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3

첫 번째 신화

by Saa


2


평일에 학원, 주말엔 외식, 방학이면 비행기 타는 집. 근데 다 풍선이었어. 엄마가 혼자 불어넣은.
처음 터진 건 내가 다섯 살 때였지.
어느 날 친척들이 떼로 집에 들이닥쳤어. 다 굳은 표정으로. 조금 뒤에 누나랑 나는 엄마 친구 손에 끌려 중국집에 갔지. 짜장면만 먹고 집에 다시 돌아왔고. 모두가 사라진 다음에.
찜찜한 공기, 못 잊었어.
스물넷쯤이었을 거야. 엄마한테 물었던게. 엄마는 내가 기억할 줄 몰랐는지 당황하더라. 한참 버티다가 말해 줬어.
장 보러 집을 나섰는데 현관문에 립스틱으로 욕이 적혀 있었대. 아버지랑 바람나서 커플링까지 맞춘 술집 여자 짓. 버림받았다고.
누나와 나는 자고 있었대. 엄마 혼자 나가 세제 묻힌 스펀지로 현관문을 문지른 거야. 철문 요철이 손바닥을 벗겨도 안 멈췄고. 그리고 묻었지. 없던 일처럼. 본 것도 못 본 척. 깨진 것도 안 깨진 척. 그래야 가족이 다음 날로 이어졌으니까.
엄마는 다음 날도 밥을 차렸어. 아버지 출근 준비를 도와주고.



3

아버지도 핑계는 있었어.
고등학교 때 자기 아버질 잃었지. 그 뒤로 꿈은 접었다더라. 그냥 취직하고, 결혼하고, 애 낳고. 레일 위에 올라탄 거야. 자기가 올라탄 건지, 떠밀린 건지도 모른 채.
골프채. 내가 여섯 살쯤부터는 그걸 주로 썼어. 이유는 늘 같았지.
“버릇없다.”
근데 뭐가 버릇없는지는 매번 달랐어. 기준이 없었으니까. 그날 아버지의 기분만 있었지.
엉덩이, 허벅지, 종아리. 그냥 맞았어. 뭘 고치면 안 맞는지, 끝내 못 배웠고. 나는 늘 틀릴 수 있는 애가 됐어.
현관문 도어락 열리는 날카로운 전자음. 그 소리만 나면 점검부터 했어. 인사 각도, 신발 위치, 말투. 뭘 잘못하지 않은 것처럼 보일 수 있는지.
문 닫힌 안방에서 큰소리 나면 이불부터 뒤집어썼어. 이불째 누나 침대로 갈 때도 있었고. 누나는 말 대신 이불 끝을 들어 내 목까지 덮어 줬어.
“자.”
딱 그 한마디. 나를 달랬지.

학교.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는데 벌을 서고, 왜 사과해야 하는지도 모르는데 먼저 고개 숙였어. “불편해” 대신 “괜찮아”를 배웠지. 화를 내면 감정 조절이 안 된대. 가만히 있으면 의젓하대.
그래도 빨리 배웠어. 아버지 숟가락 소리 읽듯이, 교실 공기를 읽으면 됐으니까.
선생님들은 나를 좋아했어. 나는 그 웃는 얼굴이 좋았거든. 근데 밤이 되면 몸 안쪽이 이상했어. 아픈 건 아닌데 편하지도 않은. 뜨거웠고, 금방 꺼졌지.

열네 살 때 누나랑 유학을 갔어. 대낮에도 치밀었어. 이불 속에서만 올라오던 열이.




(이 소설은 텀블벅을 통해 종이책으로 출간될 예정입니다.)

목, 일 연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