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에 기대지 않고 홀로 설 수 있을까

EP 02

by 김윤진

올해로 일을 시작한 지 딱 10년이 되었습니다. 짧지 않은 시간입니다. 신입 시절의 서툼은 사라졌고, 이제는 일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압니다. 조직의 언어를 읽고, 사람을 다루고, 문제를 해결하는 나름의 감각도 생겼습니다. 누가 봐도 '제 몫을 하는' 직장인이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경력이 쌓일수록 한 가지 질문이 더 선명해졌습니다.

"앞으로 15년, 20년을 이렇게 계속할 수 있을까?"


회사 안에서는 굳이 내가 누구인지 설명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름 앞에 붙은 회사명, 직함, 직책이 나를 든든하게 받쳐주니까요. "무슨 일 하세요?"라는 물음에 명함 한 장이면 충분했던 삶이었습니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 뒤에 꼬리표 같은 질문이 따라붙습니다. "이 명함이 사라지면, 나는 무엇으로 나를 증명할 수 있을까?"


요즘 이 불안이 유독 자주 찾아오는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바로 기술의 속도 때문입니다. 누구나 AI로 보고서를 쓰고, 데이터를 분석하고, 이미지를 만듭니다. 저 역시 반나절 걸리던 일을 한 시간 만에 끝내며 감탄합니다. 하지만 편리함 뒤에는 서늘한 공포가 따라옵니다. 내가 하던 일을 이제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기도 하니까요. 10년의 경험이 다음 10년을 보장해주지 않는 시대. 어쩌면 과거의 경험이 짐이 될 수도 있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생각까지도 듭니다.


아이러니한 건, 성실하게 일해온 사람일수록 이 질문 앞에서 더 크게 흔들린다는 점입니다. 저도 그랬습니다. 이력서를 다시 쓰려다 막막함에 멈춰 섰던 기억이 납니다. 지난 10년간 채용을 설계하고, 수백 명의 면접을 봤습니다. 맨땅에서 인사 시스템을 세우고 복잡한 이해관계를 풀어냈습니다. 분명 치열하게 일해왔습니다.


그런데 이 모든 '맥락'을 걷어내고 나니, 이력서에 남길 말이 마땅치 않았습니다. "인사 담당자"라고 쓰기엔 제가 한 고민의 깊이가 담기지 않고, 구구절절 풀자니 시장의 언어와 맞지 않았습니다. 회사 안에서는 분명 1인분 이상의 몫을 해왔는데, 밖으로 꺼내 놓는 순간 설명하기 어려운 사람이 되어버린 느낌이었습니다.


우리는 회사가 원하는 인재로 성장하기 위해 애씁니다. 조직의 맥락을 이해하고, 그 조직만의 고유한 일하는 방식과 소통 방식을 익힙니다. 그것은 분명 훌륭한 능력이지만, 동시에 함정이기도 합니다. '이 조직에 최적화된 사람'이 될수록, '어디서든 통하는 야생성'은 무뎌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회사를 떠난다는 상상은, 매달 들어오던 안정된 급여가 사라진다는 현실적인 두려움보다도 ‘나’라는 존재가 흐릿해지는 공포에 더 가까웠습니다. 저는 지금 앞선 질문들에 답을 적어내려가는 중입니다. 회사라는 거대한 울타리를 벗어나, 온전히 제 이름 석 자로 어디까지 할 수 있는지 확인해보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1인 기업이라는 야생으로 나왔고, 매일매일 저의 쓸모를 증명하며 지내고 있습니다. 여전히 불안하고, 때로는 맨몸으로 서 있는 기분에 움츠러들지만, 덕분에 제가 가진 무기가 무엇인지 더 선명하게 보게 됩니다.


이 글이 누군가에게 정답이 될 수는 없을 겁니다. 다만, 저와 같은 불안을 안고 있는 분들에게 작은 위로와 자극이 되기를 바랍니다. 이 질문을 놓지 않는다면, 우리는 분명 어제보다 더 단단해질 테니까요. 혹시 회사 안에서 길을 잃은 기분이 든다면, 우리 이 불편한 질문을 함께 붙들어 보았으면 좋겠습니다.


다음 글에서는 어떤 변화와 환경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회사 밖에서도 스스로를 증명할 수 있는 사람, 좀 더 날 것으로 말하자면 어디에 놓여도 쓰임을 잃지 않는 사람이 되기 위하여, 조직 안에서부터 반드시 해봐야 할 연습들에 대해 이야기 해보려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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