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인생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고등학교 2학년 때 아버지는 나에게 대학교 등록금을 줄 수 없으니 앞으로는 알아서 살라고 하셨다. 어차피 공부에 재능이 없던 나는 졸업 후 바로 입대를 했다. 어린 나이에 군대를 제대하고 갈 곳이 없어진 나에게 군 동기였던 진수 형은 같이 살자고 제안했다. 처음에는 좋았다. 부천 상동에 있는 진수 형네 집은 옥탑방이었다. 다행히 집 주변이 번화가라 일거리가 많아 바로 일을 시작했다. 진수 형은 집 근처 홈플러스에서 일했고 나는 배달 일을 시작했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진수 형과 사이가 나빠졌다. 그 이유는 홈플러스에서 일하는 진수 형보다 내가 돈을 더 많이 벌었기 때문이다. 진수 형은 내가 월급을 얼마 받는지 알게 된 이후로 나에게 방값을 내라고 했다. 처음에는 월세의 반을 내라고 했다가 자신이 보증금을 전부 냈으니 월세를 더 내라고 했다. 나는 진수 형에게 홈플러스를 그만두고 같이 배달일을 하자고 했지만, 진수 형은 오토바이 타는 것도 무섭고 에어컨과 히터가 나오는 실내에서 일하는 것이 좋다며 거절했다. 그러던 어느 날, 같이 족발에 소주를 시켜 먹다가 내가 말실수를 했다. 형, 이것저것 다 따지고 어떻게 돈을 벌어? 쪽팔린 거 힘든 거 다 따지면 돈 못 벌어. 평생 그러고 살면 여기 못 벗어나. 나중에 형 자식도 이런 데서 살게 할 거야? 그 말이 끝나자 진수 형은 마시던 소주를 내 얼굴에 뿌렸다. 문득 아버지가 생각났었다. 우리 아버지도 뭐가 이러니 저러니 하며 힘든 일을 살살 피해 다녔다. 그래서 결국 내가 이렇게 된 거 아닌가. 진수 형은 그날부터 나에게 말을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그래서 나는 집을 따로 얻어 나왔다.
진짜 내 인생은 왜 이런지 모르겠다.
상동역에서 한 참 떨어져 가격이 싼 다세대 원룸을 하나 얻었다. 처음에는 진수 형 집에서 나온 것이 후련했다. 괜히 눈치 볼 필요도 없었고 진수 형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잠을 설칠 일도 없었다. 내가 얻은 집은 보증금이 적은 대신 월세가 비쌌다. 그래서 그만큼 돈을 더 벌어야 했다. 평소보다 배달을 열심히 하는 수밖에 없었다. 배달을 열심히 한다는 게 무슨 뜻이냐. 한 개 배달할 시간에 두세 개를 해야 한다는 뜻이다. 그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 신호 위반과 과속, 칼치기를 할 수밖에 없다는 뜻이다. 그러면 어떻게 되느냐. 결국, 교통사고가 나게 되고, 내가 그동안 모아놓았던 돈을 오토바이 수리비와 병원비로 다 날린 다음 집구석에 처박혀 있게 된다는 뜻이다. 그래서 지금 내가 이 시간에 방구석에서 뒹굴뒹굴하며 핸드폰으로 유튜브나 트위치 방송을 보고 있는 것이다.
다친 다리는 진작에 다 나았다.
그런데 사람이란 게 참 그렇다. 군대 있을 때도 빠릿빠릿하게 일 잘했고, 제대 후에도 쉬지 않고 일하며 돈을 벌었는데, 사고가 난 후 두어 달 집에 누워있다가 보니까 몸이 다 나아도 일하기가 싫었다. 모아놓은 돈은 다 떨어져 가고, 밖에 나가지도 않은 채 배달 음식에 술만 마셨더니 살도 한 7㎏ 정도 쪘다. 같이 일하던 형들과 실장님도 연락이 없었다. 당연히 진수 형과는 집을 나오면서 연락을 끊었다. 하루에 말을 한마디도 안 하는 날이 허다했다. 유튜브가 없었다면 진작 자살했을 것이다. 아니! 어쩌면 유튜브가 일을 다시 시작하지 못하게 내 발목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닐까? 그나저나 오늘은 뭘 먹지? 그런 생각을 하며 담배를 피우러 밖으로 나갔다. 킁킁. 마라탕? 아니나 다를까 배달 직원이 비닐봉지에 든 음식을 들고 계단을 올라왔다. 저거 마라탕이다! 배달 직원은 내 옆집 벨을 누르고 문 옆에 음식을 놔둔 후 내려가려다 나랑 눈이 마주쳤다.
어? 재준아.
배달하던 사람은 진수 형이었다. 나는 진수 형과 1층으로 내려가서 담배를 피웠다. 진수 형은 내가 나가고 난 뒤 많은 반성을 했다고 했다. 딱 까놓고 얘기해서 네 말이 틀린 건 하나 없었어. 처음에는 너한테 화가 났었는데, 곰곰이 생각해 보니 너한테 화가 난 게 아니라 나한테 화가 난 거더라고. 재준이도 그렇게 열심히 사는데 나는 왜 이러고 사는 거야. 그래서 네 말 듣고 배달 일 시작한 거야. 내가 과민대장증후군이잖아. 그래서 배달하다가 갑자기 화장실 가고 싶으면 어떡하지? 그런 걱정이 가장 많았거든. 그런데 일하다 보니까 어떤 건물 어디에 화장실 있는지 다 알게 돼서 마음 편하게 일하게 되더라고. 일이라는 게 처음에는 겁나지만, 막상 하고 보면 진짜 아무것도 아니더라. 한 번 더 딱 까놓고 얘기하자면, 재준이 이 새끼도 하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시작한 거야. 그런데 너는 어디 업체에서 일하냐? 생각해 보니 나 배달 시작한 지 두 달 됐는데 그동안 한 번도 못 봤네? 진수 형 말에 뭐라고 얼버무려야 하나 싶은 차에 진수 형에게 콜이 들어왔다. 진수 형은 쉬는 날 전화해서 술이나 한잔하자며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