옆집에 여캠이 산다 02

by 전우진

빠밤~


오늘 의상 완전 쩐다. 누나 나 죽어. 나는 핸드폰으로 핫팬츠를 입고 화면을 삼분할 한 뒤 춤을 추는 여캠 방송을 보다가 누군가 스트리머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뭐야? 만 원? 저 말 한마디 하려고 만 원을 날려? 진짜 기가 막힐 노릇이네. 그런데 알고 보니 만 원은 우스운 거였다. 네이버로 찾아보니 여성 스트리머가 춤만 추면 하루에 후원금으로 평균 50만 원은 받는다고 했다. 나는 비 오는 날 비 맞아 가며, 눈 오는 날 눈 맞아 가며, 뙤약볕에 다 타 가며 온종일 배달하면 많아야 10만 원 겨우 넘는데. 그것도 오토바이 유지비로 빠지고 뭐로 빠지고. 이렇게 사고라도 한 번 나면 모아놓은 돈 다 날아가고. 나도 여자로 태어났으면 캠 켜놓고 춤추면서 쉽게 돈 벌 텐데. 나는 박탈감에 핸드폰을 껐다.


.......


나는 몇 분을 못 견디고 다시 핸드폰을 켰다. 막상 핸드폰을 끄니 할 일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새를 못 참고 또 인터넷 방송을 뒤졌다. 게임은 직접 해야지. 왜 다른 사람이 게임하는 걸 보고 있어? 여캠 방송은 왜 들어가는 거야? 그렇다고 스트리머가 한 번 만나줘? 이해가 안 가네. 저 사람은 별것도 아닌 걸 갖고 왜 저렇게 소리를 질러대지? 소리 지르는 게 웃겨? 채팅창에 온통 ㅋㅋㅋㅋ네. 그렇게 투덜대던 나는 시청 인원이 거의 없는 신입 스트리머 방을 기웃거렸다. 팔로워가 없는 스트리머의 방을 하꼬라 불렸다. 하꼬방. 지금 내가 사는 원룸이 하꼬방인데. 하꼬방에서 하꼬방을 보다니. 참 나. 그래. 서로 비슷한 것끼리 어울리며 살아야지. 트위치 홈페이지에는 인기 많은 방은 맨 위에, 인기 없는 방은 아래쪽에 있었다. 이런 인터넷 방송조차 업타운, 다운타운이야? 스크롤을 지하 끝까지 내려보니 대낮인데 캠을 켜고 방송하는 중년 남성들이 보였다. 그 방에는 사람들이 한두 명밖에 없었다. 나도 나중에 저렇게 되려나? 아니야. 절대 저렇게 될 일은 없어. 인터넷 방송 보는 것도 이해 안 되는데 스트리머는 말도 안 되지. 그렇게 하꼬방 관광을 하다가 문뜩 눈에 띄는 방을 발견했다.


곽뽀숑?


유일하게 시청자가 아무도 없는 여자 스트리머였다. 노란색 후드티를 입고 멀뚱멀뚱 카메라만 보고 있었다. 나는 곽뽀숑의 방으로 들어갔다. 얼굴은 하얗고 귀여웠으나 알 듯 모를듯한 우울함이 보였다. 잠깐? 후드티가 꽉 찬 거 보니까 가슴은 큰 것 같은데? 나는 핸드폰 속의 곽뽀숑의 얼굴을 잠시 바라보다가 무언가에 홀린 듯 채팅을 쳤다. 나는 지금까지 방송을 보면서 채팅을 쳐 본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어차피 채팅창은 ㅋㅋㅋㅋㅋㅋㅋㅋ의 향연이라 스트리머들은 잘 읽지도 않는데 뭐하러 채팅하냐는 생각이었다. 그런데 지금 이 방에는 곽뽀숑과 나밖에 없었다. 곽뽀숑은 외로워 보였고, 나는 심심했고, 곽뽀숑의 가슴은..... 어쨌거나 나는 뜬금없이 식사하셨어요? 라고 물었다. 곽뽀숑의 우울한 표정에 순간적으로 미소가 번졌다. 네. 방금 점심 먹었어요. 쭌쭌님은 식사하셨어요? 곽뽀숑은 카메라를 보며 마이크에다 대고 말을 했다.


어어? 이게 뭐지?


