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산 암마이봉과 탑사
벚꽃산행을 꿈꿨지만 현실은 우중산행이 되었다. 전북 진안에 있는 마이산은 탑사와 벚꽃으로 유명한 곳이다. 분홍빛으로 물든 산을 기대하며 주말 안내버스 스케줄과 기상청 사이트를 번갈아가며 확인했는데 꼭 주말만 되면 비소식이 있었다. 그렇게 날짜를 미루며 살피다가 최종적으로 일요일에 출발하는 안내버스를 예약했는데 결국 마음을 비우게 되었다. 수요일에 마이산 벚꽃이 절정이라고 올라온 사진을 보니 비가 안 내리더라도 일요일은 늦었다는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마이산은 ‘말의 귀를 닮은 2개의 봉우리가 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각 봉우리는 암마이봉, 숫마이봉이라고 부르는데 현재 암마이봉만 올라갈 수 있다. 전라북도 도립공원으로 100대 명산에 해당되며 탑사, 탑영제가 있어서 일반 관광객도 많이 찾는 명소다. 그래서인지 주차장에 차가 어마무시했고, 산 입구 주변에는 음식점이 많았다. 더덕구이, 대왕꽈배기, 유과 강정 등 온갖 음식 냄새가 코를 자극했다. 한 가게에서 시식용으로 갓 만든 유과 강정을 줘서 받아먹었는데 너무 맛있어서 충동구매할 뻔했다.
올라가는 길은 처음엔 곰탕이었지만, 비가 오래 내리지 않은 덕분에 점점 시야가 트였다. 마이산은 바위 자체가 독특하고 멋있지만 그만큼 가파른 구간들이 있다. 난간이 설치되어 있어서 오르내리는 건 수월했으나 비 때문에 조금 더 주의를 기울였다. 종종 조심해야 하는 구간에서 경치가 끝내주는 경우가 있다. 주변 경관에 현혹되어 부주의하면 위험해지지만, 안전을 위해 무조건 배제하거나 위험한 면만 보면 좋은 순간을 놓치기 마련이다. 발을 신경 쓰면서도 슬쩍슬쩍 주변을 감상하며 이동했다.
암마이봉으로 향하는 길은 2가지였다. 하나는 짧고 쉬운 길, 하나는 조금 더 길고 험한 길. 둘이 겨우 500m 차이였고, 안내버스는 산행 시간을 넉넉하게 주기 때문에 후자를 택했다. 가파른 구간은 계단길이라 어렵지 않았고, 마이산 특유의 바위 모습을 살펴보기 좋았다.
암마이봉으로 향하는 길보다 암마이봉에 올라가는 길이 문제였다. 초반부터 줄 서서 천천히 가길래 처음에는 단체 산악회에서 온 사람들이 느릿느릿 가는 줄 알았으나, 앞쪽까지 사람이 끊기지 않고 그대로 정상까지 쭉 이어지는 줄이었다. 길이 좁고 가파른데 올라가는 길과 내려가는 길이 따로 마련되어 있지 않아서 오르내리는 사람들로 정신없어서 정체가 생겼던 것이다.
정상석에서 사진을 찍고 은수사 방향으로 내려갔다. 은수사라는 이름은 이성계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은처럼 맑다고 한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겨울엔 역고드름이 자주 보인다고 하는데 봄이라 볼 수 없었다. 대신 주변에 피어있는 여러 꽃들을 감상했다.
마이산에서 가장 유명한 탑사는 들어가기 위해 입장료를 내야 한다. 등산로 입구에서 가도, 은수사에서 내려가도 마찬가지다. 입장료 3천 원을 내고 들어갔는데 인파가 어마무시했다. 우리나라 사람들 사이에서 유명하고, 꽃구경하러 온 사람들까지 있어서 인파가 더 몰린 것 같은데 외국인 관광객도 많이 보였다.
탑사엔 마이산의 시그니처인 ‘마이산탑’이 있다. 조선 후기에 이갑용이라는 사람이 은수사에 머물면서 수도하던 중, 꿈에서 신의 계시를 받고 10년 동안 120여 개의 탑을 쌓았으며, 현재는 80여 개 남아있다고 한다. 사진으로 봤을 땐 독특하다고만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 산세와 어우러져 신비로운 분위기를 풍겼다.
탑사에서 내려가니 탑영제 호수가 나왔다. 마이산에서 벚꽃나무 명소로 유명한 곳이다. 예상대로 벚꽃 잎은 거의 떨어졌고, 잎이 많이 난 상태였다. 그래도 호숫가에서 봄바람에 벚꽃 잎이 휘날리는 모습은 아름다웠다. 벚꽃산행은 달성 못했지만 벚꽃엔딩을 만끽하며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이번 산행에선 유독 나이와 관련된 얘기를 많이 들었다. 종종 앞에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지나가겠습니다 “라고 말하며 제치고 올라가는데, 한 아저씨가 ”잘도 가네. 아이고 부럽다 “고 하셔서 일행이 ”당신도 그런 시절이 있었잖아 “라며 대화하는 게 들렸다. 탑영제에서 지나가던 아줌마에게 사진 찍어달라고 부탁했더니 찍어주며 “(포즈를) 어떻게 하든 다 예뻐. 젊음이 참 좋다”라고 하시기도 했다. 날씨에 영향을 많이 받고, 피어나도 한순간뿐이지만 아름다워서 잊을 수 없는 벚꽃이 젊음과 비슷하게 느껴지기 때문이었을까?
주변에 “우리도 이제 나이 생각해야 해”, “이제 나이 먹어서 이런 건 별로야”와 같은 소리를 입버릇처럼 달고 하는 사람들이 몇몇 있다. 20대 초반부터 지금까지 뭐든 나이와 연관 지으며 저런 식으로 말한다. 농담 식으로 “노인정 가서 그런 말 해봐라. 몰매 맞지 않으면 다행이다”며 넘겼지만 그럴 때마다 내심 기분이 좋지 않았다. 저런 사고방식도 스스로에게 책임감을 주고, 미래를 대비하게 하는 등 장점이 있긴 하다. 하지만 사소한 것 하나하나 그렇게 생각하면 가능성을 차단하고, 사람을 꼰대로 만든다고 생각한다. 내 나이가 어리다고 할 시기는 한참 지났지만 늙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덕분에 아직까지 철이 없지만 나이에 사로잡혀 몸을 사렸다면 지금처럼 여행도, 운동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벚꽃은 1년 지나면 다시 피지만, 젊음은 지나가면 돌아오지 않으니 지금 이 순간을 열심히 누리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