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나의 좌표는 프랑스어
프랑스어를 처음 배울 때 추천하는 노래로서, 'les p'tites jolies choses(렙 띠조리 쇼)'가 있다. '작고 예쁜 것들'이라는 뜻이다. 프랑스의 '아이유'라고 하는 가수 '조이스 조나단(Joyce Jonathan)'의 노래이다.
노래는 다음과 같이 'les p'tites jolies choses'로 시작한다.
les p'tites jolies choses(렙 띠조리 쇼)
-작고 예쁜 것들은
ça met dans le gris juste une touche de rose(싸메 던르 그히 쥐스뛴 투시드 호즈)
-회색에 핑크빛 터치를 더하지
......
난 '레 쁘띠 졸리 쇼'라는 발음을 기대하며 들었다. 내가 '쁘띠'라는 단어를 많이 들어봤으니까. 하지만 이럴 수가. '쁘띠'가 나오지 않았다. 글자로는 눈에 보이는데, 들을 수가 없다니. 그냥 '띠조리 쇼'만 들렸다.
'쁘띠'는 어디로 갔을까?
'작은'이라는 뜻의 'petit'의 발음은 '쁘띠'이다. 그 '쁘띠'는 갈라졌다. '쁘(p)'는 앞 단어 '레(les)'와 붙어 '렙'이되고, '띠(tites)'는 뒷 단어 '졸리(jolies)'와 붙어 '띠조리'가 되었다. 그래서 '렙 띠조리 쇼'가 된다. 이런 것도 연음인가? 왜냐하면 붙여서 발음하니까.
프랑스어에는 '연음'이라는 것이 있다. '연음'이란 앞 단어의 마지막 자음이 다음 단어의 첫 모음과 결합하여 나는 소리이다. 예를 들어 '아이들'이란 뜻의 'les enfants(레정펑)'처럼 말이다.
그런데 '띠조리'는 자음과 모음의 결합도 아닌데 왜 붙여서 발음하는지, 어떻게 된 건지는 아직도 모르겠다. 설마 나만 이렇게 들리는 것은 아니겠지. 마치 이건 우리말 '아주 놀라워'를 '아 주놀 라워'라고 읽는 느낌이랄까?
영어를 배울 땐 생각 없이 받아들였는데, 왜 프랑스어는 자꾸 의심하려 드는 걸까? '인생은 멀리서 보면 희극, 가까이서 보면 비극'이라는 찰리 채플린 말처럼, 이 또한 아름다운 프랑스어를 완성하기 위한 고통일 텐데 말이다.
책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을 보면, '진선미의 세계'가 나온다. 진은 진실과 법, 선은 선악이나 도덕, 미는 아름다움의 세계인데, 영역에 따라 사고방식이 달라야 했다. 그래서 신이 물리적 기준으로는 없지만, 윤리적으로는 존재하는 것이다. 프랑스어는 또 하나의 외국어 영역이다. 한국어나 영어의 기준으로 프랑스어를 설명할 수 없겠지.
<출처: 이어령의 마지막 수업. 김지수 지음. 열림원. 103p,106p,135~136p>
'진선미'는 철학자 칸트의 '순수이성비판', '실천이성비판', '판단이성비판'이라고도 한다. 나는 내가 살고 있는 지금 시대를 '진'의 시대, 그러니까 '법'의 시대라고 조금 이해했었다. 이 세상 가운데 법의 영역에 나의 좌표를 찍은 후 뉴스를 보면, 왜 그 뉴스가 이슈가 되는지 알 수 있다.
'열정, 그게 뭔가요?'
가령, 이전에는 노동의 열정을 당연시했었는데, 요즘은 그 열정을 '열정페이'라고 말하고 부정적으로 여긴다. 노동법에 나오는 시간만큼만 일하는 것이 맞는 것이다. 더 일하면 '이상한 사람'이 된다. 선의 영역인 '노동의 열정'은 법의 영역인 '노동법'과 만나면 충돌하여 부정적인 것이 된다. 그래서 당연했던 '열정'이라는 것이 이슈가 된다.
나는 이렇게라도 이 혼돈스러운 세상을 정리해야만 했다. 철학은 보통 난해하다고 생각하지만, 오히려 난해한 것을 명확하게 해 준다. 시간이 지나면 잊어버리고 나는 다시 헤매기 마련이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