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모든 이야기를 쓴 그 사람
클로이 자오 감독의 영화 <노매드랜드(Nomadland) 2021>는 제시카 브루더의 책 <노매드랜드: 21세기 미국에서 살아남기>를 원작으로 만든 것으로, 떠돌이 생활을 하는 미국 노동자들에 대한 이야기이다. '노매드'는 유목민, 방랑자라는 뜻으로 프랑스어 'nomade'의 발음은 '노마드'이고, 영어 'nomad'는 '노매드'라고 발음한다. 국내에서는 '노마드'라고 발음한다.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은 집 없이 작은 밴을 타고 끊임없이 돌아다닌다. 집이 있었다. 2008년 세계경제붕괴와 함께 집도, 남편도, 일자리도 사라졌다. 길 위에서 먹고, 자고, 단기로 일하면서, 비슷한 노마드들을 만나게 된다. 그들은 모두 무엇인가를 상실한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회복하고자 노력했다.
프랑스어 'réparer(헤빠헤)'는 '수선하다', '수리하다'의 뜻과 함께 '회복하다', '복원하다'의 뜻도 있다. '회복'이라는 것이 고치고, 수리하는 데서 온다는 것을 말해준다. 프랑스 SF 만화가인 장 앙리 가스통 지로(Jean Henri Gaston Giraud, 1938~2012)는 그래픽 노블 <에데나의 세계(Le Monde d'Edena)>에서 수리공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킨다. 프랑스어 'réparateurs(헤빠하텨)'는 수리하는 사람들, 즉 수리공들인데, 작품 내에서 단순히 기계를 고치는 작업보다는 궁극적으로 복원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어 '복원하는 자들'로도 번역되었다.
그의 작품 세계는 리들리 스콧 감독의 영화 <에일리언>과 <블레이드 러너>, 뤽 베송 감독의 <제5원소>,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애니메이션 <바람계곡의 나우시카>, 제임스 캐머런 감독의 <어비스> 등의 작품에 영감을 준 것으로 유명하다. 인간의 고뇌를 만화라는 형식으로 보여주는데, 글은 철학적이고 그림은 이국적이다.
수리공인 스텔(남자주인공)과 아탄(여자주인공)은 낙원의 행성 ‘에데나'에 떨어진다. 기계 문명으로 인공적인 삶을 살아온 두 사람은 거친 자연을 경험하면서 숨어있던 쾌락의 본능이 깨어난다. 그러나 스텔이 본능에 충실하자, 여자 동료였던 아탄은 스텔을 버리고 떠난다. 혼자 남은 스텔은 상실감을 느끼는데, 그것은 어렸을 적 잠수함을 잃어버렸을 때의 상실감과도 맞물린다. 스텔은 공허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길을 떠나고, 그렇게 방랑자의 여정이 시작된다.
그의 여행은 고난과 고통의 연속이다. 아탄은 ‘아버지'라 불리는 지도자가 있는 '둥지' 나라에 끌려갔는데, 그 나라는 극도의 통제 속에 있기 때문에, 아탄을 구하기가 쉽지 않다. 또한 ‘아버지'는 기계를 통해 스텔의 정신을 개조하기까지에 이른다. 스텔은 이 고통의 꿈속에서 깨어나야만 한다.
언젠가 스텔은 수리공으로서 행성을 떠돌며 우주선을 고치는 일을 하다가 잠수함을 되찾는다. 그리고 두 번째 '아버지'를 대면한다. 스텔의 고통을 이해하고 스텔이라는 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아버지'이다.
<출처: Le Monde d'Edena 에데나의 세계. 저자 뫼비우스. 번역 장한라. 출판 교양인. 발행 2021.12.20.>
프로이트는 1920년 70대에 '인격(퍼스낼리티. Personality)'에 대한 새로운 모델을 구축했는데, 인간의 정신을 '이드-자아-초자아'로 구분하여 설명했다. 이 세 가지는 서로 조화를 이루어야 건강한 정신을 만들 수 있고 환경에 만족할 수 있다.
<출처: 프로이트 심리학 해설. 지은이 S. 프로이트. 옮긴이 설영환. 도서출판 선영사. 111P>
에덴에서 스텔이 느낀 쾌락은 '이드(본능)'이고, 방랑자가 된 스텔은 '자아'이며, 둥지 나라의 '아버지'는 '초자아', 그리고 어린 시절의 잃어버린 잠수함은 '트라우마'를 의미한다. 방랑자는 '이드'라는 쾌락과 '초자아'라는 통제 사이를 떠돌며, 고되고 힘든 과정을 거쳐 자신의 트라우마를 극복해 나간다. 결국 인생의 방랑자가 도착하는 곳은...
자신의 집, 그 안으로 들어가 자신의 방, 또 그 한 쪽의 자리, 자신의 책상, 자신의 의자. 그 의자에 앉아 지금까지 벌어졌던 이 모든 여정에 대해 조용하게 글을 쓰고 있는 한 사람. 익숙하면서도 낯선 그 사람, 바로 자기 자신.
마치 지금 내가 의자에 앉아 나의 노트북을 열고 나의 이야기를 조용히 쓰고 있었는데, 순간 이 상황을 인식하게 된 것처럼.
내가 생성한 어느 평행 우주 속에 방랑자가 살고 있고, 나는 주인공에게 다양한 고난과 고통, 기쁨을 만들어준다. 방랑자는 내가 만든 이야기의 길을 계속 걷다가 결국에는 나한테 돌아오면서 깨닫는다. 이 모든 경험은 하나하나 내가 선택한 길이었다는 것을.
영화 <노매드랜드>의 주인공 '펀'은 생존에 필요한 많은 것을 버리며 살고 있었다. 인간의 삶에 생존만 중요한 것은 아니다. '초자아'는 희망을 일깨운다. 초자아 '아버지'는 통제를 하기도 하지만 '둥지'가 되기도 한다. 자신의 울타리가 되어 준다. 노마드들은 길 위에서 고통을 수선하고, 수리하며, 자신의 '잠수함'을 되찾고, 그렇게 자신을 복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