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의 아내는 어디로 갔을까? 2

욥은 재혼했을까?

by 아반

불편한 진실


이전 포스트에서 욥의 아내가 실제로 욥을 떠나갔고

욥은 시험이 끝난 후 아마 재혼을 했을 거라는 추정을 해보았는데

이런 추정은 신실한 신자들에게 불편한 이야기가 될 수 있을 것 같다.


우리는 왜 욥의 재혼을 받아들이기가 힘든가?


사람에게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결혼해서 그 후로도 오랫동안 행복하게 살았을 거라는 환상을 깨고 싶지 않은 심리가 분명히 있다.

사람에게는 어떤 주제에 대해 불확실함이나 모호함 없이 빠르고 확실한 답을 찾으려는 동기가 있다

이야기의 맥락에서는, 모든 인물의 운명이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것을 선호하는 심리로 나타난다.

욥기의 경우, 욥이 모든 것을 회복하고 새로운 가족을 얻는 결말은 이러한 욕구를 충족시켜 준다.

반면, 욥의 아내의 비극이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는 해석은 인지적 종결 욕구를 방해하며,

세상의 고통이 항상 쉽게 설명되거나 해결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그래서 지금부터 그 불편한 진실과 마주해 보려고 한다.




충절의 극한 시험


여호와께서 사탄에게 허락하셨다.
"좋다, 그를 네 손에 맡기겠다! 다만, 그의 생명만큼은 절대로 건드리지 마라."

사탄은 즉시 여호와 앞을 물러나와 욥을 공격했다.
그는 욥의 발바닥부터 정수리까지, 온몸을 뒤덮는 지독하고 고통스러운 종기로 그를 쳤다.
욥은 타버린 재 위에 주저앉아, 깨진 질그릇 조각을 집어 들고 끝없이 가려운 살점을 긁어대며 버티고 있었다.

결국 참다못한 그의 아내가 그에게 쏘아붙였다.
"당신, 아직도 그 잘난 순전함을 붙들고 있는 건가요? 차라리 하느님 면전에서 그분을 저주해 버리고, 그냥 죽음을 택해요!"

욥기 2: 6~9


사탄은 지금 욥의 충절을 꺾기 위해 혈안이 되어 있다.

하느님께서는 그의 목숨을 제외한 모든 시험을 허용하셨다.


그래서 이제 사탄은 그의 온몸을 종기로 치고 이어지는 문맥에서

마침내! 그의 아내가 그에게 하느님을 저주하고 죽어버리라는 저주를 퍼붓는다.



%EC%9A%A5.PNG?type=w966 온몸에 종기가 난 욥



이것은 문맥상 아내의 저주는 사탄이 욥을 꺾기 위해 사용한 전략이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은 단순히 아내의 감정이 격해져서 하는 진심이 아닌 말에 지나지 않는 것이 아니었을 것이다.

욥에게 가장 심연의 고통을 가져올 극한 테스트였던 것이라면

그의 아내가 하느님을 버리고 남편도 떠나기로 아니 이미 떠났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사탄은 이미 에덴에서 하와를 먼저 유혹함으로

아담이 하느님을 버리도록 하는 데 성공한 전력이 있다.

욥의 충절을 놓고 벌이는 하느님과의 대결에서 사탄이 가장 강력한 이 전략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너무 순진한 생각이다.



아내의 배신과 이별은 가장 강력한 사탄의 무기였을 것이다




관계의 단절


내 숨결은 아내에게조차 역겨운 것이 되었고, 내 어머니의 배에서 함께 나온 형제들에게조차
나는 고약한 악취가 되어버렸구나.
~
내 속을 다 털어놓던 친밀한 벗들은 나를 가증스럽게 여기며 멀리하고,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이들마저 이제는 내게 등을 돌려버렸구나.

욥기 19:17,19


욥기 19:19절에서 '등을 돌렸다'로 번역된 히브리어 원어는 '라하크'(רָחַק, rāḥaq)이다.

