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왕산 진달래 군락지와 드라마 세트장
주말 아침 6-7시쯤 사당역엔 평일 출근시간 못지않게 사람이 많다. 전국의 산으로 가는 일명 ‘안내버스’를 타기 위해 등산객들이 집합하기 때문이다. 새벽 4시에 일어나 아침식사를 하고, 등산 갈 채비를 하는 일은 이제 익숙하다. 다만 뜻하지 않은 변수가 있었는데 사당역에 도착하자마자 갑자기 화장실 이슈(?)가 생겼다. 버스 시간까지 15분 정도 남은 상태여서 빠르게 해결하고 나갔지만 수많은 버스 사이에서 내가 타야 할 버스만 없었다. 당황하고 있던 찰나에 안내버스 측으로부터 공지 연락이 왔다. 도로 사정 때문에 버스가 예정시간보다 10분 이상 늦는다는 내용이었다. 진작 알려줬으면 화장실에서 마음이 더 편했을 텐데...
버스를 타고 향한 곳은 경남 창녕에 있는 화왕산. 진달래와 억새 군락지로 유명한 곳이다. 사실 이번엔 목적지를 정할 때부터 우여곡절이 많았다. 처음에는 계룡산으로 가는 버스를 예약했는데 하필 가는 날에 비, 돌풍 소식이 있었다. 다른 산을 가려고 리스트를 살펴보니 꽃이 덜 핀 곳이 많은 것 같아서 쉽게 결정할 수 없었다. 틈날 때마다 전국 날씨와 개화 상황을 검색하며 고민한 끝에 간신히 결정할 수 있었다.
올라가는 길에 벚나무가 많이 보였지만 이미 꽃은 없고 잎만 있는 상태였다. 벚꽃이 폈을 땐 밑에만 둘러봐도 예쁠 듯했다. 한참 올라가니 ‘환장고개’라고 소개하는 표지판이 나왔습니다. 전국 산에 ‘깔딱고개’는 많지만 환장고개는 흔치 않아서 이름 보고 웃음이 나왔다. 얼마나 환장할 지경인지 경험하고자 올라가는데 확실히 경사가 꽤 가파른 편이었다. 그래도 정비가 잘 되어 있고 구간이 짧기 때문에 어렵진 않았다.
환장고개가 끝나자 화왕산성이 나왔다. 화왕산을 감싸고 있는 테뫼식 산성(산꼭대기를 중심으로 능선을 따라 쌓은 산성)인데 비화가야부터 조선에 이르기까지 창녕의 군사적 중심지로 활용되었고, 창녕 지역의 제의를 담당했던 곳이라고 한다. 산성에서 철제 무기, 용왕이라는 글자가 새겨진 목제 인형, 동물 뼈 등이 발견됐다고 자세한 설명이 쓰여 있었다.
주차장부터 화왕산성 서문까지 딱 56분 걸렸는데 돌아가는 시간까지 여유가 있어서 코스에 없던 곳까지 돌아다녔다. 산성 주변은 억새 군락지라서 진달래가 듬성듬성 있지만 그 나름대로의 멋이 있었다.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사진을 부탁하다가 아저씨 2명과 잠시 동행하게 되었다. 울산에서 오신 분들이었는데 “서울에서 여기까지 올 정도면 영남알프스도 도전하겠네”라고 단번에 알아채셨다. 우연히 만난 사람들과 산이라는 공통의 관심사로 이야기를 이어가는 게 한두 번이 아니지만 매번 유쾌하다. 그렇게 영남알프스 이야기로 수다를 떨다가 가는 길이 달라서 짧은 동행이 끝났다.
진달래 군락지는 드라마 허준을 촬영했던 곳이다. 전날 비가 내리면서 기온이 뚝 떨어지는 바람에 꽃이 많이 떨어졌고, 제대로 피기도 전에 냉해를 입은 꽃도 많았지만 분홍빛으로 물든 산은 예뻤다. 꾸며놓은 군락지도 좋았지만 억새, 진달래, 바위가 어우러진 화왕산 모습 자체가 멋졌다.
바위 위에 분홍빛이 조금씩 피어난 풍경을 감상하며 화왕산 정상으로 이동했다. 정상석에서 인증샷을 찍고 내려가다가 1/3 지점 정도 되었을 때 시계를 보고 멈칫했다. 하산 완료하면 1시간 정도 소요될 것 같은데 문제는 버스 출발하기까지 3시간 반이 남은 상태였다. 기왕 멀리까지 갔는데 내려가서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자니 아쉬워서 다시 정상으로 올라갔다. 주변을 돌아다니던 중 우연히 미소바위를 발견했다. 산에 다니면 온갖 이름이 붙은 바위들이 많다. 그중엔 억지로 쥐어짜 내서 붙인 것 같은 바위도 있지만, 미소바위는 의외로 그럴듯했다. 입꼬리가 올라간 사람의 얼굴 형상을 닮았다는 설명이 딱이었다.
천천히 시간을 보내며 돌아다니다가 다시 하산했다. 주차장이 멀지 않은 지점에서 절이 있어서 잠시 구경했다. 도성암이라는 작은 사찰인데 통도사의 말사(본사의 관리를 받는 작은 절)이었다. 하산이 끝나갈 무렵, 올라갈 땐 보이지 않았던 광경이 눈에 들어왔다. 크고 오래된 고분이 몇 개 보여서 검색해 보니 ‘창녕 송현동 고분군’이었다. 삼국시대 돌무지덧널무덤·앞트기식돌덧널무덤 등이 발굴된 무덤군이라고 한다. 화왕산에 가기로 했을 땐 진달래 군락지 외 다른 정보는 몰랐는데 어쩌다 보니 역사 유적지 관광까지 알차게 한 하루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