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at's it.(이게 다야)
20살 여름방학 때, 나는 친구와 함께 집 근처 대학교에서 개설해 놓은 영어회화 강의를 등록했다. 그때나 지금이나 외국어로 말하기는 어렵다. 읽기는 가능하다고 해도.
어느 날 강사는 자기소개를 영어로 준비하라며 숙제를 내줬다. A4용지 반 정도 분량의 글을 암기해서 발표해야 했다. 여러 사람들 앞에 나와서 말을 해야 하는데, 그것은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 중에 하나다. 대개 그런 상황에서 나는 머릿속이 하얗게 변해 버린다.
내 이름, 내 나이, 내가 입학한 학교와 학부 등을 다른 사람 앞에서 말했던가? 기억이 나지를 않는다. 앞에 서서 얘기한다는 것 자체가 공포였다.
오로지 기억하는 것은, 바로 "That's it.(이게 다야)"라는 것이었는데, 나는 앞 사람이 자리로 들어가기 전에 한 말을 똑같이 따라 했다. 그 말은 발표를 끝낸다는 말이었으니까. 나는 빨리 사라지고 싶었다.
그런데 가만히 있었던 사람들이 그 한마디에만 유일하게 반응했다. 그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동의한다는 듯이. 이 지점에서 나는 갑자기 발끈했다. 사람들의 모습이 하나하나 눈에 들어왔다.
그러던 중에 강사는 나의 손톱을 가리키며 색깔에 대해서 말했다. "은색이라 특이하네요." 나는 손가락을 오므렸다. 그러자 강사는 내가 '샤이'하다고 했다. 나는 왜 그때 손톱 열 개를 은색으로 칠하고 다녔을까. 일종의 세기말 감성인가? 이렇게 하여 나는 '은색 손톱을 칠한 그게 다인 사람'으로 종결되었다.
'아니, 나는 나를 그런 식으로 소개하기 싫다고.'
나는 나를 그런 식으로 소개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어떻게 말해야 할지도 몰랐다. 영어로 말하는 어려움 보다 내가 나를 잘 모른다는 점이 문제였다. 아니면 표현 방법을 몰랐던 것일까.
시간이 흘러 나이를 먹은 후, 프랑스어라는 다른 외국어를 배우기 시작했다. 예전과는 달리 외국어를 익히기보다는 내 삶에 대한 많은 생각이 떠올랐다. 같은 단어, 같은 문장을 반복하다 보니 생각이라는 것을 깊게 할 수 있었다. 그때 제대로 말하지 못했던 나를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내가 어떤 사람이었던가. 프랑스어는 내게 내면의 소통 창구이자 나를 세상과 연결하는 매개체가 되어 주었다.
나는 종종 우주에 '두둥' 떠있고, 지구를 바라보는 꿈을 꾼다. 그럴 때 마음이 가장 편하다. 이제 나라는 우주인은 프랑스어인 우주를 통해 내 삶인 지구를 바라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