이 단어의 의미는 단순히 등을 돌렸다는 행동을 넘어, '멀리 떨어져 나가다' 또는 '멀어지다'라는 포괄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다.


'라하크'의 기본적인 의미는 '물리적으로 멀리 떨어져 나가는 것'이다.

그러나 욥기 19장 19절에서 이 단어는 감정적, 관계적인 단절을 묘사하는 데 사용된다.

욥이 '사랑하는 사람들'에게서 멀어졌다고 말할 때, 가장 친밀한 관계인 아내가 그 관계에서 제외될 가능성은 낮다.

그의 아내도 욥과 관계가 단절되었다는 것을 이 구절에서 유추해 볼 수 있는 것이다.


따라서 욥기 19:19는 아내의 이름이 직접 언급되지 않지만, 욥의 아내가 겪은 이별의 고통과 관계의 단절을 암시하는 매우 강력한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욥이 겪은 총체적 고립은 가족과 가장 가까운 사람들의 단절에서 정점을 찍는다고 볼 수 있다.


17절의 [내 숨결은 아내에게조차 역겨운 것이 되고]

이 구절은 아내가 여전히 욥의 곁에 남아 있다는 확실한 증거가 될 수 없으며,

아내가 이미 떠난 상황에서 과거의 고통스러운 경험을 회상하며 하는 말일 수도 있다.

욥이 이 말을 할 때 그는 온전히 혼자였으며 그의 형제들도 그의 곁에 있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랑하는 자가 내게서 등을 돌렸다




가정의 역설


만일 내 마음이 여인에게 유혹되어 이웃의 문가에서 기회나 엿보며 살았다면...

차라리 내 아내가 다른 남자의 집에서 맷돌을 돌리고, 다른 사내들이 내 아내의 몸을 범하며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어 버려라.

욥기 31:9,10


욥이 자신의 결백을 변호하면서 한 이 말을 처음 보았을 때

그는 다른 여인에게 유혹되지 않았을 것이므로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에게 가는 일은 일어나지 않았겠구나 생각했다.

그래서 한편으로 아내가 떠나가지 않았다는 걸 이 성구가 말해 준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조금만 더 깊게 생각해 보면 그게 아니었다.

욥은 지금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고

자신에게 일어난 일의 부당함을 이야기하고 있다.

자신이 다른 여인에게 유혹되어 잘못을 저질렀다면

자신에게 징벌적 결과가 임하더라도 자신은 받아들일 수 있겠지만

자신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 자신에게 끔찍한 일들이 벌어졌다는 것을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이것은 오히려 욥에게 욥이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의 아내가 다른 남자를 위해 곡식을 갈고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지게 되었다는 것을 역설적으로 알려주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욥의 아내는 생계를 위해 다른 부족이나 남자의 보호 아래 곡식을 가는 노동을 해야 했을 것이다.)


이점은 문맥을 통해 좀 더 확실히 확인할 수 있는데

욥기 31:7,8 은 이렇게 되어 있다.

[만일 내 발걸음이 길에서 벗어나거나 내 마음이 내 눈을 따라가거나 내 손이 더럽혀져 있다면,

내가 씨를 뿌려도 다른 사람이 먹고 내가 심는 것이 뿌리째 뽑히게 되어라.]


같은 형식의 앞선 문장을 보면

욥이 무고한데도 이어지는 8절의 일들은 이미 그에게 일어난 일이다.

그가 뿌린 것을 다른 사람들이 빼앗고 그의 생계의 기반조차 뿌리째 뽑혀 버린 것은 이미 그에게 벌어진 사건이었다.


욥은 자신의 결백을 주장하기 위해 "만약 내가 죄를 지었다면"이라는 가정을 반복적으로 사용한다.

그러나 그의 변론의 힘은 그 가정이 실제로 일어난 재앙이라는 점에서 나온다.


