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냥, 제발, 아무거나

by 겨울햇살

집 근처 쇼핑몰에서 열린 송길영 작가의 '시대예보:경량문명의 탄생' 북토크에 다녀왔다. 지금도 내 머릿속에는 온통 "제발, 아무거나 좀 하세요."라고 절실하게 외쳤던 작가의 말이 맴돈다. '지난번에는 그냥 하지 말래더니.'


아무거나 하라는 뜻은 생각하느라 망설이지 말고 일단 시도를 하라는 것이었다. 설사 실패한다 하더라도 그런 데이터들이 쌓여 서사가 되고 퍼스널 브랜드가 만들어진다고 한다. 데이터로 자신의 존재를 증명해야 하는 시대가 왔다.


작가는 시대를 예보하며 데이터 기록이 없는 사람을 경계했다. 그건 바로 나였다. SNS를 안 하니까. 그 시작은 시간을 거슬러 '싸이월드'가 나왔을 때부터이다. 친구들이 다 해도 난 '굳이 왜 나를 공개해야 하나'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그 뒤로 SNS가 계속 발전해 갈 줄이야.


요즘 쿠*이나 통신사들의 개인정보유출에 관한 뉴스를 볼 때면, 이미 내 정보는 다 털린 것 같다. 이런 마당에 나 혼자 꽁꽁 싸매고 사는 게 무슨 의미인가.


학교 졸업 후, 조직 생활을 한 경험이 별로 없어서 '조직의 이름표' 같은 것은 없었다. 서른 즈음 시작했던 옷 장사도 집에서 인터넷 쇼핑몰을 했기 때문에 나는 항상 '집에서 노는 사람'이었다. 새벽까지 일해도 주위 사람들은 나를 아무것도 안 하는 사람으로 여겼다. 나는 원래 '핵개인'으로 살아왔는데, 데이터를 제시하지 않아서 먼지 같은 존재였던 것 같다. 쇼핑몰 규모가 작다는 생각이 들어 SNS 홍보도 하지 않았다.


국세청에서 세무조사 고지가 날아오고, 거기 찍혀 있는 숫자를 보고 나서야, 아버지는 내가 사업하고 있다는 것을 인지하셨다. 숫자야 말로 사업이 존재했었다는 것을 보여준 객관적인 데이터였다.


그래, 이제 뭐라도 데이터를 만들어 내가 존재했다는 흔적을 남겨봐야겠다. 먼지가 될 것인가, 데이터가 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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