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을 수 없이 가벼운 사랑

한마디 말도 없이 그는 떠나고

by 겨울햇살

테이블 위에 찻잔을 사이에 두고 두 남녀가 마주하고 있다. 커피에 우유를 넣고, 설탕을 넣고, 적막감 속에 시간은 흐르고, 커피를 젓다가, 마침내 남자는 떠나버린다. 한마디 말도 없이. 여자는 그때서야 얼굴을 파묻고 운다. 이별의 순간을 포착했다. 프랑스의 시인 자끄 플레베르(Jacques Prévert)의 시 <아침식사>의 내용이다.


Déjeuner du matin (데쥐네 뒤마땅) - 아침식사


Il a mis le café (일라미 르꺄페)

Dans la tasse (덩라따스)

그는 커피를

찻잔에 담았어


Il a mis le lait (일라미 르레)

Dans la tasse de café (덩라따스 드 캬페)

그는 우유를

커피잔에 넣었지


Il a mis le sucre (일라미 르수크헤)

Dans le café au lait (덩르 캬페오레)

그는 설탕을

밀크커피에 넣었어


Avec la petite cuiller (아베끄라 쁘띠뜨뀌이에)

Il a tourné (일라 투후니)

작은 스푼으로

그는 저었지


Il a bu le café au lait (일라부르 캬페오레)

Et il a reposé la tasse (에 일라 흐포지라 따스)

그는 밀크 커피를 마셨어

그리고 찻잔을 내려놓았어


Sans me parler (썽므 빠흘레)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Il a allumé (일라 알루미)

Une cigarette (윈씨가헷)

Il a fait des ronds (일라 페데홍)

Avec la fumée (아베끄라 퓌미)

담배에 불을 붙였고

동그란 담배연기를 만들었지


Il a mis les cendres (일라미 레썽드흐)

Dans le cendrier (덩르 썽드히에)

그는 재떨이에

재를 털었어


Sans me parler (썽므 빠흘레)

Sans me regarder (썽므 흐가데)

Il s'est levé (일쎄 레브)

나에게 말도 하지 않고

날 보지도 않고

그는 일어섰어


Il a mis (일라미)

Son chapeau sur sa tête (송샤뽀 쉬사떼)

그는 모자를 썼어


Il a mis (일라미)

Son manteau de pluie (송망토드 플뤼)

그는 비옷을 입었지


Parce qu'il pleuvait (빠스낄 플루베)

비가 내렸기 때문이야


Et il est parti (에 일레빡티)

Sous la pluie (술라 플뤼)

Sans une parole (썽쥔 빠홀)

Sans me regarder (썽므 흐가데)

그리고 그는 사라졌어

빗속으로

한 마디도 하지 않고

날 보지도 않고


Et moi j'ai pris (에뫄 제 프히)

Ma tête dans ma main (마떼뜨덩마망)

그때서야 난

손에 얼굴을 파묻었지


Et j'ai pleuré(에제 플뤄)

그리고 울었어


<출처: 프랑스인이 가장 사랑하는 프랑스 명시 77선. 스카이출판사 2014. 엮은이 편집부. 펴낸이 윤성규. 232-233p. 378-379p>


내가 불면증으로 밤마다 오디오 클립을 듣고 있을 때, 나는 시인 황인찬을 알게 되었다. 그는 시를 섬세하게 해석했고, 목소리가 오디오로 듣기 좋았다. 그가 황인숙의 시 <꿈>에 대해 설명할 때, 이별에 대한 자신의 상처를 들려주었다. 정리되지 못한 이별의 감정은 꿈으로 나타났는데, 현실처럼 생생하여 구분을 못 할 정도였다고 했다. 꿈속에 여자친구가 나타나 한 말은 "미안해"였다고 했다.

<출처: [작가 연재] 황인찬의 읽고 쓰는 삶. 네이버 오디오클립 중 33회. 황인숙의 ''>


'내가 이렇게 작은 것도 못 받나'


나는 깊게 공감되었는데, 비슷한 자각몽을 꾸었기 때문이다. 오랫동안 만난 남자친구와 헤어지게 되었는데, 결과적으로 그 이유는, 내가 생일선물을 받지 못해서였다. '아니, 내가 이렇게 작은 것도 못 받나.' 나는 커피잔을 받고 싶다고 말했는데, 무시당했고, 서운했었다.


어느 날 꿈을 꿨는데, 내가 남자친구 집의 침대에 누워 자고 있었다. 남자친구가 들어와 나를 깨웠다. "일어나 봐. 선물이 오고 있어."라고 하면서 핸드폰으로 배송현황을 보여줬다. '여기 내가 왜 있지?' 나는 너무 놀라서 남자친구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평소보다 정교하고 깔끔하고 군더더기가 없는 것이 꼭 'AI'가 만들어낸 얼굴 같았다. 순간 나는 깨달았다. '나 지금 꿈속이구나.' 선물이 꿈에서 배송될 정도로 나에게 한이 되었었다. 아, 내가 한 사랑이 이토록 구차하다니.


이러한 구차함은 밀란 쿤데라의 소설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에서도 드러난다. 제목은 프랑스어로 'L'insoutenable légèreté de l'être(랑수뜨나블르 리작티들 렛)'이다. 직역하면 존재의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된다. 여기서 '존재'란 사랑이라고 이해했다. 여자는 사랑이라는 의미로 남자를 자신의 곁에 잡아 두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초라해지는 남자를 보고 깨닫는다. 자신의 사랑이란 것이 얼마나 참을 수 없이 가벼웠던가를 말이다.

<출처: 참을 수 없는 존재의 가벼움. 저자 밀란 쿤데라. 번역 이재룡. 출판 민음사. 발행 2018.06.20>


한마디 말도 없이 그가 그렇게 떠나고 나서, 한참 후에야 나는 테이블 위에 내 머리를 묻었다. 커피잔 하나 만이 우리 사이에 남은 것 같았다. '그래, 만남과 헤어짐을 반복했었지.' 내가 했던 사랑이 가벼운 것일까, 아니면 나라는 사람이 가벼운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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