같은 논리로 이어지는

10절의 사건도 이미 그에게 벌어졌을 것이라고 우리는 추론할 수 있는 것이다.


욥기 31장 10절은 '가정의 역설'을 통해 욥의 아내가 실제로 비참한 운명에 처했음을 암시한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논리적 구조는 욥의 고통이 단순히 죄의 결과가 아니라, 죄 없는 자에게 벌어지는 불공정한 비극임을 강력하게 보여 준다.



욥의 변론의 힘은 그 가정이 실제로 일어난 재앙이라는 점에서 나온다.







이상과 같이

욥은 모든 것을 잃고 자녀들을 잃고

그의 아내마저 그를 떠나 다른 남자에게 가는 비극적인 시련을 홀로 인내해야 했다.

우리는 욥의 아내에 대해 생각해 보면서

그가 겪었을 고통의 무게가 어마어마하다는 것을 새삼 느낄 수 있다.


욥은 시험이 끝난 후

다시 재산을 회복했으며 그의 재산 가운데는 많은 종들과 하녀들도 있었을 것이다.

그가 그의 하녀 중 적합한 여자를 아내로 맞아들여 그의 후손을 낳게 하는 것은

족장 시대에 흔하게 있었던 일반적인 일이었다.

아브라함이 하갈에게서 그리고 야곱이 빌하와 실바에게서 아이를 낳은 것을 보더라도 그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었다.


욥이 회복된 이후

이미 다른 남자의 아내가 되었을 또는 다른 남자와 관계를 가졌을 욥의 아내가 다시 욥에게 돌아오는 것은

성서적으로 관습법적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


우리는 믿고 싶은 것을 믿고 싶어 하지만

성경 욥기를 주의깊이 연구해 보면

욥의 아내가 욥을 떠나갔다고 보는 것이 좀 더 사실에 가깝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단지 좋은 게 좋다고

욥의 가정이 화목하게 다시 회복되어 그의 아내와 욥의 행복한 그림을 그리는 것은

사실이 아닐 수 있다.


이제 아마 욥에게 일어난 모든 불행한 일들이 완전히 복구된 게 아니라면

그것이 과연 하느님의 공의라고 말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머릿속에서 맴맴 돌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하지만 욥의 아내의 불가피한 선택과 그녀가 떠나기로 한 것은 그녀의 선택이고

성경은 그녀의 행동을 정죄하지 않는다.


욥기서의 결말을 묘사하려면 이러한 그림이 더 사실적일 수 있다.



Gemini_Generated_Image_q5qvwhq5qvwhq5q2v.png 욥이 새 아내를 얻어서 아이를 출산하다.




에필로그


성경은 진리이며, 우리는 거짓된 결말이 아닌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욥기의 결말을 단순한 '해피 엔딩'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온전한 진리를 놓치는 일일 수 있습니다.


욥의 이야기에서 중요한 것은 다음과 같은 진실입니다

1. 욥의 고난은 죄의 결과가 아니며, 세상에는 이해할 수 없는 부조리한 고통이 존재합니다.

2.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도 하느님은 모든 것을 주관하고 계시며, 결국 공의를 회복하십니다.

3. 하느님은 욥의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지만, 그 회복은 단순히 과거로 돌아가는 것이 아니라 더 큰 축복으로 나아가는 것이었습니다.


우리가 경계해야 할 '거짓 결말'은 성경이 말하지 않는 내용을 사실처럼 믿는 것입니다.

욥이 첫 아내와 기적적으로 재회했다는 이야기는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우리의 심리적 바람일 수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욥의 삶은 우리가 바라는 단순한 '해피 엔딩'과는 다릅니다.

그는 모든 것을 잃었고, 그 상실의 고통은 완전하게 회복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에게 과거를 뛰어넘는 새로운 은혜와 축복을 주셨습니다.

욥기의 진리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욥의 아내는 어디로 갔을까? 1

제목 그림 : Job mocked by his Wife - Georges de La Tour(1593–1652)