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어는 '시'라고 할 수밖에
어렸을 때 난 <푸코의 추>라는 책을 읽었던 적이 있다. 책의 내용이 재미없지는 않은데, 이상하게 읽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난 '상~하'로 나누어진 책을 '상'을 읽다 말고 '하'로 넘어가서 읽었던 것 같다.
비밀단체나 기사단 등 흥미로운 소재가 많았는데, 그중 기억에 남았던 것은 어떤 컴퓨터 기계에 관한 것이었다. 그 프로그램 안에 글자들을 입력하면 무작위 조합으로 시가 만들어졌다. 마치 아이디어 회의에서 활용하는 '브레인스토밍'과도 같았다. 아무거나 시구 10줄을 쳐서 넣으면, 이 시구를 마구 뒤섞어서 수천 개의 시를 만들어 낸다. 요즘의 AI도 이런 식으로 글을 만들어 줄까.
<출처: 푸코의 추. 움베르크 에코 저. 이윤기 역. 열린 책들. 하권 495p>
'바다의 머리카락'도 그랬다. 전혀 어울리지 않을 것 같은 두 단어 '바다'와 '머리카락'을 무작위로 연결한 것 같은데, 이 조합이 나에게는 시처럼 느껴졌다.
'그러니까 바다의 물결이 머리카락이라는 말이지?'
오묘한 이 느낌은 '내 마음은 호수요'라고 하는 은유법 아닌가. 그리고 그 바다의 머리카락은 바로 '파래'였다.
단어와 단어가 조합되어 새로운 단어를 만든다. 그리고 문장이 되면서 글로 완성된다. 참신함이라는 것은 그 조합의 이질감이 클수록 더 느껴진다.
요즘은 콜라보 마케팅을 적용하여 상품을 만들어 낸다. 이미 상품이 너무 많아 숨이 막힐 정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콜라보된 상품을 볼 때는 눈길이 간다. 새로운 느낌이다. 'collaboration'은 공동 작업, 공동 작업물, 협력을 의미한다. 'collaboration'은 프랑스어와 영어의 철자는 같으나 발음이 조금 다르다. 프랑스어로는 '콜라보하씨옹', 영어로는 '컬래버레이션'이라고 읽는다.
내가 제주도에 갔을 때, '소심한 책방'이라는 독립서점에서 영화 <친절한 금자씨>의 각본을 발견했는데, '작가의 말'에 영화 탄생 배경이 쓰여 있었다. 작가와 감독은 한 방에서 마주 앉아 영화 각본을 공동집필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런데 그 방식이 특이했다. 마치 <푸코의 추>에 나오는 기계 속에서 두 사람의 문장이 조합되어 새로운 문장을 만들어 내는 것 같았다.
"컴퓨터 하드는 공유하면서 모니터와 키보드를 각자 한 벌씩 가졌다. 한 사람이 자판을 두드리면 상대 모니터에도 글자가 쳐진다. 감독이 쓰면 작가가 지우고, 작가가 주어를 쓰면 감독이 목적어를 쓰고"
"내 영화에도 여성성, 아이다운 천진함, 동화적인 아름다움, 낙관주의, 설레임, 감사하는 마음, 쓸데없는 공상 같은 것이 들어 있다면 그건 정서경에게서 비롯한 것이다."
<출처: 친절한 금자씨 각본. 지은이 정서경 박찬욱. 펴낸 곳 그 책. 8~9p>
나의 개인적인 느낌으로 비유하자면, 넘실넘실 부드러운 '바다'는 정서경 작가이고, '머리카락'의 날카롭고 세밀한 느낌은 박찬욱 감독이며, 그 둘의 이질적인 조합으로 '파래'라는 참신한 작품인 영화 <친절한 금자씨>가 나오게 된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두 사람은 성향이 꽤 반대편에 있었을 것 같다.
'프랑스어는 시라고 할 수밖에...'
내가 파래를 너무 많이 사 와서 해치우기로 작정한 어느 날, 파래전을 만들다가 바다의 결이 무엇인지 상상해 봤다. 프랑스어 사전에서 파래를 찾아보니 cheveux(머리카락들) de(~의) mer(바다)였다.
그 후로도, 이런 표현은 종종 발견했는데, 예를 들어, 'le souffle du ciel(르수플르 뒤씨엘)'의 경우 직역하면 '하늘의 입김'이고, 그것은 '바람'이었다. 단어 'souffle'에 바람이라는 뜻도 있지만, 기본적인 의미가 입김이나 숨결이다. 바람은 'vent(븐)'이라고 하는 단어가 따로 있기도 하다.
또, l'arc-en-ciel(라흐컨씨엘)'라는 단어는 직역하면 '하늘에 있는 문'이었는데, 이 문 'arc'는 '아크'라고 읽고 아치형 형태를 말한다. 그래서 상상의 나래를 펼치면 '무지개' 모양의 문이 떠오른다. '무지개'가 '하늘의 문'이었다. 예전에 '라크엔씨엘'이라는 일본 록 밴드가 있었다. 그룹명이 멋지다고 생각했는데, '무지개 밴드'였다.
국내에서는 무지개를 '문'이라기보다는 '다리'로 생각한다. 그래서 강아지나 고양이가 죽었을 때, '무지개 다리'를 건넜다고 한다. 나중에 알게 된 것인데, 지옥에도 문이 있었다. 그것은 다음에 얘기해 보겠다. 하늘에는 천국이 있었고, 땅에는 지옥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