더 많은 일을 해냈고, 생각지도 못했던 아이디어까지 내기 시작했다. 업무에 지장이 될까 싶어 처음에는 퇴근 후에 짧은 거리를 조심스럽게 달렸는데, 거리를 늘려도 다음 날 일하는 데 별 지장이 없었다.


지장은커녕 일이 더 잘됐다. 달리다 보면 새로운 생각이 떠오르기도 하고, 고민거리였던 일도 고민거리가 아니게 되는 일도 허다했다. 스트레스를 풀기에도 좋았다.


달리기가 늘 즐거운 건 아니지만 적어도 일할 때만큼은 생각을 정리하고 결정하는데 도움이 돼서 이제는 달리지 않을 수가 없다.


* 다음화는 '아빠는 왜 빨간 옷만 입어'에 대해서 이야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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