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에서 조마조마(1)

익숙한 불안이 나를 찾아오니 운동이나 할 수 밖에

by 필립

예기치 못한 갈등이 터져나왔던 일주일이었다. 상사에게서 왜 이다지도 의욕과 기운이 없어보이냐는 끈질긴 추궁에 기억속에서 수년간 묵은 상처를 꺼냈을 뿐이었지. 그런데 그 사람은 부서장 회식 자리에서 그걸 터트리면서 다른 상사와 심각하게 다투었고 집에서 쉬고 있는 나에게 전화를 걸어왔어. 나는 예기치 않은 장시간 통화에 시달려야만 했지. 고래 싸움에 말려든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다시금 해묵은 불안에 떨면서 몇번이고 마음을 굳게 먹으며 다짐했다. 더 이상 이 상황이 여의치 않고 악화된다면 다투려 하지 말고 회사 생활에 종지부를 찍어야 한다고.

수없이 머릿속으로 마음속으로 돌이켜 본 생각이었다. 십수년전에 담당 업무가 바뀌면서 악순환의 고리는 너무나 오랜 세월동안 단단해져만 갔으니, 이제는 배겨낼 재주도 인내심도 바닥이 나버렸어. 보통은 회사를 그만 둔 이후로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못볼 꼴을 본다는 이야기도 있지만 내 미래는 오리무중이니 좋다 나쁘다를 확신할 수도 없다. 어차피 퇴직하더라도 책임 져야할 처자식이 없으니 그 동안 모아두었던 회사 월급으로 몇년간은 놀아도 괜찮다고 스스로 다독였다. 여러번의 비슷한 경험으로 자신을 몰아세우지 말고 격려하는 편이 낫다는 것을 터득해버렸지.


복종과 희생만을 강요하는 상사들에게 치이면서 몸과 마음이 지쳐 쓰러지지 않도록 무진 애를 써왔어. 스트레스에 쪼들리다가 쓰러져서 타계한 선배들도 몇명 봐왔으니 더욱 조심하지 않으면 평생 동정을 받는 수치스러운 일생이 되는 것만은 막아야했다. 맨몸 운동이나 최면으로 심신의 강화와 휴식을 스스로에게 강요했고 소비를 줄여서 현금을 모으고 독서를 하면서 지혜를 쫒았지만 얼마나 도움이 될지는 미지수야. 퇴직후에 뭘 해먹고 살 수 있는지는 자신 있게 이야기 할 수 있는 처지는 아니지만 그래도 내 의지로 고통과 수치의 악순환을 끊어야만 생의 다음 단계로 진입할 수 있어.


이 밤이 지나고 내일 출근하면 그는 나를 추궁하겠지. 내 의견을 분명히 했는데도 니 의견을 말하라고 제 생각에 부합하는 대답을 강요하는 상황에서 체념하고 이제 그만두겠다고 선언하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언젠가는 퇴직을 해야 하는 숙명이니 지금 저지른다고 해서 특별히 나쁘다고 볼 수도 없을뿐더러 제 2의 인생을 빨리 준비한다고 마음을 가진다면 오히려 전화위복의 기회일 수도 있지. 십여년전에 회사내 갈등으로 중증 우울증과 갑작스런 피부병으로 헤어날길 없는 좌절에 갇혀 있던 시절부터 악순환을 끊어낼 결심도고려할 수 있었지만 지극히 주저하는 성격탓에 십년 넘게 속앓이만 해왔지. 한번 사는 인생인데 소중한 시간을 의미 없이 보내기는 아쉽기에 중대 결단이 필요한 시점이야. 이제 거의 자정이 되었네. 미뤄두었던 원암 푸시업을 왼팔로 10개를 반복했는데 전보다 수월하게 했어. 최고조에 이른 압박감이 심장과 근육에 강한 텐션을 일으켜서 오히려 운동 능력이 향상된 것일지도 모른다는 추측은 했지. 다만 머릿속이 복잡하기에 평소처럼 영어와 일본어 말하기 연습은 거의 하지 못하겠더라구. 십여년전에 중증 우울증으로 숨막히던 시절에도 피스톨 스쿼트 50~70개는 며칠에 한번씩 거르지 않고 해주었는데 그래서 극단적인 악화까지는 예방했던 것도 같다. 고강도 운동의 부산물인 엔돌핀이 돌면서 다소나마 위안이 되었던 것일지도 모르지. 다만 루틴의 반복으로 소중한 일상이 유지되고 있음을 실감하기에는 그만이지만 행복감이나 성취감까지는 이르지 못했어. 누가 루틴 반복하는 사람은 반드시 성공하고 명예롭게 산다고 했는가? 맨몸 운동과 외국어 공부, 명상을 꾸준히 했어도 인생이 망가지지 않고 힘겹게 버티는 정도의 효용밖에는 체감하지 못하겠다구. 마음이 든든하지는 않고 그냥 하루하루 굿바이 데이를 흘려보낼뿐.


이렇게 며칠이 흐르고 두명의 보스는 출근을 했고 한 명은 내게 소동을 일으킨 것에 대해서 사과를 했고 다른 한 명은 아무 일도 없었던 듯이 무관심했어. 결국 퇴직 결심은 뒤로 미루었지만 어차피 전에도 있었던 일이었고 미래에도 몇차례 반복될 것이기에 지금 이순간에도 권고 사직 통보를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하면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가를 고민할 수 밖에 없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