느낌이 이상했다. 마치 커피숍에서 옆자리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건 기분이었다. 현실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 현실이라면 내가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 일도 없고, 혹시나 내가 말을 건다고 하더라도 여자가 저렇게 호의적으로 대답할 일도 없었다. 순간 가슴이 두근거렸다. 내가 모르는 여자에게 말을 걸다니. 게다가 그 여자가 웃으며 내 말에 대답해 주다니. 이게 얼마 만에 해 보는 대화지? 저는 아직 점심 안 먹었어요,라고 채팅을 했더니 곽뽀숑은 어머 배고프시겠다. 얼른 뭐라도 드세요.라고 말했다. 그러더니 혼자 신나서 떠들기 시작했다. 저는 방금 마라탕을 먹었어요. 처음에는 싫었는데 먹다 보니 이게 중독이 되더라고요. 원래 제가 매운 걸 좋아하긴 해요. 그런데 마라탕은 떡볶이나 닭발같이 매운 게 아니라 좀 얼얼한 맛이 있잖아요. 그래서 처음에는 이게 뭔가 싶었는데. 곽뽀숑이 웃으며 말하기 시작하자 사람들이 하나둘 들어왔다. 그러자 곽뽀숑은 더욱 신나서 떠들었다. 그래 봐야 시청자는 세 명에서 다섯 명 정도였다. 나는 슬슬 배도 고프고 담배도 피우고 싶어서 방을 나가려고 했다. 방을 나가기 전 곽뽀숑을 팔로우했다. 내가 팔로우했다는 알람이 뜨자 곽뽀숑은 활짝 웃으며 어머, 쭌쭌님 빨로우 감사드려요. 하고는 카메라에다가 손가락 하트를 날렸다. 나는 나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점심으로 나도 마라탕이나 시켜 먹을까 하다가 담배도 살 겸 편의점으로 향했다.


어어?


집 밖으로 나와 담배를 피우고 있는데 현관에서 노란 후드티를 입은 여자가 나왔다. 뭐야? 혹시 곽뽀숑 아니야? 나는 슬쩍 그 여자의 얼굴을 힐끗 보았다. 혹시나 했으나 역시나였다. 곽뽀숑이 아니었다. 요새 노란 후드티가 유행인가? 담배를 다 피운 나는 편의점으로 향했다. 편의점에는 아까 보았던 노란 후드티가 꼬북칩 초코 추로스 맛과 데자와 밀크티를 들고 계산대에 서 있었다. 나는 육개장 사발면 하나에 참치마요 삼각김밥, 레스비 캔커피를 들고 계산을 하기 위해 노란 후드티 뒤에 섰다. 점원이 노란 후드티에게 봉투 필요하세요?라고 물었고, 노란 후드티가 아니요. 그냥 들고 갈게요,라고 말하는 순간 나는 눈치챘다.


얘 곽뽀숑이잖아?


얼굴이 전혀 달랐다. 화면으로 보던 곽뽀숑은 귀엽고 뽀얀 느낌이었다면, 실제 곽뽀숑은 지하철 맞은편에 앉아있어도 눈길 한 번 안 갈 것 같은 평범한 얼굴이었다. 다 캠빨이었구나. 그럼 그렇지. 실제로 보니 몸매도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후드티를 입고 방송을 하는 건가? 하긴 저런 애가 인터넷 방송을 하는데 누가 보러 오겠어. 아니지. 화장하고 조명 켜고 필터까지 씌우면 완전 다른 사람이 되잖아. 요새 틱톡이나 유튜브 쇼츠 보면 몸매 보정하는 앱도 많이 쓰던데. 그런 거 쓰면 다 이뻐지잖아. 곽뽀숑이 편의점을 나간 뒤 나도 계산을 끝내고 집으로 향했다. 본의 아니게 곽뽀숑 뒤를 따라가게 되었다. 일부러 쫓아간 게 아니라 같은 다세대에 살기 때문에 따라간 것이다. 그런데 곽뽀숑이 사람 기분 나쁘게 뒤를 힐끗 돌아보더니 빠른 걸음으로 걷기 시작했다. 뭐야? 짜증 나게. 내가 자기를 따라간다고 생각하나? 방금 나도 편의점에서 컵라면 산 거 봤잖아. 자기 외모를 생각해야지. 쟤도 혹시 현실의 외모가 자기 외모가 아니라 화면 속의 외모가 자신의 외모라고 착각하는 거 아냐? 곽뽀숑은 나를 몇 번 더 힐끔거리더니 골목을 꺾어 큰길 쪽으로 나갔다. 얼씨구? 왜 그쪽으로 가? 내가 집까지 따라가는 줄 알고 괜히 다른 쪽으로 가는 거야? 와. 저거 웃기는 애네. 나는 담배가 피우고 싶어 져서 주머니를 뒤지다가 편의점에서 담배를 안 사 온 걸 깨달았다. 아아. 짜증 나. 나는 다시 편의점으로 발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