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P 03
회사를 나와보니 문득 드는 생각이 있습니다. “세상을 보는 '눈'이 달랐더라면...”
후회라기보다, 제 삶을 둘러싼 게임의 룰이 바뀐 뒤에야 찾아온 뒤늦은 깨달음에 가깝습니다. 조직 안에 있을 때는 너무나 당연했던 것들이, 울타리 밖에서는 전혀 다른 의미로 다가왔기 때문입니다.
밖으로 나와 사람들을 만나고, 제 자신을 돌아보며 뼈저리게 느낀 점이 하나 있습니다. 많은 직장인이 현재 자신의 위치와 경쟁력을 생각보다 정확히 알지 못한 채 일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열심히 일해왔고, 의미 있는 경험도 분명 쌓았습니다. 그런데 막상 "그래서 지금 시장 안에서 어느 정도에 위치해있는가"하는 질문 앞에서는 턱 하고 말문이 막힙니다.
주변을 둘러보니 자신의 위치를 모르는 이 '인식의 공백'에는 공통된 이유가 있었습니다.
첫째, 나를 증명하는 방식이 여전히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5년 전, 10년 전에는 어느 회사에 다니는지가 중요했고, 어떤 직함을 달고 있는지가 곧 실력이었으며, 조직 안에서의 평판이 경쟁력의 전부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일의 방식도, 기술도, 시장의 속도도 달라졌습니다. 환경은 급변했는데, 정작 나를 바라보는 눈은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는 것입니다.
둘째, '나'는 사라지고 '회사'만 남았습니다. 이는 개인의 부족함보다는, 조직 안에서 일한 사람에게 나타나는 자연스러운 현상에 가깝습니다. 회사에 오래 몸 담을 수록 "우리 팀이 이만큼 했습니다", "우리 회사가 이번에 런칭했습니다."와 같이 조직 중심으로 사고하고 말하다 보니, 정작 '내가 만든 차이와 엣지'를 설명할 언어를 잃어버린 것입니다.
이 상태로는 기회가 와도 잡기 어렵습니다. '일 잘하는 사람'인 건 분명한데,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 설명할 수 없는 애매한 딜레마에 빠지기 때문입니다.
이 딜레마를 돌파하려면 회사 안에서부터 '관점'을 바꿔야 합니다. 거창한 준비가 필요한 게 아닙니다. 평소 스스로에게 던지던 질문 두 가지만 바꾸면 됩니다.
1. "회사를 떼어내도 이 일을 해낼 수 있는가?" (맥락 걷어내기)
지금까지는 "우리 회사가 얼마나 대단한 일을 하고 있나?"에 취해 있었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이제는 냉정하게 뺄셈을 해봐야 합니다. 내가 낸 성과에서 '회사의 간판(브랜드)'을 빼고, '회사의 돈(예산)'과 '시스템(동료와 장비)'을 전부 빼보세요. 그랬을 때 0이 남는다면, 그건 내 실력이 아니라 회사의 실력이었습니다. 모든 배경을 걷어내고, 맨몸의 나에게 남은 알맹이, 그것만이 야생에서 나를 지켜줄 진짜 실력입니다.
2. "맨손으로 다시 시작해도 다시 똑같은 성과를 낼 수 있는가?" (과정 증명하기)
어쩌다 한 번 터진 대박은 실력이 아닙니다. 시장이 궁금해하는 건 '재현 가능성'입니다. 낯선 환경, 부족한 자원 속에서도 당신은 그 성공을 다시 만들어낼 수 있습니까? 어떻게 했는지 과정을 설명할 수 없다면, 그 성과는 다시 돌아오지 않습니다. 치열한 복기를 통해 성공의 공식을 가진 사람만이, 운을 실력으로 바꿀 수 있습니다.
이 두 가지 질문을 통과했다면, 이제 우리는 자연스럽게 '나의 업(業)'을 정의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나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는 사람인가?”
어렵게 생각하지 않아도 됩니다. 업이라는 것은 거창한 비전이 아니라, 나를 명쾌하게 요약하는 '한 줄 소개'면 충분합니다. 단서는 이미 당신 안에 있습니다.
내가 반복해서 해결해 온 문제의 본질은 무엇인가?
사람들이 나에게 자주 요청하는 도움은 무엇인가?
남들과 다르게 접근했던 나만의 해결 방식은 무엇인가?
이 세 가지를 조합해 당신만의 한 줄을 만들어보고, 입 밖으로 꺼내보세요. 어색함을 견디며 다듬어가는 그 과정 자체가, 당신의 관점이 업데이트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회사는 단순히 월급을 받는 곳이 아닙니다. 새로운 관점을 가장 안전하게 연습할 수 있는 훈련소입니다. 회사를 떠날지 말지 고민하기 전에, 일을 대하는 태도부터 바꿔보세요. 그 변화된 관점은 당신이 어디에 있든, 당신을 가장 단단하게 지켜줄 무기가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